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짱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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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워치스앤원더스 제네바(Watches and Wonders Geneva, 이하 WWG)에 처음 참가한 불가리(Bvlgari)가 올해 WWG 2022에는 불참했습니다. 같은 LVMH 그룹의 식구들은 지난해 이어 이번 박람회에도 모조리 참가했는데도 말이죠. 내부 사정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만, 불가리 정도 되는 대어가 큰 이유 없이 그런 선택을 하지는 않았을 터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WWG 2022에 한발 앞서 세계에서 가장 얇은 시계 옥토 피니씨모 울트라(Octo Finissimo Ultra)를 선보이며 스포트라이트를 먼저 독차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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얇은 시계를 향한 불가리의 도전은 지난 2014년부터 이어져 왔습니다. 대장정의 시작은 당시 세계에서 가장 얇은 수동 투르비용 칼리버 BVL 268(두께 1.95mm)를 탑재한 옥토 피니씨모 투르비용이었습니다. 이후 옥토 피니씨모 미닛 리피터(2016년), 옥토 피니씨모 오토매틱(2017년), 옥토 피니씨모 투르비용 오토매틱(2018년), 옥토 피니씨모 크로노그래프 GMT 오토매틱(2019년), 옥토 피니씨모 투르비용 크로노그래프 스켈레톤 오토매틱(2020년), 옥토 피니씨모 퍼페추얼 캘린더(2021년), 그리고 올해 두께 1.8mm로 세계에서 가장 얇은 시계로 등극한 옥토 피니씨모 울트라까지, 모두 각자의 분야에서 울트라-씬 기록을 경신했습니다. 올해 마지막 고지까지 정복한 옥토 피니씨모 울트라는 불가리에게 여러모로 의미가 남다릅니다. 울트라-씬으로 점철되는 옥토 피니씨모 시리즈의 퍼즐을 완성하는 마지막 조각으로써 불가리 옥토 컬렉션 10주년까지 기념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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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토 피니씨모 울트라 이전의 ‘세계에서 가장 얇은 시계’ 타이틀은 지난 2018년 첫선을 보여 2020년 상용화까지 성공한 피아제 알티플라노 울티메이트 컨셉이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해당 모델의 두께는 2mm. 별도의 무브먼트 없이 케이스백을 메인 플레이트 삼아 배럴 및 기어 트레인, 밸런스를 평면으로 얇게 배치한 덕분입니다. 심지어 시간을 표시하는 다이얼도 그와 동일선상에 놓입니다. 즉, 무브먼트가 곧 케이스고, 케이스가 곧 무브먼트인 셈입니다. 옥토 피니씨모 울트라 역시 같은 논리를 따랐습니다. 둘을 분리해서 접근하는 일반적인 방식으로는 마땅한 대안이 없었을 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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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티플라노 울티메이트 컨셉과 옥토 피니씨모 울트라의 차이는 시간을 표시하는 방식에서 나타납니다. 전자가 시침과 분침이 하나의 축을 공유하는 일반적인 구조라면, 후자는 시와 분을 서로 다른 서브 다이얼을 통해 따로 표시하는 레귤레이터 형태로 설계했습니다. 울트라-씬에서 드문 이 방식은 세로축의 길이를 최소화하기 위함입니다. 보통의 경우 하나의 축에 두 개의 바늘을 설치해야 하니 그만큼 세로축이 길어질 수밖에 없지만, 레귤레이터의 경우 두 개의 세로축에 하나의 바늘을 각각 설치하기에 상대적으로 축을 짧게 만들 수 있습니다. 궁극적으로는 무브먼트 및 케이스의 두께를 그만큼 줄일 수 있게 됩니다. 별도의 초침 없이 1분에 1회전하는 4번 휠 표면에 스케일을 표시해 초를 나타내는 것 역시 신선하게 다가옵니다. 4번 휠 자체가 스몰 세컨드 역할까지 겸하는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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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휠(시계 정면에서는 3시 방향)이 시간 세팅, 오른쪽 휠(8시 방향)이 와인딩을 각각 담당

 

옥토 피니씨모 울트라가 울트라-씬 왕좌를 탈환한 또 다른 비결은 크라운에 있습니다. 전통적인 크라운의 경우 그 회전에 맞춰 수직 방향으로 회전하는 와인딩 스탬과 같은 부품을 필연적으로 사용할 수밖에 없습니다. 반면, 옥토 피니씨모 울트라는 크라운을 생략하며 모든 부품이 수평으로 회전하도록 설계했습니다. 수직으로 배치하는 부품이 없으니 두께도 그만큼 줄일 수 있었던 겁니다. 시간 세팅과 와인딩 메커니즘도 분리했습니다. 3시 방향과 8시 방향에 살짝 튀어나온 톱니가 각각을 담당합니다. 8시 방향 휠을 돌리면 10~11시 방향의 큼지막한 배럴이 조금씩 회전하며 동력을 생산하는데요. 독특하게도 배럴의 래칫 휠 표면에 디지털 세계로 통하는 QR 코드가 새겨져 있습니다. 관련 코드를 따라가면 시계 구조와 제작 과정, 개발자 인터뷰, 옥토 피니씨모를 주제로 작업한 아티스트 작품 영상 등 해당 모델과 관련된 다양한 온라인 콘텐츠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해당 코드는 블록체인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시계 소유권을 인증함과 동시에 관련 영상까지 NFT를 통해 소유권을 보장한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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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시계 방향) 베젤, 메인 플레이트 및 케이스백, 미들 케이스, 개스킷

 

옥토 피니씨모 특유의 팔각형 케이스는 두께를 줄이기 위해 면을 최소화하고 간결하게 다듬었습니다. 표면은 옥토 피니씨모의 정석대로 샌드 블라스트 가공을 통해 무광 처리했습니다. 사이즈는 직경 40m입니다. 베젤 및 미들 케이스는 기존 제품과 동일하게 티타늄으로 제작했지만, 무브먼트의 메인 플레이트 역할을 겸하는 케이스백은 내구성을 고려해 보다 견고한 텅스텐 카바이드로 만들었습니다. 텅스텐 카바이드는 매우 단단한 소재(스테인리스 스틸의 약 2배)로 알려져 있습니다. 금속을 절삭하는 공구로 쓰이곤 하는 것도 그래서입니다. 가공도 그만큼 힘든데요. 옥토 피니씨모 울트라의 경우 레이저 가공을 활용했다고 합니다. 해당 소재를 베이스로 부품을 최대한 얇게 배치한 무브먼트는 수동 인하우스 칼리버 BVL 180입니다. 라쇼드퐁의 독창적인 무브먼트 제조사 컨셉토(Concepto)와의 협업으로 완성했다고 합니다. 시간당 진동수는 28,800vph, 파워리저브는 50시간으로 이러한 극도의 울트라-씬 무브먼트치고는 높은 편입니다. 역시나 무브먼트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큼지막한 배럴 덕분입니다. 모듈형으로 만든 밸런스는 얇울트라-씬을 위해 레귤레이터를 생략하고 얇은 웨이트를 표면에 부착하는 프리스프렁 타입으로 설계했습니다. 다이얼 및 무브먼트를 덮는 사파이어 크리스탈의 두께는 0.3mm에 불과합니다. 핸즈와 사파이어 크리스탈 간의 간격은 단 0.1mm. 다이얼 3시와 6시 방향에는 만약을 대비해 실리콘 범퍼를 설치했습니다. 케이스 방수 사양은 10m입니다. 베젤 아래에 개스킷을 설치하긴 했지만, 아무래도 극도로 얇은 두께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어느정도 포기해야 하는 부분이 아닌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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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스에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티타늄 브레이슬릿은 디자인은 기존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극도로 얇아진 케이스에 맞춰 두께를 절반 정도 줄였다고 합니다. 표면 가공은 케이스와 동일하게 샌드 블라스트 처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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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토 피니씨모 울트라는 올해의 토킹피스답게 크라운을 없앤 구조와 다이얼보다 배럴을 비대하게 키운 레귤레이터 디자인을 두고 말이 많긴 합니다만, 그럼에도 기계식 시계라는 틀 안에서 한계를 뛰어 넘어 울트라-씬의 역사를 다시 썼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합니다. 가격은 40만 유로. 전 세계 10개 한정 생산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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