1999년 첫 런칭 이래, 2세대와 3세대를 거치며 오버시즈와 함께 하는 기능은 크로노그래프입니다. 시간과 날짜 표시 기능이 어떤 시계에서라도 가장 기본이라면 크로노그래프는 계측이라는 성격이 스포츠적 속성을 드러내므로 스포츠 워치에서 빼놓을 수 없습니다. 1세대 오버시즈 크로노그래프는 프레드릭 피게의 칼리버 1185를 베이스로 한 칼리버 1137을 탑재했습니다. 하이엔드에 한정되긴 하나 프레드릭 피게는 에보슈 선호도에서 주로 2순위에 해당했습니다. 과거 바쉐론 콘스탄틴 같은 하이엔드 메이커들은 예거 르쿨트르의 에보슈를 가장 선호했고 그 대체제로 프레드릭 피게를 찾곤 했는데, 자동 크로노그래프에서만은 이야기가 달랐습니다. 예거 르쿨트르는 자동 크로노그래프에 대한 노하우가 없었기에 칼리버 1185가 아니면 하이엔드 메이커들은 자동 크로노그래프를 만들 수 없었습니다. 하이엔드 에보슈의 공급원이었던 예거 르쿨트르는 뒤늦게 자동 크로노그래프 칼리버 751을 만들었지만 칼리버 1185의 설계를 답습했다는 이야기를 들을 정도였습니다. 때문에 바쉐론 콘스탄틴과 오데마 피게는 당시 가장 탁월한 칼리버 1185를 이용해 자동 크로노그래프를 만들었고, 바로 작년인 2015년까지도 그랬습니다. 하지만 2016년 새로운 오버시즈의 발표와 함께 바쉐론 콘스탄틴이 독자적인 노선을 선언합니다. 바로 인 하우스에서 개발한 자동 크로노그래프인 칼리버 5200가 배경에 있었던 덕분이죠.
칼리버 5200
오버시즈 크로노그래프는 3세대에 접어들며 환골탈태합니다. 오버시즈 역사상 가장 개성적인 디자인을 지니게 된 것 이상의 큰 변화는 칼리버 5200이 그 중심에 있어서 입니다. 칼리버 5200은 요즘의 무브먼트 설계 사상과 궤를 같이 합니다. 각 기능은 독립적으로 개별 개발되는 게 아닌 하나의 자동 크로노그래프를 뿌리 삼아 확장 하는 방식으로 태어나게 됩니다. 칼리버 5200의 뿌리는 자연히 칼리버 5100가 되며, 그 위에 크로노그래프를 구동하는 부품을 얹었습니다. 칼리버 5100은 더블 배럴을 이용한 60시간 파워리저브로 현대적 무브먼트가 요구하는 동작 시간을 충족합니다. 하지만 칼리버 5200은 그보다 짧은 약 52시간이며 크로노그래프 작동에 동력 일부 할애하므로 약 8시간이 짧아 지는 듯합니다.
칼리버 5200은 현대적 자동 크로노그래프 형태적 특징을 드러냅니다. 보통의 자동 무브먼트와 닮은 듯 다른 듯한 브릿지 구조가 그 예가 됩니다. 앞서 언급한 2층 구조의 브릿지로 이는 깔끔한 외관을 드러내나 와인딩 메커니즘의 기어나 레버의 노출을 억제합니다. 물론 크로노그래프 제어의 핵심부품 컬럼휠이 드러나나 동작 자체를 즐기는 데에는 다소 아쉽기도 합니다. 하지만 인위적으로 브릿지를 도려내 컬럼휠을 노출시키는 방식과 달리 브릿지와 브릿지의 경계에 절묘하게 컬럼휠을 위치시켰습니다. 브릿지 곡선의 흐름을 유지하면서 그 틈새로 컬럼휠, 레버의 일부를 더 드러낼 수 있도록 해 아쉬움을 달래줍니다. 컬럼휠에는 이제 바쉐론 콘스탄틴 크로노그래프의 상징이 된 ‘컬럼휠 머리의 말테 크로스’를 볼 수 있어 아름다움을 더해집니다. 크로노그래프 작동과 함께 회전하는 말테 크로스는 훌륭한 볼거리가 되죠.
칼리버 5200의 지름은 13과 1/4라인(Ligne)=30.60mm, 두께는 6.60mm 입니다. 지름은 크고 두께는 약간 두꺼운 편에 속합니다. 이미 칼리버 24XX 시리즈 같은 자동 무브먼트가 있는 상황에서 새로운 자동 무브먼트인 칼리버 5100이 나온 이유에 대해 말합니다. 바로 스포츠 성향의 무브먼트가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칼리버 5200 역시 칼리버5100을 베이스로 완성되었기 때문에 성향을 따릅니다. 칼리버 1137이 아름다움과 성능, 대체제가 없었던 이유로 여러 하이엔드 스포츠 워치에 탑재되었지만 그것의 설계 당시에는 희박했던 개념. 즉 스포츠 워치에 적합한 설계라는 생각이 없었습니다. 스포츠 워치에 주로 탑재되긴 했지만 드레스 워치에 어울리는 무브먼트였고 실제로도 그러합니다. 반면 칼리버 5200은 넓어진 스포츠 워치의 저변, 그리고 함께 확대된 하이엔드 스포츠 워치의 수요를 고려해 탄생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실제로 바쉐론 콘스탄틴은 칼리버 5200 설계에 임하며 튼튼함, 내구성과 같은 요소를 우선적으로 고려했다고 합니다.
브릿지 표면에서 확인되는 제네바주의 문장은 칼리버 5200이 제네바 실의 규정에 따라 피시니 되었다는 사실을 말합니다. 2층의 브릿지 구조에서 1층은 기본적인 파워트레인, 2층에서 크로노그래프 제어와 와인딩을 담당하게 됩니다. 때문에 칼리버 5100에 비해 입체적이며 더욱 복잡한 구조를 드러냅니다. 피니시 측면에서도 공들여야 할 부분이 많아졌고, 특히 곡선의 브릿지 모서리를 마무리하는데 많은 노력을 들였으리라 생각합니다. 표면은 제네바 호수의 잔잔한 물결을 연상시키는 코트 드 제네브 가공을 했으며, 2층 브릿지로 대부분이 가려지는 1층 브릿지도 꼼꼼하게 가공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로터에는 오버시즈 전용인 나침반을 문양을 정교하게 새겼고 22k 골드 소재를 사용해 와인딩 효율을 고려했습니다. 무브먼트는 이처럼 시스루 백을 통해 감상할 수 있는데요. 이전까지 솔리드 백을 사용했던 것과 달리 시스루 백에 무브먼트를 둘러싼 링 모양의 연철케이스를 사용, 항자성능을 갖췄습니다. ISO의 항자성시계에 요구되는 기준을 상회하는 25,000A/m의 항자성능이며, 그러면서도 시스루 백을 통해 무브먼트를 보는 즐거움을 동시에 제공합니다.
150m방수를 지원하는 조작계통은 크라운, 푸시 버튼 모두 스크류 다운 방식입니다. 크라운 조작을 위해 포지션 0에 두려면 크라운을 먼저 풀어야 합니다. 포지션 0에서 수동으로 와인딩 해보면 매끄러운 감각이 전해집니다. 저항감도 거의 느껴지지 않아 부드럽게 감는 맛이 인상적입니다. 포지션 1은 날짜 조정이며 날짜는 데이트 디스크가 경쾌하게 튕기듯, 크라운을 돌리면 한 칸 한 칸씩 정확하게 날짜가 변경되며, 칼리버 5X00 시리즈의 조작성에서 가장 기억에 남을 만한 감각입니다. 포지션 2은 시간 조정이며 크라운을 돌리면 분침이 즉각적인 반응을 합니다. 크라운 회전과 바늘 회전 사이에서 유격이 없으며 의도한 시각에 시, 분침을 정확히 이동시킬 수 있습니다. 이는 전체적으로 조작감이 분명하다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푸시 버튼 주변의 너트를 풀면 크로노그래프를 작동시킬 준비가 됩니다. 푸시 버튼을 구르면 눌렸다가 원상복귀까지 간격이 비교적 큰 편입니다. 즉 스트로크가 길며 버튼을 눌렀을 때 감촉 자체는 매끄럽습니다. 약간 깊게 누른다고 생각하면 좋을 듯하며, 스타트와 스톱 간의 푸시 버튼 압력과 스트로크 차이는 그리 크지 않습니다. 리셋 역시 버튼을 누르자마자 손쉽게 완료되므로 크로노그래프의 조작감 역시 분명하며 매끄럽습니다.
첫 오버시즈의 디자인은 당시 프리랜서 디자이너였던 디노 몬돌로(Dino Modolo)가 담당했습니다. 오버시즈의 전신인 222의 디자인을 참고하여 오버시즈라는 이름에 어울리는 역동성을 담아냈는데요. 222에서 선보인 코인 엣지 베젤을 변형, 말테 크로스의 이미지를 담아낸 점이 가장 도드라집니다. 이는 1세대를 이은 2세대와 지금의 3세대로 이어지며 오버시즈 디자인의 중심적인 역할을 합니다. 이번 3세대는 크로노그래프 뿐 아니라 라인업 전체의 케이스 디자인이 변화했습니다. 가장 두드러지는 부분은 케이스에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러그 라인입니다. 케이스에서 러그로 향하며 군살 없는 여성의 허리와 유사한 라인을 그려냈다면, 이번에는 이와 반대로 바깥으로 부푼 라인을 그려냅니다. 전체적인 실루엣을 보면 오버시즈의 케이스에 오벌 케이스를 합성한 형태와도 비슷하죠. 이는 오버시즈 고유의 프로포션을 유지하면서 전 세대와 차별점을 드러내며 또 클래식한 인상도 함께 줍니다. 이번 오버시즈의 특징은 기본 브레이슬릿 이외에 (골드 케이스는 모델에 따라 예외) 러버 밴드와 가죽 스트랩을 기본 제공해 상황에 따라 기분에 따라 바꿔 착용할 수 있도록, 쉬운 스트랩 교체법(이지핏 시스템)을 도입했습니다. 기본인 브레이슬릿을 기준으로 두고 살펴보면 2세대에 적용한 말테 크로스 모양의 링크를 연결한 형태입니다. 링크의 디자인은 2세대를 기본으로 하지만 표면 피니시에 상당한 공을 들인 인상입니다. 가공이 진하다라고 표현하면 조금 이상할지 모르나 실제로 헤어라인을 봤을 때, 질감을 손으로 느꼈을 때 같은 생각을 하게 될 것입니다. 공정의 단계가 여러 반복될 이 같은 느낌이 들며, 그 반대의 경우 옅다는 느낌이죠. 브레이슬릿은 헤어라인 피니시를 기본으로 십자가의 측면, 링크의 모서리 부분을 유광 가공으로 처리해 입체감을 배가시킵니다. 아마 전 세대를 통틀어 가장 뛰어난 케이스 가공이 아닐까 싶습니다.
케이스는 브레이슬릿과 마찬가지로 하이라이트가 되는 베젤을 제외한 전면은 헤어라인, 측면은 폴리시 가공이 기본입니다. 케이스는 케이스 백으로 향하면서 급격한 경사를 그리는 점이 이번 케이스 디자인의 특징으로 별 것 아닌 듯 하지만 계속 보게 되는 매력이 있습니다. 전면과 대비되게 케이스 백과 브레이슬릿 안쪽은 모두 헤어라인으로 처리했습니다. 브레이슬릿은 착용감과 관계가 있습니다. 1세대 오버시즈의 실수랄까 미숙함은 브레이슬릿 안쪽을 미러 피니시에 가까운 폴리시 가공으로 처리한 점입니다. 가공의 특성상 미끄러워지며 땀이 차면 더욱 미끄러워져 시계가 손목에서 계속 흘러내리게 됩니다. 케이스 지름은 43.5mm로 이번 오버시즈는 기능에 따라 케이스 지름을 능동적으로 다양화 했습니다. 두꺼운 무브먼트를 지닌 크로노그래프는 그에 비례해 큰 지름을 가지게 되었고 덕분에 가장 남성적인 모델입니다. 착용감을 중시한다면 다소 후 순위에 놓이게 되겠지만 그 만큼 박력 있습니다. 케이스 두께가 13mm를 넘기 때문에 수치상으로는 착용감이 떨어질 거라 짐작할 법 하지만, 실제 착용감은 케이스의 균형을 잘 잡은 덕분인지 선입견(?)에 비해 괜찮습니다. 되레 보기보다 가볍다는 느낌도 듭니다.
리뷰의 블루 다이얼은 선호도 차이가 큰 편입니다. 바쉐론 콘스탄틴은 이번 오버시즈의 블루 색상을 조율하는 데 오랜 시간을 기울였다고 알려집니다. 초기 제시한 색상에서 큰 변경을 했다고도 하는데요. 이 블루의 의도는 오버시즈 이름에 어울리는 블루로 넓은 바다를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리뷰 모델의 블루는 투명함을 살짝 머금었으며 조명에 따른 변화를 보입니다. 어두운 곳에서는 심해의 바다, 밝은 곳에서는 투명한 바다를 연출하는데 전자의 환경이 더 낫지 않나 싶습니다. 다이얼의 카운터 구성은 3, 6, 9시 방향의 트리컴팩스, 4시와 5시 사이에 날짜창이 위치합니다. 플린지에 세밀한 눈금을 배치해 지름대비 꽉 찬 구성입니다.
올해 탄생 20주년을 맞이하는 오버시즈(222를 포함하면 40주년)이므로 역사가 그리 길지 않아 소위 역대급이라는 표현에 무리가 따를지 모르지만 오버시즈의 크로노그래프 중 가장 완성도가 높습니다. 그 근거로 외부의 에보슈가 아닌 인 하우스에서 완성한 자동 크로노그래프를 가장 먼저 탑재했으며, 또 가장 스포츠 워치에 어울리는 성격을 지닌 무므먼트이기 때문입니다. 나머지는 개성이 뚜렷하며 아름다운 디자인, 쉬운 스트랩 교체처럼 스포츠 워치에 어울리는 편의성으로 무장해 오버시즈 라인업 전체를 한 단계 이상 업그레이드 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종합적으로 완성도가 높으며 이는 다른 하이엔드 스포츠 워치와 대결에서 치열한 경쟁을 할 수 있는 준비가 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막 시작한 게임이니 만큼 결과를 예측하기 쉽지 않지만 바쉐론 콘스탄틴이 준비한 회심의 승부수가 먹힐 것이라는 게 섣부른 판단은 아닐 듯 하군요.
오 무브먼트가 이쁩니다,,,,역시 바쉐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