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업계의 새로운 시작를 알리는 SIHH와 바젤월드가 마무리되었고 이제 신제품의 소개는 얼추 마무리 된 상황입니다. 물론 하반기에도 신제품은 조금씩 계속 등장하겠지만, 역시나 메이커들이 중점적으로 보여주고자 하는 내용은 거의 공개한 셈입니다. 대체로 이번 바젤월드는 평이한 편이었습니다. 기계식 시계의 꽃이라고 부르는 컴플리케이션은 크게 눈에 띄는 모델이 없었고, 킬러 모델이랄까 관심도가 높은 모델의 신제품도 많지 않은 편이었습니다. 대체로 4, 5년에 한번 꼴로 숨 고르기 하는 시간이 오는데 이번이 그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이번 테마 10은 바젤월드 2015에서 10개를 모아봤습니다. 평이했다고 해도 그 속에서 빛나는 돌은 있는 법이니까요.
파텍 필립 : 칼라트라바 파일럿 트래블 타임 Ref. 5524
바젤 리포트에서도 언급한 적이 있습니다만, 파텍 필립이 파일럿 워치를 내놓을 거라는 예상을 못했습니다. 파텍 필립의 아카이브에서 파일럿 워치가 크게 눈에 띈 적도 없었고 (경매 시장에서는 희귀해 가치가 높습니다), 파일럿 워치는 스포츠 워치에 범주에 들어가는데다가 특히 군용시계 계열의 파일럿 워치 장르는 하이엔드와 거리가 있는 편이니까요. Ref. 5524를 소개하며 공개한 빈티지 파일럿 워치는 Ref. 5524와 느낌이 다릅니다. 다이얼 중심부에 아워앵글을 위한 360도 표시라던지 시간이 아닌 분 단위를 표시하는 인덱스는 독일군의 B-Uhr과도 약간 유사한 면이 있는데요. 스스로의 빈티지보다 제니스를 더 닮았다는 이야기가 나온 것도 그 때문이라고 봅니다. 뭐 제니스도 파일럿 워치의 전형적인 구성을 따르고 있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이야기이기도 한데요. Ref. 5524 역시 파일럿 워치의 구성, 즉 뚜렷한 시인성을 위한 인덱스와 바늘을 갖추고 있습니다. 여기에 아쿠아넛으로 소개했던 트래블 타임 기능을 더해 빠르게 타임존을 넘나드는 파일럿과 여행자에게 도움을 주고자 합니다. 이 점이 과거와 현재의 파일럿 워치가 드러내는 차이기도 하죠. 파텍 필립의 수장자리를 필립 스턴에서 아들인 티에리 스턴으로 넘긴 뒤부터 계속 젊은 이미지를 이어가고 있는 현재, 어쩌면 그 정점이 될 모델이 아닐까도 싶습니다.
오메가 : 컨스텔레이션 글로브마스터
무려 15,000가우스의 자성을 견디는 씨마스터 아쿠아테라 15,000가우스를 발표한 뒤, 차례로 내자성기능을 향상시켜오던 오메가는 이번 컨스텔레이션 글로브마스터를 통해 완성판을 내놓았습니다. 글로브마스터가 신제품으로서의 가치도 있겠지만 그와 더불어 마스터 크로노미터라는 독자적인 규격을 내놓은 점을 간과할 수 없습니다. 마스터 크로노미터는 정확성을 비롯 실제 생활을 고려한 항목을 포함하며, 특히 다른 메이커가 따라갈 수 없는 수준의 내자성성능에 관한 내용이 들어가 있는데요. 이 때문에 조금 끼워 맞춘 것이 아닌가 라고 생각되기도 하지만 1999년 첫 발표한 이후로 지금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으로 완성을 위해 달려가는 코액시얼 이스케이프먼트와 함께 오메가의 독자성을 드러내기 위한 또 다른 무기로 자리잡을 것으로 보입니다.
에르메스 : 슬림 데르메스 퍼페추얼 캘린더
에르메스는 서서히 야금야금 나름의 시계 시장을 가져가고 있습니다. ETA 공급 문제도 있고 앞으로 전반적인 그레이드를 끌어 올릴 생각이기 때문에 파르미지아니의 보쉐 무브먼트 탑재 비중이 증가하는 추세죠. 이번에는 마이크로 로터를 사용한 칼리버 H1950을 탑재한 슬림 데르메스 라인을 발표했고 라인업의 기함은 퍼페추얼 캘린더입니다. 칼리버 H1950의 베이스(형제) 무브먼트는 파르미지아니 톤다 1950의 칼리버 PF702입니다. 브릿지 디자인이 다르긴 한데 기본 설계는 크게 다르지 않을 겁니다. 무브먼트의 얇은 두께라는 장점 잘 살렸고, 퍼페추얼 캘린더 또한 같은 베이스라 얇기가 매력입니다. 요즘 추세에 맞춰 크지 않은 지름의 39.5mm에 퍼페추얼 캘린더 + 문 페이즈 + GMT까지 넣고 두께가 9mm에 지나지 않습니다. 셔츠 소매 속으로 무난하게 들어가 신사의 품격을 살려주는 드레스 워치의 고전규칙에 입각한 모델입니다. 요즘 막상 이런 조건의 시계를 찾으려면 많지 않으므로 눈에 띈 모델입니다.
H. 모저 & 씨 : 인디버 퍼페추얼 캘린더 펑키 블루
바젤월드 2015에서 다이얼 색상이 가장 인상적이었던 모델입니다. 다이얼 중심부에서 바깥쪽으로 향할수록 어두워지며, 동시에 선레이를 머금고 있는 블루 다이얼입니다. 펑키 블루라는 이름을 참 잘 지었다고 생각합니다. 무엇인가 강렬한 에너지가 폭발하는 듯한 순간을 잡아낸 것 같기도 하죠. 자세히 보면 산뜻하면서 청량한 느낌도 들며 표정이 풍부합니다. 기능을 보면 대단히 미니멀 한 구성의 퍼페추얼 캘린더입니다. 시, 분침과 같은 축을 쓰는 짧은 화살표가 월(12시를 가리키면 12월), 날짜 창으로 날짜. 케이스 백에서 윤년표시를 하는 방식입니다. 기능, 다이얼 구성이 간단하다 보니 이런 복잡한 매력을 살린 블루 다이얼을 사용할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되는군요.
롤렉스 : 오이스터 퍼페추얼 데이데이트 40
요트마스터 I에 시선이 집중되었지만 이번 롤렉스의 주인공은 데이데이트 40입니다. 새로운 칼리버 3255를 탑재한 모델입니다. 칼리버 3255는 1980년대 후반에 등장해 현재까지 사용중인 칼리버 31XX시리즈를 대체할 막중한 임무를 지녀 어깨가 무겁습니다. 지금까지의 장점을 잘 유지하고 단점은 보완했는데요. 후자에 해당하는 것의 하나가 슬리브 베어링 대신 볼 베어링을 사용한 부분입니다. 이제 롤렉스 진품을 구분할 때 사용하던 시계를 흔들었을 때 소리가 나지 않는다는 통용되지 않겠죠. (이미 크로노그래프 계열은 볼 베어링을 사용했기 때문에 이 역시 해당사항이 없습니다만) 장점의 하나로 특유의 양방향 와인딩인 리버싱을 휠을 다운 사이징 해 감기 효율을 노렸고, 또 하나는 정확성인데요. COSC의 2배에 해당하는 정확성에 칼리버 3255가 도달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단순 계산하면 일오차 -2~+3초에 해당합니다. 정확성이 큰 의미가 없어진 현대의 기계식 시계에서 여전히 정확성, 튼튼함 같은 특유의 철학을 이번 칼리버 3255로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습니다. 무브먼트 이야기만 하다가 시계 이야기가 나오지 않았는데요. 데이데이트 40은 무브먼트가 변했지만 조작법은 전세대 데이데이트와 동일하더군요. 다이얼 패턴이 다양해 진 것이 특징의 하나입니다.
브레게 : 라 트래디션 Ref. 7087
트래디션 라인에 속하기 때문에 다이얼에 볼거리가 집중된다고 보면 틀리지 않습니다. Ref. 7087도 이 규칙(?)을 벗어나지 않습니다. 미니트 리피터인데도 볼거리가 다이얼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사실 요즘의 많은 미니트 리피터가 다이얼에 해머랑 공을 배치하는 경우가 적지 않긴 하죠. 브레게는 그룹차원에서 사용하는 실리시움이나 이것을 활용한 초고속진동, 자성을 활용하는 측면에서는 도드라지지만 다른 부분은 기술 지향적인 다른 메이커에 비해 반템포 정도 느리다고 보는 편입니다. 미니트 리피터도 소리(음색), 음량의 다양한 접근이 나타나고 있는 현재의 상황에서 Ref. 7087은 늦은 만큼 이를 만회활 요소를 갖췄습니다. 그것은 높은 음과 낮음 음의 공을 아예 별도로 나눈 점, 타격면적의 증가를 위해 면과 면이 접하도록 디자인한 수평 배치의 공과 해머입니다. 다른 메이커에서도 해머가 공을 가격할 때의 접촉면을 고려해 해머 디자인을 하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공의 절단면이 원형이므로 면과 면으로 디자인한 Ref. 7087과는 차이가 있습니다죠. 하지만 미니트 리피터에서는 이러한 기본적인 타격 동작 말고도, 타격의 인터벌이라던가 음향적으로 고려할 부분이 많지만 확실히 도드라지는 차이점입니다. 그 외에 소리의 울림을 위해 케이스 이외에 글라스까지 이용하고 있는데, 글라스를 이용하는 것은 이미 예거 르쿨트르가 이전부터 사용 중이긴 합니다. 브레게 이미지와 달리 현대적인 얼굴이 종종 오버랩 되는 점이 있지만, 이렇다 할 컴플리케이션이 없었던 바젤월드 2015에서 인상적인 컴플리케이션의 하나로 평할 수 있을 것 같네요
브라이틀링 : B55 커넥티드
브라이틀링에는 진짜 파일럿 위한 프로페셔널 라인이 있습니다. 크로노맷이나 내비타이머가 자동항법장치, GPS 등의 등장으로 실제로 별 쓸모가 없어지면서 그 대안으로 내놓은 것들이죠. 조난시 구조신호를 송출할 수 있는 이머전시가 대표적인 프로페셔널 라인이며 또 콕핏 B50이란 모델이 있습니다. 슈퍼쿼츠를 탑재해 디지털, 아날로그 두 개의 방식으로 시간과 각종 기능을 표시합니다. 정확한 시간 제공과 카운트 다운, 비행 로그의 저장이 가능하도록 해 실제 사용을 고려했습니다. 이번에 선보인 B55 커넥티드는 콕핏 B50을 베이스로 스마트폰과 교신해 기능 제어 및 비행 로그 를 저장할 수 있습니다. 콕핏 B50이 충전지 방식이라 B55 커넥티드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스마트 폰을 리모콘 삼아 시계를 제어하는 발상으로 왼쪽 손목을 스마트 워치로부터 지키고자 하는 것 같네요.
프레드릭 콘스탄트 : 스위스 오롤로지컬 스마트워치
프레드릭 콘스탄트는 스마트 워치를 내놓았습니다. 하지만 외관은 아날로그 방식의 드레스 워치인데요. 이것은 애플, 삼성과 다른 관점이며 시계 메이커답게 시계다운 디자인입니다. 스마트 워치라면 으레 달려있어야 할 액정창이 없고, 스마트 폰과 통신해 스마트 폰의 액정을 이용해 기기간의 독립성을 유지하면서 필요할 때 이용하고자 합니다. 현재의 스마트 워치가 그렇듯 스위스 오롤로지컬 스마트워치도 아직 뚜렷한 방향성 보다는 여러 가능성을 모색하는 것 같은데요. 스위스 오롤로지컬 스마트워치는 스마트 폰과 연결해 오차보정, 활동량이나 수면 사이클의 모니터링 같은 헬스 기능을 지원합니다.
불가리 : 디아고노 마그네슘 컨셉트
디아고노는 시계 케이스의 소재로 알루미늄을 사용하며 주목을 받았던 모델입니다. 이번에도 그런 역사에 기반해 마그네슘, PEEK, 세라믹을 사용하며 디아고노 마그네슘이라는 이름을 얻었습니다. 그 중 디아고노 마그네슘 컨셉트는 스마트 워치의 하나로 볼 수 있는데요. NFC방식을 이용해 보안솔루션 업체인 위즈 키(Wise Key)가 제공하는 기능을 수행할 수 있습니다. 물리적 열쇠 기능은 물론 ID 확인, 전자지불, 시계의 진품인증도 가능합니다. 이전 위블로가 위즈 키를 통해 진품인증을 제공한 적 있는데 불가리가 LVMH에 그룹에 흡수되고, 전 위블로의 CEO였던 쟝 클로드 비버가 시계 부문을 총괄하면서 불가리에도 영향이 미치지 않았나 싶습니다. 참고로 위즈 키는 스위스 업체입니다.
노모스 : 미니마틱
노모스는 과거 진정한 메이드 인 저머니는 우리와 랑에 뿐이다라고 말한 적 있습니다. 자신이 뱉은 말의 무게를 잘 알고 있는 듯, 천천히 하지만 꾸준하게 매뉴팩처링을 진행해 왔고 그 결과물의 하나가 미니마틱에 탑재하는 칼리버 DUW 3001입니다. ETA(Peseux)의 칼리버 7001을 베이스로 시작한 칼리버 알파는 더 이상 ETA가 자사의 베이스가 아니 할 만큼, 설계와 부품 제조에서 독립성을 가지며 성과를 이뤄냈던 바 있습니다. 칼리버 알파를 자동화 한 칼리버 입실런이 있었음에도 메이드 인 저머니의 순수성과 매뉴팩처링에 일관된 노력을 기울인 결과, 미니마틱을 통해 볼 수 그 결실을 볼 수 있게 되군요. 미니마틱은 35.5mm의 작은 지름이지만 그 이상으로 커다랗게 보이는 이유는 독일의 작은 거인인 노모스가 만들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