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오버시즈 라인의 기함은 퍼페추얼 캘린더가 담당합니다. 2세대 오버시즈에서도 퍼페추얼 캘린더가 같은 역할을 맡았으나 순수한 퍼페추얼 캘린더가 아닌 크로노그래프 베이스에 결합했었습니다. 퍼페추얼 캘린더 모듈 자체는 두 모델이 거의 동일하다고 볼 수 있으나 기능의 정제 측면에서는 3세대가 우세합니다. 이에 따른 확연한 차이는 울트라 씬 만이 지니는 빼어난 프로포션으로 이어집니다. 2세대까지의 오버시즈는 남성적, 남성적인 성향에 따른 강력함이 모델을 불문하고 일관되게 드러났고 이는 케이스 같은 외관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하지만 3세대에 이르러서는 완급조절을 통한 완숙미를 드러내며 오버시즈 울트라 씬과 오버시즈 울트라 씬 퍼페추얼 캘린더가 이를 반영합니다.
오버시즈의 전신인 '222'
오버시즈 울트라 씬 퍼페추얼 캘린더는 굳이 스포츠 워치의 강함을 드러내려 하지 않습니다. 다른 오버시즈 모델과 달리 50m 방수에 불과합니다. 25,000 A/m의 항자성능을 갖추고 있지만 방수성능이나 외관은 요즘 기준의 스포츠 워치로는 다소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이는 탑재한 칼리버 1120 QP에서 기인합니다. 칼리버 1120 QP는 오버시즈 울트라 씬에 탑재하는 칼리버 1120이 베이스이며 두께가 2.45mm에 불과해 매우 얇은 케이스를 만들어 내기 때문입니다. 이 무브먼트는 1977년 발표한 바쉐론 콘스탄틴의 첫 스포츠 워치 222에 탑재되었습니다. 하이엔드 스포츠 워치의 정의가 확립되기 시작한 때로 222를 디자인한 요르그 이젝(Yorg Hysek)은 트릴로지로 부르는 제랄드 젠타의 디자인에 영향을 받아 완성했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2016년의 바쉐론 콘스탄틴은 222 시대의 화법을 오버시즈 울트라 씬과 퍼페추얼 캘린더를 통해 부활시킵니다. 강한 통일성을 드러냈던 전 세대와 달리 오버시즈라는 공통된 옷을 입으면서도 지름과 두께에서 능동적인 베리에이션을 이용해 각각 다른 시계들을 창조해 낸 것이죠. 또 무브먼트의 계승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오버시즈 울트라 씬과 퍼페추얼 캘린더나 오버시즈 울트라 씬은 222의 직계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위 해석은 222시대를 함께했던 고전적인 하이엔드 워치의 표방이라는 측면에서 고무적입니다. 강력함을 바탕으로 끊임없이 크고 두꺼워지는 요즘의 스포츠 워치에서 점차 결여된 우아함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죠. 즉 오버시즈 울트라 씬 퍼페추얼 캘린더의 탄생 목적은 우아한 스포츠 워치, 스포츠 워치의 룩을 추구하나 본질적으로는 드레스 워치를 품고 있던 고전적 하이엔드 워치의 수요에 대응하기 위함입니다. 구체적으로는 파텍 필립의 노틸러스 Ref. 5711, 오데마 피게의 Ref. 15202 같은 하이엔드 스포츠 워치의 원점 지향적 시계에 맞서기 위함으로, 하이엔드 수요의 진정한 취향과도 닿아있습니다.
해석의 용이성에서 본다면 오버시즈 울트라 씬을 리뷰함이 옳습니다. 하지만 상품성을 고려한다면 퍼페추얼 캘린더가 훨씬 더 빼어납니다. 게다가 복잡한 기능과 이를 구체화한 다이얼을 지니면서도 ‘울트라 씬’을 유지하면서도 타임 온리의 울트라 씬과 가격 차이가 생각보다 크지 않기 때문이죠. 오버시즈 울트라 씬 퍼페추얼 캘린더가 탑재한 칼리버 1120 QP의 두께는 4.05mm입니다. 최근의 데이트 기능을 갖춘 자동 무브먼트 보다도 얇습니다. 기능은 다이얼에서 확인됩니다. 12시 방향에 월과 윤년, 3시 방향에 날짜, 6시 방향에 문 페이즈, 9시 방향에 요일입니다. 월과 윤년의 표시에는 긴 바늘과 짧은 바늘을 이용합니다. 긴 바늘이 가리키는 월은 JAN, APR, JUL, OCT로 분기 단위로 나뉘며, 그 사이의 월은 바 인덱스로 간결하게 표시됩니다. 작은 창에 무려 4년 분의 월 표시가 들어갈 수 있는 비결(?)로 윤년인 해에만 파랗게 색을 달리 나타냅니다. 이 같은 형식은 4년을 한 사이클로 동작하는 퍼페추얼 캘린더의 특징을 드러냅니다. 집약된 표시를 하는 12시 방향과 달리 다른 정보들은 여유가 있어 보입니다.
6시 방향의 문 페이즈는 클래식 합니다. 달은 텍스처 없이 정갈하며 밤 하늘의 표현에서도 그러합니다. 하지만 자세하게 보면 별은 별자리 표시처럼 정교하게 선으로 이어져 색다른 느낌을 줍니다. 다이얼에는 은은한 선레이 패턴 위에 고급스러운 그레이 색상이 녹아있습니다. 하지만 단순히 그레이라고 표현하기 어렵습니다. 약간 브라운이 섞인 것 같기도 하며 보는 각도와 조명에 따라 느낌이 다릅니다. 즉 표정이 풍부합니다. 이는 울트라 씬 특유의 약점, 얇은 두께로 인해 나타나는 단순함을 탈피하기 위함이 아닌가 싶습니다. 인덱스, 바늘의 모양과 타입을 고려해야 두께를 늘리는 요소를 최대한 배제해야 하는 울트라 씬만의 화법 때문이죠. 이 때 가장 효과적인 수단은 색상이며, 여기에 곁들인 패턴과 광택은 이를 배가시킵니다. 그리고 프린트 한 인덱스는 반복 인쇄해 입체감을 부여합니다. 이를 봤을 때 바쉐론 콘스탄틴은 울트라 씬이라는 장르를 잘 알고 있는 듯 합니다.
케이스 측면에는 다이얼의 정보를 변경할 수 있는 커렉터가 위치합니다. 퍼페추얼 캘린더의 전형적인 방식이죠. 커렉터는 많은 정보의 상징이지만 방수에서는 성능을 저하시키는 요인입니다. 크라운 또한 스크류 다운 방식이 아닙니다. 크라운을 그냥 당기면 포지션이 변화하며 성격이 명확한 만큼 50m 방수에서 크게 욕심내지 않았습니다. 크라운 포지션은 0과 1이며 기본적으로 칼리버 1120의 크라운 포지션입니다. 포지션 0에서 수동 와인딩, 포지션 1에서 시간 조정입니다. 수동 와인딩은 매끄러우며 시간을 조정할 때 분침은 약간의 유격을 동반합니다. 크라운을 돌리면 즉각적으로 분침이 반응하는 게 아니라 기어가 서로 물릴 때까지, 사용자의 입장에서는 조금 헛도는 듯한 느낌을 받은 다음 분침이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무브먼트의 특성이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이며 조작감 자체는 가볍고 다소 미끄럽다는 인상을 줍니다. 분침을 계속 돌리면 시침이 따라 돌며, 이것을 계속하면 관련된 날짜 정보 역시 변경됩니다. 시계가 멈춘 지 하루, 이틀 정도라면 이 같은 방법으로 시간을 다시 세팅해도 좋습니다. 그보다 시간이 오래 지났다면 커렉터를 이용하고, 각 기능의 커렉터를 누르는 순서는 매뉴얼을 따라야 합니다.
케이스를 정면에서 보면 여느 오버시즈와 다를 바 없습니다. 물론 상대적으로 낮은 베젤의 높이는 입체감을 약간 약화시키긴 합니다. 케이스 표면의 가공 역시 헤어라인의 무광을 기본으로 베젤 상단부를 폴리시 처리했습니다. 가장 시선이 집중되는 다이얼을 강조하듯 유광의 반짝이는 베젤로 주위를 밝히게 됩니다. 케이스에서 브레이스릿으로 이어지는 풍만한 라인은 울트라 씬에서도 예외가 아닙니다. 시각에 따라 왜소하다고 느껴지는 울트라 슬림의 약점의 보완책일 수도 있겠습니다. 케이스 측면은 이 모델의 매력이 한껏 빛나는 부분으로 얇은 두께와 케이스 백으로 향하며 줄어드는 지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울트라 씬은 리뷰의 퍼페추얼 캘린더를 포함해 케이스 소재가 전부 화이트 골드입니다. 소재가 지닌 무게가 있어 실제로 착용해 보면 생각 이상의 묵직함이 전해집니다. 케이스 지름이 훨씬 큰 크로노그래프나 월드타임과 비교해도 더 강하게 와 닿는 무게감이 반전의 매력이지 싶습니다. 같은 헤어라인 가공, 폴리시 가공을 하더라도 소재에 따른 표현력은 역시 다릅니다. 스테인리스 스틸과 비교해 하이라이트가 더 빛나며 헤어라인 가공에서 드러나는 은은함의 톤(?)에서도 차이가 납니다. 귀금속 특유의 광택감은 헤어라인이 주 된 오버시즈에서도 완전히 가릴 수 없는 모양입니다.
칼리버 1120 QP는 시스루 백으로 감상 가능합니다. 오버시즈 공통의 나침반 모양 로터를 사용했으며, 칼리버 1120 특유의 낯익은 넓고 납작한 프로포션이 다가옵니다. 볼 베어링, 요즘의 세라믹 베어링이 아닌 네 개의 루비 롤러를 베어링 대신 사용한 구조의 특이점은 가장자리에 있어 잘 드러나지 않지만 로터가 회전할 때 나는 특유의 소리는 뚜렷합니다. ‘찰찰찰찰’ 하는 소리와 함께 태엽을 감는 로터는 여전히 특징적이며 인상적입니다. 밸런스 콕에는 관성력을 조절하는 웨이트의 조정 방향을 새겨 놓았고, 그 옆에 제네바 실을 함께 새겼습니다. 두께를 최대한 억제한 울트라 씬에서 결여될 여지가 큰 입체감은 제네바 실 규정을 충실하게 따른 무브먼트 피니시에 의해 온전히 채워졌습니다. 아름다움과 성능, 신뢰성, 극단의 두께 등은 풀 로터 자동 울트라 씬의 매력이지 아닐 수 없습니다.
브레이슬릿은 오버시즈의 특징이 된 말테 크로스 링크의 연결입니다. 얇은 두께에 따른 깊이감은 옅어졌지만 말테 크로스의 선과 선이 만나는 부분의 가공은 역시나 절묘합니다. 브레이슬릿은 스테인리스 스틸 소재 또한 마찬가지지만 약간의 유격이 있습니다. 브레이슬릿을 좌우로 움직이면 조금씩 힘을 준 방향으로 따라간다는 의미죠. 이는 편안한 착용감을 제공하게 됩니다. 유격이 전혀 없는 타입은 솔리드한 느낌에서는 더할 나위 없겠지만 착용시 너무 딱딱해 피로를 유발하기도 합니다. 약간 유격이 있는 타입이 손목과 상성이 좋으며, 우리의 손목이 입체적이기 때문입니다. 여느 오버시즈처럼 가죽 스트랩, 러버 밴드를 손쉽게 바꿔 끼우는 이지핏 시스템이 적용됩니다. 다만 스테인리스 스틸 소재의 모델들이 기능과 관계없이 두루 호환되는 것과 달리 화이트 골드와는 호환이 되지 않는 부분은 유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리뷰 모델을 찬찬히 즐겨보면서 계속 든 생각은 위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오버시즈 울트라 씬 보다 오버시즈 울트라 씬 퍼페추얼 캘린더의 상품성이 더 높다는 점입니다. 얇은 두께를 이끌어 내기 위해 오직 시, 분침 두 개의 바늘만을 지닌 울트라 씬 대비 두께의 증가가 크지 않으면서도 정보량은 훨씬 많은 실용적 컴플리케이션 입니다. 그리고 칼리버 1120과 이를 베이스로 한 두 모델이 동시에 해당되는 이야기지만 고전적 하이엔드 스포츠 워치를 완성되어 그간 부족했던 부분을 완벽하게 채울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오버시즈 전체를 통해서도 이 두 개의 울트라 씬 모델은 완전히 다른 성격을 지녀, 그리 모델이 많다고 할 수 없는 라인업에서 보다 넓은 선택지를 제공하게 되리라 생각됩니다. 하나의 라인업에서 다양한 수요를 충족할 수 있는 점이야 말로 이번 오버시즈의 뚜렷한 변화의 하나가 아닐까 합니다.
멋지네요 역시 하이엔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