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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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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뇌샤텔의 독립 시계제조사 HYT가 오늘(8월 29일)자로 개막한 제네바 워치 데이즈(GWD 2023)에서 신제품인 코니컬 투르비용 인피니티 사파이어(Conical Tourbillon Infinity Sapphires)를 공개했습니다. 코니컬 투르비용은 2022년 브랜드 창립 1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올해 초 새롭게 론칭한 하이 워치메이킹 라인업으로, 유명 마스터 워치메이커인 에릭 쿠드레이(Eric Coudray)가 무브먼트 개발에 참여해 화제를 모았습니다. 그는 우리에겐 예거 르쿨트르의 자이로투르비용을 설계하고, 독립 시계브랜드 카베스탕(Cabestan)의 코어 컬렉션을 구축한 인물로도 비교적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지난 2012년에는 워치메이킹 분야에 공헌도가 큰 거장에게만 수여하는 가이아 상(Prix Gaïa)을 수상하기도 했지요. 

 

 

에릭 쿠드레이는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반에 걸쳐 작센 지방에서 활약한 독일의 워치메이커 발터 프렌델(Walter Prendel)이 아브라함-루이 브레게(Abraham-Louis Breguet)의 투르비용 이스케이프먼트를 독자적으로 응용 발전시키는 과정에서 수평으로 30° 가량 기울인 밸런스와 15° 기울인 이스케이프 휠과 23° 기울인 앵커를 사용한 특징적인 설계에서 영감을 받아 코니컬 투르비용의 무브먼트를 완성했습니다. 원뿔형을 뜻하는 코니컬을 굳이 강조한 이유도 다이얼 센터에 강조한 개성적인 투르비용 케이지와 이스케이프먼트 구조를 의식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현존하는 ‘투르비용의 마스터’로서 쿠드레이는 사실 이러한 형태의 코니컬 투르비용 무브먼트와 시계를 꾸준히 개발해왔는데요. 카베스탕의 트리플 액시스 투르비용 시리즈를 비롯해, 2020년 MB&F와 협업한 레거시 머신 썬더돔과 같은 시계들이 특히 그의 재능을 쥐어짜낸 역작이라 할 만 합니다. 반면 HYT를 위해 만든 코니컬 투르비용은 상대적으로 그의 전작들과 비교하면 기계적인 복잡함은 조금 덜하지만, 마치 태양계를 연상시키는 각각의 색이 다른 스피어(구) 형태의 컬러 젬스톤(사파이어)을 다축 투르비용의 움직임과 맞물려 다른 속도로 회전하게 함으로써 또 색다른 재미를 선사합니다. 

 

 

가벼운 티타늄 소재로 제작한 코니컬 투르비용 케이지는 시계방향으로 30초에 한번씩(분당 2회) 풀 회전하는데, 이때 직경 약 2.5mm 크기의 멀티 파셋 가공한 3가지 컬러의 사파이어 스피어가 각기 다른 종류의 위성처럼 주변을 같이 맴돕니다. 푸시아(자홍색), 블루-그레이, 옐로우 컬러 사파이어 스피어는 각각 15초, 12초, 10초에 한번씩 빠르게 회전하는데 이렇듯 말로 길게 설명하는 것 보다 시계를 실제 가까이에서 접하게 되면 특유의 다이내믹한 움직임에 감탄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에 가지 형태로 나뉘어 쌍을 이루는 크기가 작은(직경 1.5mm) 6개의 사파이어 스피어까지 함께 회전하면 더욱 볼 만할 것입니다. 브랜드는 이를 가리켜 굳이 '혼돈의 애니메이션(Chaotic animation)'이라고 강조할 정도니까요. 아직 제품 관련해 작동 영상이 공개되지 않은 만큼 관심 있는 분들은 추후 SNS 채널을 통해 확인해보시기 바랍니다. 

 

 

각각의 컬러 사파이어 스피어들은 반클리프 아펠이나 크리스티앙 반 더 클라우의 천체시계처럼 행성의 공전 속도까지 고려해 유의미한 목적을 가지고 제작된 것은 아니지만, 그 미니어처 자체로 보는 재미를 선사하기 때문에 HYT의 코니컬 투르비용 컨셉과도 잘 어울린다고 생각합니다. 한편으로는 제이콥앤코의 대표작인 아스트로노미아 시리즈도 떠올리게 하는데, 이축 투르비용 케이지와 시간을 표시하는 오픈워크 다이얼, 3차원 구조의 미니어처가 카루셀 형태의 축으로 연결돼 같이 함께 회전하는 제이콥의 구동 방식과는 또 근본적인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붕규산 유리로 만든 캐필러리 튜브(Capillary tube, 모세관) 안에 컬러 리퀴드를 넣어 레트로그레이드 형태로 시를 표시하고 센트럴 미닛 핸드와 미닛 트랙으로 분을 따로 표시하는 HYT만의 시그니처 디스플레이 방식을 그대로 고수하면서 유니크한 다축 투르비용 설계를 자연스럽게 통합시켰다는 점에서 타 제조사들과 결정적으로 차별화하는 HYT만의 독창성을 엿볼 수 있습니다.  

 

 

HYT에서만 볼 수 있는 익스클루시브 수동 칼리버 701-TC는 총 533개의 부품과 61개의 주얼로 구성돼 있으며, 이중 투르비용 케이지에만 159개의 부품이 사용됐습니다. 케이스에 66개, 다이얼의 39개 부품까지 더하면 신작 코니컬 투르비용 인피니티 사파이어에는 무려 750개에 달하는 부품들이 사용됐습니다. 특허 받은 마이크로 플루이딕 모듈을 가능케 하는 자동차 엔진의 피스톤을 닮은 두 개의 벨로즈(Bellows) 형태의 부품과 일종의 레저부아 장치인 플루이딩 리스트릭터(Fluidic restrictors, 유동 흐름 제한 장치) 등 기본 부품들만도 충분히 복잡한데 에릭 쿠드레이와의 협업을 통해 HYT는 기술적으로 한 단계 더 도약한 셈입니다. 참고로 밸런스는 시간당 21,600회 진동하고(3헤르츠), 파워리저브는 약 40시간을 보장합니다. 버블 형태의 사파이어 크리스탈로 보호한 다이얼 면과 시스루 케이스백을 통해 독자적인 무브먼트의 구조를 케이스 앞뒤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로즈 골드와 블랙 코팅 마감한 티타늄을 혼용한 케이스의 크기는 가로 48 x 세로 52.3mm이며, 두께는 25.15mm로 사이즈는 한눈에 봐도 큼지막합니다. 케이스는 30m 생활방수를 지원하고, 블랙 러버 바탕에 엠보싱 가공한 브라운 소가죽을 덧대 스포티하면서도 고급스럽습니다. HYT 코니컬 투르비용 인피니티 사파이어(Ref. H03131-A)는 단 8피스 한정 선보이는 리미티드 에디션으로, 리테일가는 39만 스위스 프랑(CHF)으로 책정됐습니다. 한화로는 현 환율 기준 대략 5억 8천만 원대에 달하네요. 놀라운 기술적인 성취 뿐만 아니라 HYT가 지난 10년간 선보인 시계들 중에서도 손에 꼽을 만큼 가격대가 높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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