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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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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터 랑에 (1924-2017)

 

지난 7월 29일은 독일의 하이엔드 시계제조사 랑에 운트 죄네(A. Lange & Söhne)를 재건하는데 혁혁한 공을 세운 발터 랑에(Walter Lange, 1924-2017)가 태어난 지 정확히 100년이 되는 날이었습니다. 혹자는 2017년 1월 17일 별세한 인물의 100번째 생일을 왜 기념하는가 하고 의문을 갖겠지만, 랑에 운트 죄네 브랜드 역사상 가장 중요한 인물 중 하나이자 현대의 하이 워치메이킹 세계에 남긴 발자취가 그만큼 크기 때문에 회고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 1920년 랑에 운트 죄네 본사 건물 모습 

 

1845년 랑에 운트 죄네를 설립한 페르디난트 아돌프 랑에(Ferdinand A. Lange)의 직계 증손자인 발터 랑에는 1924년 7월 29일, 독일 드레스덴에서 루돌프 랑에와 힐데가르트 랑에의 넷째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당시 본사 겸 매뉴팩처가 위치한 글라슈테 지역에서 초등학교를 나온 그는 어릴 때부터 가업을 받들어 크면 반드시 워치메이커가 되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실제로 드레스덴에서 중등교육을 마친 후 1941년 봄, 오스트리아 동북부 칼슈타인에 위치한 시계제작산업학교(School of the Watchmaking Industry)에 입학해 워치메이커가 되기 위한 견습생 과정을 밟기 시작했습니다.

 

- 청소년기의 발터 랑에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이 본격화되면서 1942년 여름, 당시 18살에 불과한 발터 랑에 역시 군대에 강제 징집되었습니다. 훗날 그는 당시를 떠올리며 순전히 운 때문에 살아남았다고 강조할 만큼 군 생활은 끔찍했습니다. 독일 패전 후 1945년 5월 7일 큰 부상을 안고 다시 가족이 있는 글라슈테로 돌아왔지만 바로 다음날인 5월 8일 폭격을 받아 랑에 운트 죄네의 주요 생산 시설 건물은 심하게 훼손됐습니다. 뿐만 아니라 마침 들이닥친 소련 점령군에 의해 각종 시계 및 부품들, 생산 기계를 포함한 수많은 회사 자산들이 압수되는 것을 지켜보고만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 1954년 당시 30살인 발터 랑에의 모습

 

이러한 시련 속에서도 랑에 가문은 1947년 글라슈테 마을 주민들의 도움을 받아 이전의 포켓 워치용 칼리버 48을 기반으로 사이즈를 줄인 손목시계용 칼리버 28을 개발하는 등 전후 재건의 불씨를 되살리고자 노력합니다. 그러나 1948년 초 독일 사회주의통일당(SED) 정권이 회사를 몰수하고 국영기업(Volkseigener Betrieb, 줄여서 VEB)으로 강제 전환함으로써 발터 랑에는 우라늄 광산으로 끌려가 강제 징용까지 하게 됩니다. 같은 해 11월 가까스로 죽을 각오로 포르츠하임으로 피신한 그는 결국 이듬해 새로운 터전을 마련하고 40년 넘게 동독 땅을 밟지 못하게 됩니다. 그는 1950년대 에른스트 쿤츠와 라코 등에서 워치메이커로 근무했고, 형제인 페르디난트와 함께 가문의 이름을 딴 시계 도매상(A. Lange Pforzheim)을 운영하는 등 1986년 은퇴할 때까지 시계 업계와의 인연을 계속 이어갔습니다. 그 후 마침내 1989년 11월 9일, 시민들에 의해 베를린 장벽이 붕괴되고 이듬해인 1990년 10월 3일 냉전체제의 종식과 함께 독일이 다시 하나로 통일되면서 발터 랑에는 다시 글라슈테를 방문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당시 그는 이미 환갑을 훌쩍 넘긴 66세였지만 다시 회사를 재건할 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기에 고령의 나이는 문제되지 않았습니다. 훗날 그는 90세 생일을 맞은 2014년 한 인터뷰를 통해 "1990년 12월 7일은 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날 중 하나였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렇게 다시 랑에 운트 죄네(Lange Uhren GmbH, 랑에 시계 독일 유한책임회사) 브랜드를 재등록하고 회사 재건의 기치를 본격적으로 내세우게 된 것입니다. 

 

- 1994년 발터 랑에와 귄터 블륌라인

 

랑에 운트 죄네의 재건을 위한 프로젝트에는 또한 든든한 파트너가 함께 했는데요. 20세기 시계 업계를 빛낸 또 다른 거장이라 할만한 귄터 블륌라인(Günter Blümlein, 1943-2001)이 그 주인공입니다. 융한스를 거쳐 1980년대 IWC와 예거 르쿨트르의 성공적인 재편을 이끈 카리스마 넘치는 경영자이자 자회사 VDO 및 LMH(Les Manufactures Horlogères)와 같은 합병된 매뉴팩처를 통해 다양한 실험을 한 개척자이면서 커트 클라우스와 같은 인재를 독려해 IWC의 그 유명한 퍼페추얼 캘린더를 개발하게 한 탁월한 리더였습니다.  

 

- 1994년 간담회에서 처음 공개한 4종의 손목시계

 

천군만마와도 같은 귄터 블륌라인과 그의 회사의 지원을 받게 된 랑에 운트 죄네는 불과 4년여 만인 1994년 10월 24일, 드레스덴 왕궁에서 수많은 미디어 관계자들과 시계 수집가 및 애호가들 앞에서 랑에 1(Lange 1), 아르카데(Arkade), 삭소니아(Saxonia), 투르비용 푸르 르 메리트(Toubillon "Pour le Mérite") 총 4종의 브랜드 첫 손목시계 컬렉션을 공개하기에 이릅니다. 그 후 랑에 운트 죄네의 운명은 여러분들도 잘 아시다시피 30년 만에 2천명이 넘는 직원들을 거느린 세계적인 기업이자 독일이 자랑하는 하이엔드 시계제조사로 우뚝 서게 되었지요.

 

- 1998년 작센 공로훈장 수상 당시의 발터 랑에

 

브랜드 재건의 중심에 있는 발터 랑에는 이러한 업적을 인정 받아 1995년 글라슈테 명예시민상을 시작으로, 1998년 작센 공로훈장, 2011년 부쿠레슈티에서 열린 시저스 상(Caesars Award), 2013년 스위스 고급시계재단(Fondation de la Haute Horlogerie, FHH)이 수여하는 평생 공로상(Hommage à la Passion), 2014년 제네바 시계 그랑프리(Grand Prix d'Horlogerie de Genève, GPHG) 심사위원 특별상, 2015년 독일연방공화국 공로 훈장(Verdienstorden der Bundesrepublik Deutschland, 1등급 십자 훈장) 등 다수의 상과 훈장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2020년 9월 18일, 독일 로스토크 출신의 아티스트 토마스 자스트람이 만든 실물 크기의 청동 조각상이 글라슈테 중심가에 세워지기도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랑에 운트 죄네는 2022년 가을, 매뉴팩처 내 차세대 워치메이커를 육성하는 학교를 발터 랑에 트레이닝 및 고등 교육 센터(Walter Lange Training and Further Education Centre)로 지정하며 발터 랑에의 이름에 경의를 표했습니다. 

 

- 2018년 필립스 옥션의 하이라이트

 

한편 랑에 운트 죄네는 지난 2017년 12월 7일, 발터 랑에에 헌정하는 스페셜 리미티드 에디션인 1815 “오마주 투 발터 랑에”(1815 “Homage to Walter Lange”) 워치까지 공개해 화제를 모았습니다. 12월 7일이라는 날짜부터 특별한 의미가 담겨 있는데, 창립자 페르디난드 아돌프 랑에가 처음 회사를 설립한 날(1845년 12월 7일)이자 증손자 발터 랑에가 브랜드 재건을 공식 선언한 날(1990년 12월 7일)이기 때문입니다. 공통적으로 직경 40.5mm, 두께 10.7mm 크기의 케이스에 일명 데드비트 세컨드로도 불리는 점핑 스윕 세컨드(Jumping sweep seconds) 메커니즘을 갖춘 독자적인 인하우스 수동 칼리버 L1924로 구동합니다.

 

- 1815 “오마주 투 발터 랑에” 스틸 유니크 피스

 

옐로우 골드(27피스 한정), 핑크 골드(90피스 한정), 화이트 골드(145피스 한정), 스틸(유니크 피스) 총 4가지 버전으로 선보였으며, 이중 유일한 스테인리스 스틸 버전(Ref. 297.078)은 이듬해 2018년 5월 13일, 세계적인 경매업체 필립스가 주최한 '제네바 워치 옥션: 7(The Geneva Watch Auction: Seven)'에 출품되어 85만 2,500 스위스 프랑(CHF), 현 환율 기준 13억 원대에 낙찰되는 기록적인 수치를 남겼습니다. 

 

- 2015년 SIHH 현장에서 발터 랑에와 빌헬름 슈미트 

 

- 2015년 발터 랑에와 본사 워치메이킹 스쿨 학생들 

 

발터 랑에 사후 현 랑에 운트 죄네 CEO 빌헬름 슈미트(Wilhelm Schmid)는 한 인터뷰를 통해 이런 말을 남긴 바 있습니다. “발터 랑에는 우리 매뉴팩처의 뜨겁게 뛰는 심장이었습니다(Walter Lange was the beating heart of our manufacture).”라고. 발터 랑에가 세상을 떠난 지 어느덧 7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그가 남긴 유산과 워치메이킹을 향한 뜨거운 열정, 어떠한 역경 속에서도 굴하지 않는 강인한 정신은 우리에게 아직까지 큰 울림을 주고 있습니다. 타임포럼은 그의 100번째 생일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 발터 랑에의 회고록 'Als die Zeit nach Hause kam'

2004년 초판 출간 후 20년만인 2024년 7월, 발터 랑에 100번째 생일을 기념해 확장 업데이트되어 재발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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