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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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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크리비아 공식 인스타그램 캡처 화면 

 

지난 주 인스타그램 등 SNS 상에서는 뜻밖의 티저 하나로 의견이 분분했습니다. 좀처럼 연결고리가 없어 보이는 메이저 브랜드 루이 비통(Louis Vuitton)과 독립 시계 브랜드 아크리비아(Akrivia)의 공식 계정에 올라온 단편적인 이미지 만으로는 두 상반된 브랜드의 만남을 유추하기란 쉽지 않았는데요. 그 베일이 한글날인 바로 어제(10월 9일) 저녁 마침내 벗겨졌습니다. 

 

- LVRR-01 크로노그래프 소네리 케이징 준비 모습 

 

혹자는 이번 파트너십이 독립 시계제작자를 후원하기 위한 목적의 루이 비통 워치 프라이즈(Louis Vuitton Watch Prize for Independent Creatives)에 관한 것일 거라 예측하기도 했지만, 결과물은 전혀 뜻밖의 것이었습니다. 단순한 기술 협력 정도의 차원이 아니라 두 브랜드의 완전한 콜라보(협업)가 성사된 것입니다. 그것도 아주 놀라운 조합의 하이 컴플리케이션 타임피스로 말이죠. LVRR-01 크로노그래프 소네리(LVRR-01 Chronographe à Sonnerie)는 스위스 제네바에 위치한 아뜰리에 아크리비아(Atelier Akrivia)와 루이 비통 라 파브리끄 뒤 떵(La Fabrique du Temps Louis Vuitton)의 긴밀한 협업으로 탄생했습니다. 

 

 

LVRR-01 크로노그래프 소네리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크로노그래프와 소네리(차이밍 메커니즘)를 주축으로 투르비용까지 결합한 소위 그랜드 컴플리케이션 사양의 모델입니다. 카르페 디엠, 스핀 타임, GMT 플라잉 투르비용 등 비교적 다양한 컴플리케이션을 구사하는 루이 비통이지만 이 정도 스케일의 하이 컴플리케이션은 처음으로 선보이는 것입니다. 게다가 이번 모델은 더블-사이드 또는 더블-페이스 형태를 갖추고 있는데 이 또한 브랜드 최초의 시도지요. 이렇듯 유례 없는 프로젝트를 이끌기 위해서는 반드시 리더가 필요합니다. 루이 비통 라 파브리끄 뒤 떵의 두 마스터 워치메이커 미셸 나바스(Michel Navas)와 엔리코 바바시니(Enrico Barbasini)가 든든한 버팀목이 되겠지만, 두 브랜드의 역사적인 만남을 성사시킨 배후에는 루이 비통 시계 부문 총괄 디렉터인 장 아르노(Jean Arnault)의 역할을 빼놓고는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프로젝트를 구체화한 실질적인 브레인은 아크리비아의 창립자이자 자신의 이름을 딴 세컨 브랜드를 성공적으로 안착시킨 스위스 하이 워치메이킹 씬의 신성, 레젭 레젭피(Rexhep Rexhepi)가 맡았습니다. 

 

- 레젭 레젭피

 

본격적인 신제품 소개에 앞서 레젭 레젭피와 아크리비아에 관해 간략하게 덧붙이고자 합니다. 1987년생으로 올해 36세의 젊은 워치메이커인 레젭 레젭피는 옛 유고연방의 하나로 세르비아의 자치주로 속해 있다가 오랜 독립 투쟁 끝에 분리한 코소보 난민 출신으로 어린 시절 워치메이커인 아버지를 따라 스위스 제네바로 이주한 후 자연스레 워치메이커의 길로 들어섰습니다. 불과 14살의 어린 나이에 파텍필립 견습생으로 시작해 이후 정식 워치메이커가 되어 파텍필립에서 수년 간 탄탄하게 경력을 쌓은 그는 BNB 컨셉이라는 회사를 거쳐 현존하는 가장 존경 받는 독립 시계제작자인 프랑수아 폴 주른의 브랜드(F.P. Journe)로 이직해 주른의 대표작인 크로노미터 수버랭, 크로노미터 레조낭스와 같은 다수의 시계들을 조립, 조정하는 일을 담당했습니다. 이후 동생이자 워치메이커가 된 제브데 레젭피(Xhevdet Rexhepi)와 함께 독립해 2012년 제네바 올드 타운에 아뜰리에 아크리비아를 설립,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참고로 아크리비아는 고대 그리스어로 '정확성'을 뜻하는 단어에서 따온 것으로 브랜드의 지향점을 엿볼 수 있습니다. 

 

- 레젭 레젭피의 크로노메트리 컨템포랭

 

여담이지만 필자가 레젭 레젭피를 만나 처음 인터뷰를 나눈 건 2018년 바젤월드로 기억합니다. 당시 그는 자신의 풀네임을 딴 브랜드로 크로노메트리 컨템포랭(Chronomètre Contemporain)이란 컬렉션을 처음 선보였는데, 당시 아크리비아나 레젭 레젭피가 업계에서 그리 존재감이 있는 이름이 아니었음에도 신제품을 향한 열기는 자못 뜨거웠습니다. 단숨에 그 해 제네바 시계그랑프리(GPHG 2018)에서 남자 시계 부문을 수상한 것만 봐도 당시 워치 미디어와 컬렉터들의 반응이 얼마나 즉각적이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말 그대로 현대적인 크로노미터를 표방한 크로노메트리 컨템포랭은 구조적으로 아름답고 클래식한 무브먼트 뿐만 아니라 놀라운 수준의 하이엔드 피니싱으로 특히 유명세를 떨쳤는데요. 2022년 추가된 세컨드 에디션 크로노메트리 컨템포랭 II까지 포함하면 몇 종의 베리에이션이 나왔지만 전부 엄청난 웨이팅을 감수하지 않으면 구할 수 없는 시계가 돼 버렸습니다. 마침 코로나 팬데믹 시기와 맞물려 레젭 레젭피의 인기는 더욱 높아졌고 그의 행보는 흡사 대선배인 필립 듀포나 카리 부틸라이넨을 떠올리게 할 정도입니다. 이번 루이 비통과의 파트너십 또한 그가 하이 워치메이킹 씬에서 얼마나 스타로 부상했는지를 보여주는 척도인 셈입니다.

 

- LVRR-01 크로노그래프 소네리

 

사설이 길었습니다. 그럼 이제 LVRR-01 크로노그래프 소네리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LVRR-01 크로노그래프 소네리는 고귀한 플래티넘 케이스로 선보입니다. 케이스의 직경은 39.9mm, 두께는 12.2mm으로 기능해 비해 컴팩트한 사이즈가 눈길을 끕니다. 그리고 이러한 류의 하이 컴플리케이션 피스로는 드물게 30m 방수까지 지원합니다. 원통형에 가까운 라운드 케이스의 볼륨감 있는 실루엣부터 인상적인데 루이 비통의 아이코닉 워치 컬렉션 땅부르(Tambour)의 케이스 디자인을 재해석한 것입니다. 그리고 각면 처리한 크라운과 푸셔 형태는 또 에스칼 스핀 타임(Escale Spin Time)의 그것을 연상시킵니다. 이렇듯 외형적으로는 최대한 루이 비통 워치 컬렉션의 DNA를 담고자 고심한 흔적을 보여줍니다.  

 

 

반투명의 스모크 사파이어 크리스탈을 적용한 다이얼 면으로 일부 오픈워크 가공한 하이 컴플리케이션 무브먼트를 그대로 노출합니다. 이러한 모습은 아크리비아의 일부 컬렉션을 떠올리게 하는데, 다이얼의 소재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전체적인 인상은 완전히 다르다 하겠습니다. 사파이어 다이얼 위에 또한 전통 에나멜링 기법 중 하나인 플리크 아주르(Plique-à-jour, 반투명의 에나멜을 거듭 채운 형태)로 6개의 골드 큐브 장식을 더했는데, 이는 루이 비통의 상징적인 스핀 타임 점핑 아워에서 착안한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6시 방향에 5분 단위로 느리게 한 바퀴 회전하는 투르비용 레귤레이터를 노출하는데, 일반적인 원-미닛 투르비용과는 모션이 다를 수 밖에 없습니다. 미러 폴리시드 마감한(두 개의 암으로 구성된) 아치형의 브릿지 디자인은 루이 비통을 상징하는 LV 이니셜을 의식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파텍필립 재직 당시부터 투르비용에 남다른 재능을 발휘한 레젭 레젭피의 장기가 빛나면서도 두 브랜드의 새로운 파트너십을 의식한 면면을 작은 디테일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투르비용과 모노푸셔 크로노그래프 두 특징적인 컴플리케이션의 결합은 한편으로는 레젭 레젭피가 독립 후 최초로 선보인 아크리비아의 AK-01 떠올리게도 합니다. 어느 분야든 마찬가지겠지만 완전히 무에서 유를 창조하기란 매우 어렵기 때문에 아무래도 기존의 작업을 바탕으로 새로운 컴플리케이션을 유기적으로 통합하는 쪽을 택했을 확률이 큽니다. 

 

 

상단에는 다수의 클러치, 레버, 컬럼 휠 등이 어우러진 크로노그래프 관련 부품들이 복잡하게 맞물려 있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테두리를 감싼 스틸 공과 우측 하단의 블랙 폴리시드 마감한 해머는 스트라이킹 메커니즘을 보여줍니다. LVRR-01 칼리버의 차임은 크로노그래프 기능과 맞물려 있습니다. 지난해 오메가가 선보인 크로노 차임과도 비슷한데요. 크로노 차임처럼 크로노그래프 기능 작동시 확인할 수 있는 분과 초 단위를 영롱한 차임 사운드로 알려줍니다. 1시간, 15분, 분 단위를 타종하는 전통적인 리피터와 완전히 결을 달리하는 유니크한 방식인데 이미 오메가의 선례가 있기 때문인지 완전히 새롭지만은 않습니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스트라이킹 메커니즘을 제어하는 독립 푸셔가 없기 때문에 크로노그래프용 푸셔로 제어해야만 합니다(온-디맨드 액티베이션이 아니라 아무래도 부수적인 느낌이 더 강합니다). 또한 싱글 공과 해머 세트로 구성돼 있기 때문에(보통 더블 해머와 공을 택하지만) 소네리라는 이름이 무색하게도(?) 다채로운 사운드를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분 단위를 싱글 차임으로 묵직하게 한 번, 초 단위를 여러 번 계속 타종하는 방식도 우아함과는 다소 거리가 있고요. 철저히 크로노그래프 기능에 포커스를 맞춰 이를 보조하는 수단으로서의 차임이라는 점에서 나름의 성취가 있을 따름입니다. 

 

 

시간을 표시하는 타임키핑과 별개로 여러 컴플리케이션을 일정한 에너지로 제어하기 위해 레젭 레젭피는 으레 당연시되는 트윈 배럴 시스템을 적용했습니다. 타임키핑 및 투르비용을 위한 배럴과 크로노그래프 및 차임을 위한 배럴과 기어트레인을 각각 분리함으로써 오작동의 위험을 미연에 방지한 것입니다. 특히 크로노그래프 및 스트라이킹 메커니즘 작동시 순간적으로 강한 토크가 발생하는데 이를 위한 동력을 오롯이 해당 기능에만 사용하도록 하는 것이 관건이었습니다. 이는 또한 타임키핑에도 영향을 미치지 않기 때문에 옳은 해법입니다. 아뜰리에 아크리비아가 개발하고 루이 비통 라 파브리끄 뒤 떵에서 최종 조립, 조정된 LVRR-01 칼리버는 총 391개의 부품과 41개의 주얼로 구성돼 있으며, 시간당 21,600회 진동하고, 파워리저브는 약 3일간(72시간)을 보장합니다. 

 

 

더블-페이스 중 케이스백 면으로는 무브먼트를 노출하지 않는 대신 크로노그래프 기능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순백의 크로노그래프 다이얼은 팔라듐 도금 처리한 화이트 골드 베이스에 800도씨 이상 고온의 오븐에서 수 차례 구워낸 그랑 푀 에나멜(Grand Feu enamel)을 사용해 전통성을 강조합니다. 해당 다이얼은 니콜라스 두블(Nicolas Doublel)이 이끄는 전문 에나멜 아뜰리에에서 완성했다고. 19세기 포켓 크로노그래프(스톱워치)처럼 센트럴 미닛(레드)과 세컨드(블루) 핸드로 나눠서 컬러 트윈 스케일과 함께 표시하기 때문에 나름대로 가독성은 좋은 편입니다. 한편 플래티넘 케이스백 한쪽에는 '루이는 레젭과 함께 순항한다(Louis cruises with Rexhep)'는 뜻의 문구를 새겨 루이 비통과 아크리비아의 첫 파트너십을 의미 있게 기념합니다. 앞면 스모크 사파이어 다이얼에도 아크리비아에 덧붙인 LV 로고(AKRILVIA)를 통해 두 브랜드의 상징적인 협업을 자랑스럽게 표시합니다. 

 

 

루이 비통 X 아크리비아의 LVRR-01 크로노그래프 소네리는 단 10피스 한정 제작 출시하는 리미티드 에디션으로, 루이 비통의 시그니처와도 같은 트렁크 박스에 담아 시계가 제공됩니다. 트렁크 외부에도 'AKRILVIA' 로고와 함께 한정 고유 넘버를 표기해 누가 봐도 한 눈에 특별한 시계임을 알 수 있게 했습니다. LVRR-01 크로노그래프 소네리의 리테일가는 무려 45만 스위스 프랑(CHF)으로, 한화로는 대략 6억 7천만 원대에 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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