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칸 헤리티지를 간직한 스위스 시계제조사 해밀턴(Hamilton)이 1970년대 영국 왕립 공군(Royal Air Force, RAF)을 위해 제작, 공급한 밀리터리 크로노그래프를 현대적으로 부활시킨 신제품을 선보였습니다. 카키 파일럿 파이오니어 메커니컬 크로노그래프(Khaki Pilot Pioneer Mechanical Chronograph)가 그 주인공으로, 외관부터 군용 빈티지 크로노그래프의 인상을 강하게 풍기고 있습니다. 

카키 파일럿 파이오니어 메커니컬 크로노그래프는 앞서 출시한 또 다른 RAF 리-이슈 모델인 카키 에비에이션 파일럿 파이오니어 메커니컬(Ref. H76419531)과도 닮아 있습니다. 쓰리 핸즈 모델인 전작과 달리 크로노그래프 기능을 갖추고 있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지만 말이죠. 유선형의 우아한 실루엣이 돋보이는 배럴형 케이스의 디자인도 가시적인 차이를 보입니다. 

스테인리스 스틸 케이스는 대부분을 브러시드 가공해 의도적으로 군용시계 특유의 무광 디자인 코드를 반영합니다. 케이스의 직경은 40mm, 두께는 14.35mm로, 반사 방지 코팅 처리한 전면 박스 형태의 사파이어 크리스탈을 감안하고도 비교적 슬림한 두께를 자랑합니다.

다이얼은 어김없이 블랙을 선택했습니다. 전체 우둘투둘하게 그레인 마감 처리함으로써 역시나 무광 코드를 이어갑니다. 이는 빛의 난반사를 방지해 가독성을 보장하면서 군용시계만의 미감을 더합니다. 화이트 래커 처리한 핸즈 및 아워 마커를 대신하는 도트에는 올드 라듐톤을 재현한 베이지 컬러 슈퍼루미노바를 코팅해 역시나 빈티지한 인상을 강조합니다. 브랜드 로고, 미닛 트랙, 크로노그래프 카운터 테두리를 베이지 프린트로 통일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입니다. 

크로노그래프 제품임에도 비교적 슬림한 케이스 두께의 비결은 다름아닌 무브먼트에 있습니다. 작년에 컬렉션에 추가한 인트라-매틱 크로노그래프 H의 엔진인 수동 크로노그래프 칼리버 H-51를 이어 사용하기로 한 것입니다(1970년대 오리지널 군납 빈티지 모델이 수동이었던 것도 중요한 요인일 터!). 신뢰할 만한 ETA 7753을 베이스로 한 자동 버전(H-31)에서 로터 및 캘린더 휠과 데이트 디스크를 제거하고 와인딩 부품 일부를 교체하는 등의 수정을 가했으며, 날짜 표시 기능을 생략했기 때문에 과거 케이스 측면에 위치하던 코렉터도 당연히 볼 수 없습니다. 해밀턴은 새로운 카키 파일럿 파이오니어 메커니컬 크로노그래프 모델에 자성에 영향을 받지 않는 실리콘 밸런스 스프링으로 이식한 H-51-Si 버전을 탑재해 더욱 힘을 실었습니다. 시간당 진동수는 28,800회(4헤르츠), 파워리저브는 약 60시간 정도를 보장하며, 오리지널 밀리터리 크로노그래프의 디테일에 충실하기 위해 솔리드 케이스백을 사용해 무브먼트는 노출하지 않습니다. 케이스 방수 사양은 100m. 

스트랩은 브라운 컬러 소가죽 스트랩을 사용하면서 의도적으로 러프하게 마감하고 스티치까지 같은 컬러로 통일했습니다. 러그 사이즈가 22mm이기 때문에 다른 에프터 마켓 스트랩으로 자유롭게 교체하며 소위 말하는 줄질을 즐길 수 있습니다.  

카키 파일럿 파이오니어 메커니컬 크로노그래프(Ref. H76409530)는 한정판이 아닌 레귤러 모델로 계속 출시하며, 리테일가는 1천 995 스위스 프랑(CHF)으로 책정됐습니다. 국내 출시 여부 및 시기는 아직 미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