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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좌측부터 피에르, 루이, 알프레드(父), 자크 순

Archives Cartier © Cartier

 

까르띠에(Cartier)를 창립한 루이-프랑수아 까르띠에(Louis-François Cartier)의 후계자 알프레드(Alfred)에게는 3명의 아들- 루이(Louis), 자크(Jacques), 피에르(Pierre)- 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성인이 되어 각자 까르띠에 파리, 런던, 뉴욕 지사를 책임지며 해당 지역에 까르띠에 맨션과 플래그십 부티크를 건립하고, 이 역사적인 세 '템플(Temple)'에서 바로 까르띠에의 눈부신 성공 신화가 이어집니다. 

 

- 현 까르띠에 런던 뉴 본드 스트리트 부티크 전경 

© Cartier

 

까르띠에 런던 플래그십 부티크를 이끈 자크 까르띠에는 아들 장-자크 까르띠에(Jean-Jacques Cartier)에게 1960년대 중반 경영권을 승계했는데, 마침 1960년대 런던은 '스윙잉 식스티즈(Swinging Sixties)' ‘스윙잉 런던(Swinging London)’으로 불리며 창의적이고 역동적인 에너지로 대변되는 젊은 세대 문화의 메카로 부상하고 있었습니다. 

 

- 1967년 제작된 오리지널 크래쉬 워치

Vincent Wulveryck, Collection Cartier © Cartier

 

장-자크는 그의 백부인 루이 까르띠에(산토스, 탱크 등을 디자인한 인물)의 영향을 받아 젊은 시절부터 시계에도 무척 관심이 많았는데요. 하루는 본드 스트리트 매장에 한 VIP 고객이 교통 사고로 파손된 맥시 오벌(Maxi Oval) 워치- 프랑스에서는 베누아 알롱제(Baignoire Allongée)로 통하는 모델- 를 가지고 와서 수리를 의뢰했는데, 케이스가 완전히 찌그러진 모습에 강렬한 인상을 받은 장-자크는 특유의 비대칭 케이스를 재현한 시계를 디자인하게 되었고, 이를 1967년 '충돌' '사고'를 뜻하는 크래쉬(Crash)로 이름 붙여 출시하게 됩니다. 매우 한정된 수량으로만 선보인 크래쉬 워치는 뜻밖에도 고객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고, 독특한 시계를 수집하는 컬렉터들의 마음까지 사로잡아 훗날 까르띠에 런던을 상징하는 컬트 워치로 자리매김하게 됩니다. 

 

- 1990년 출시된 크래쉬 워치 

Nick Welsh, Collection Cartier © Cartier

 

이후에도 까르띠에 런던 지사는 크래쉬의 아이코닉 디자인을 계승하는 후속 버전을 종종 선보였는데요. 최근인 2019년, 뉴 본드 스트리트에 까르띠에 런던 플래그십 부티크를 새롭게 리뉴얼 오픈하면서 1967년 오리지널 크래쉬를 충실하게 복각한 리이슈(Reissue) 모델을 기간 한정판으로 선보여 업계에 난데없이 크래쉬 열풍을 불러왔습니다. 크래쉬 리에디션은 세계적인 힙합 스타 제이지와 예(칸예 웨스트)가 선택한 시계로도 워치 커뮤니티와 SNS에서 지속적인 화제를 모았고, 이러한 화제성은 빈티지 크래쉬의 가치 또한 천정부지로 치솟게 했습니다. 일례로 2021년 소더비 제네바 경매를 필두로, 이듬해인 2022년 온리 워치 옥션 플랫폼인 루페 디스(Loupe This)에서 1967년 오리지널 크래쉬 워치가 무려 165만 달러(USD), 당시 환율 기준 한화로는 약 23억 원대에 낙찰돼 크래쉬 역대 세계 경매 신기록을 수립한 바 있습니다. 

 

- 2020년 홍콩 워치 옥션 X에 출품된 크래쉬 리이슈 

사진 출처: 필립스 ⓒ Phillips

 

까르띠에 크래쉬의 매력은 과연 무엇일까요? 현대의 시계애호가들 및 컬렉터들은 왜 이 찌그러진 외관에 기이한 배경을 지닌 시계에 열광하는 걸까요? 해답은 크래쉬 워치 그 자체에서 찾을 수 있을지 모릅니다. 어느 브랜드에서도 본 적이 없는 메종 까르띠에만의 유니크한 디자인 실험의 산물이기 때문입니다. 혹자는 크래쉬를 두고 스페인의 초현실주의 화가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i)의 1931년 작품 '기억의 지속(The Persistence of Memory)'에 등장하는 흘러내리는 시계를 연상시킨다고도 말합니다. 그러나 장-자크 까르띠에가 시계를 선보이게 된 과정을 서술했듯 크래쉬의 가장 큰 신비는 철저한 '우연성'에 있습니다. 사고로 찌그러진 시계에서 새로운 워치 디자인의 가능성을 보리라고 처음엔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요? 그러나 우연에서 싹튼 아이디어를 메종의 아카이브로 품은 선견지명에 현대의 컬렉터들이 뒤늦게나마 열렬히 화답하게 된 과정은 결코 우연히 아닐 것입니다.

 

- 2023년 크래쉬 런던 뉴 본드 스트리트 익스클루시브

© Cartier

 

2019년 크래쉬 리에디션(옐로우 골드 버전)의 눈부신 성공에 힘입어 까르띠에는 올해 다시 크래쉬가 탄생한 역사적인 베뉴인 까르띠에 런던 뉴 본드 스트리트 부티크에서만 구매할 수 있는 새로운 익스클루시브 모델을 선보입니다. 고귀한 플래티넘 소재로 선보이면서 플래티넘 케이스와 짝을 이루는(메종의 근래 워치메이킹 코드이기도 한) 루비 카보숑을 비즈 크라운에 세팅해 특별함을 더합니다. 1980~90년대에도 플래티넘 버전의 크래쉬를 리미티드 에디션으로 선보인 적이 있기 때문에 이러한 전통을 계승하는 의미 또한 담고 있는 셈입니다. 

 

- 크래쉬 런던 뉴 본드 스트리트 익스클루시브 드로잉

© Cartier

 

비대칭 케이스 특성상 사이즈는 따로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무브먼트는 아담한 직경의 매뉴팩처 수동 칼리버 1917 MC를 탑재했습니다(진동수 3헤르츠, 파워리저브 38시간). 까르띠에 클래식 모델들이 으레 그렇듯 무브먼트를 드러내진 않지만 플래티넘 케이스백 중앙에 까르띠에 런던 부티크를 상징하는 엠블럼과 함께 레퍼런스 넘버, 소재(Pt 950), 원산지(Swiss Made) 표기 등을 나란히 보기 좋게 인그레이빙했습니다. 그레이톤의 부드러운 송아지가죽 스트랩과 함께 폴딩 버클을 장착했습니다. 까르띠에 크래쉬 런던 뉴 본드 스트리트 익스클루시브 모델(Ref. CRWGCH0050)은 한정판은 아니지만, 크래쉬 워치 특성상 일정 기간에 걸쳐 극소량만 제작, 출시될 것으로 보입니다. 리테일가는 4만 3,000 파운드(GBP), 한화로는 대략 7천만 원대로 책정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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