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치스앤원더스 제네바 2021(Watches & Wonders Geneva 2021)에 참가한 독립 시계 브랜드들의 주요 신제품을 한 자리에 모았습니다.
- H. 모저 앤 씨(H. Moser & Cie.)
Endeavour Centre Seconds X Seconde/Seconde/
인데버 센터 세컨즈 X 세컨드/세컨드/
미니멀리즘으로 시계 본연의 가치에 다가가는 참신한 모습을 보여줬던 샤프하우젠의 매뉴팩처 H. 모저 앤 씨(H. Moser & Cie.)가 또 한 번 그들 다운 시계를 만들어냈습니다. 로고도 인덱스도 없이 흡사 장난감처럼 보이기도 하는 이 시계를 만들기 위해 롤렉스나 파텍필립 등의 빈티지 워치를 새로운 시각에서 바라보고 재해석한 프랑스의 아티스트 세컨드/세컨드/(seconde/seconde/)와 손을 맞잡았습니다. 세컨드/세컨드/의 전법은 시계의 바늘을 제거한 뒤 시계를 상징할 수 있는 요소로 대체하면서(hand swap) 모종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입니다. 이때 상징물은 픽셀 형태로 제작되며, 기존의 정품 바늘은 별도의 보관함에 넣어 시계의 주인에게 전달됩니다. H. 모저 앤 씨의 CEO 에드워드 메일란(Edouard Meylan)은 이 같은 작업에 흥미를 느끼고 자신들의 시계를 어떻게 바꿔줄 수 있는지 의뢰했다고 합니다. 세컨드/세컨드/의 답은 지우개(Eraser)였습니다. 브랜드의 흔적을 시계에서 지움으로써 순수하게 시간과 시계에 집중한다는 철학을 지우개라는 평범한 사물을 동원해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곡선으로 러그와 측면을 멋스럽게 꾸민 스테인리스스틸 케이스의 지름은 40mm, 두께는 10.7mm입니다. 앞뒤 모두 사파이어 크리스털 글라스를 적용했습니다. 크라운에는 브랜드를 의미하는 알파벳 M이 새겨져 있습니다. 방수는 30m입니다. 선버스트 패턴이 들어간 펑키 블루 퓨메(Funky Blue fume) 다이얼에서 로고와 시간을 확인할 수 있는 인덱스는 보이지 않습니다. 대신 분침과 초침 그리고 픽셀 지우개로 모습을 바꾼 시침이 덩그러니 놓여 있을 뿐입니다. 그간의 파격적인 시도가 무색해 보이는 실로 대범한 시도라 할 수 있습니다.
시계 내부에는 워크호스인 매뉴팩처 셀프와인딩 칼리버 HMC 200을 탑재했습니다. 양방향 와인딩을 가능하게 해주는 골드 스켈레톤 로터에는 브랜드의 이름이 적혀 있습니다. 시간당 진동수는 21,600vph(3Hz), 파워리저브는 72시간으로 넉넉합니다.
블랙 엘리게이터 악어가죽 스트랩과 스테인리스스틸 핀 버클을 장착한 인데버 센터 세컨즈 X 세컨드/세컨드/는 단 20개만 한정 생산됩니다. 가격은 19,900스위스프랑(한화 약 2420만원)입니다.
- 루이 모네(Louis Moinet)
8 Marvels of the World
세계 8대 경이
1816년에 제작한 회중 시계로 기네스북에 최초의 크로노그래프와 최초의 고진동 스톱 워치 제조사로 등재된 루이 모네(Louis Moinet)는 문명의 신비를 간직한 8개의 경이로운 건축물을 시계에 담아냈습니다. 시계 하나하나가 루이 모네의 기술력과 장인들의 솜씨로 빚어내 예술 작품에 비견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8개의 시계는 각각 로마 제국의 전성기를 상징하는 원형 경기장 콜로세움(The Colosseum), 1616년에 완공된 이스탄불의 블루 모스크(The Blue Mosque), 영화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에서 등장했던 고대 도시 페트라(Petra), 가장 유명한 피라미드로 꼽히는 쿠푸왕의 피라미드(Pyramid of Khufu), 인도 하면 떠오르는 이슬람 건축물의 정점 타지마할(The Taj Mahal), 6200km에 이르는 중국의 만리장성(The Great Wall of China), 브라질 리우 데 자네이루의 코르코바도 산에 우뚝 선 구세주 그리스도상(Statue of Christ the Redeemer), 잉카 제국의 비밀을 품은 페루의 마추픽추(Machu Picchu)을 모티프로 삼고 있습니다.
각각의 시계는 대상을 묘사하는데 적합한 소재와 다양한 기법을 동원해 저마다의 개성을 표출합니다. 케이스는 물론이고 다이얼 디자인에 이르기까지 무엇 하나 똑 같은 게 없습니다. 시계 곳곳에 대상의 특징을 새겨 놓아 하나씩 찾아보는 재미도 있습니다. 같은 점이 있다면 로즈골드 케이스를 사용하고, 투르비용이 1분에 한 바퀴 회전하는 핸드와인딩 칼리버 LM 35가 탑재했다는 것입니다. 무브먼트의 시간당 진동수는 21,600vph(3Hz), 파워리저브는 72시간입니다.
모델 별로 단 한 개씩만 생산되며 8개의 시계는 루이 모네가 특별히 제작한 트래블 트렁크에 담겨 제공됩니다. 검은색 가죽으로 장식한 내부에는 독일의 천문학자 요한 가브리엘 도펠마이어(Johann Gabriel Doppelmayr)가 그린 지구본을 수채화로 복원해 놓았습니다. 가격은 2,500,000스위스프랑(한화 약 30억5000만원)입니다.
- 퍼넬(Purnell)
Escape II Absolute Sapphire
이스케이프 II 앱솔루트 사파이어
투르비용을 향한 애정을 가감없이 드러내는 독립 브랜드 계의 신성 퍼넬(Purnell)은 지난해부터 워치스앤원더스 제네바 참가 명단에 이름을 올리고 있습니다. 퍼넬은 다른 시계는 제작하지 않고 오직 투르비용 시계만 탐닉하는 투르비용 일변도의 브랜드입니다. 당연히 전체 컬렉션의 다양성이나 깊이는 부족할 수 있으나 투르비용의 역동성을 강조하고 보는 이로 하여금 즐거움을 느끼게 하는 능력만큼은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신작 이스케이프 II 앱솔루트 사파이어는 3축 투르비용을 두 개나 장착한 무브먼트를 전체 사파이어 크리스털 케이스에 집어넣은 시계입니다. 케이스 뿐만 아니라 케이스백과 다이얼과 무브먼트의 브리지 마저도 사파이어 크리스털로 제작했습니다. 사파이어 부품의 제작 및 가공은 스위스 라쇼드퐁에 있는 노보 크리스탈(Novo Cristal)이 맡았습니다. 사파이어 부품을 완성하는 데에만 무려 150시간이 소요된다고 합니다. 사파이어 크리스털 케이스의 지름은 48mm로 상당히 육중한 편이며 방수는 30m입니다. 사파이어 크리스털의 투명함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다이얼에는 파란색 핸즈와 바게트 컷 사파이어 인덱스를 채웠습니다. 9시 방향에는 파워리저브 인디케이터가 자리합니다.
이 시계의 주인공은 역시 투르비용입니다. 386개의 부품으로 완성한 핸드와인딩 칼리버 CP03에는 3축 투르비용이 두 개나 있습니다. MB&F와도 협업한 바 있는 워치메이커 에릭 쿠드레이(Eric Coudray)가 개발한 것으로, 가장 안쪽에 있는 축에 의해 8초에 1회전, 가운데 축에 의해 16초에 1회전, 가장 바깥 쪽 축에 의해 30초에 1회전하는 고속 투르비용입니다. 두 개의 투르비용은 디퍼런셜 기어에 의해 연결되어 서로 반대 방향으로 회전합니다. 블루 티타늄으로 제작한 투르비용 케이지에는 총 304개의 브릴리언트 컷 다이아몬드를 세팅해 화려함을 끝을 보여줍니다. 6개의 메인스프링과 4개의 배럴을 투입했음에도 파워리저브는 32시간에 불과합니다. 투르비용을 제어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동력이 소모되기 때문입니다. 시간당 진동수는 21,600vph(3Hz)입니다.
전체적인 톤을 고려해 반투명 러버 스트랩을 연결했으며, 버클은 5등급 티타늄으로 제작했습니다.
- 리상스(Ressence)
Type 2 Night Blue
타입 2 나이트 블루
워치메이킹의 변방인 벨기에에서 시작해 어느덧 중요한 플레이어로 올라선 리상스(Ressence)의 신작입니다. 쿼츠와 기계식 시계 사이에서 절묘한 줄타기를 하고 있는 타입 2 나이트 블루는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는 사용자를 우선적으로 염두하고 제작했음을 설파하고 있습니다. 타입 2 나이트 블루는 레이어와 입체감을 중시하는 여타 고급 시계와는 다르게 단순하고 평평한 구조를 고수하고 있습니다. 특별할 게 없어 보인다면 큰 오산입니다. 시계 내부에는 리상스가 고안하고 특허를 받은 특별한 메커니즘이 담겨 있습니다.
ETA 2892를 개량한 칼리버 ROCS2의 오비탈 컨벡스 시스템(Ressence Orbital Convex System)은 어디에서도 볼 수 없을 정도로 독특하지만 케이스백에 설치된 크라운을 활용해 수동으로 메인스프링을 감고 시간을 조정할 수 있는 것은 여느 기계식 시계와 다르지 않습니다. 리상스는 여기에 얇은 PCB 기판으로 제어하는 이-크라운(e-Crown) 시스템을 접목해 전자 시계가 가진 장점을 접목시켰습니다. 사용자가 시계를 벗어 놓으면 동력을 비축하기 위해 시계는 자동으로 멈춥니다. 그리고 시계를 다시 착용한 뒤 사파이어 크리스털 글라스를 빠르게 두 번 두드리면 잠들었던 시계가 깨어나 자동으로 현재 시간을 가리킵니다.
이-크라운의 또 다른 기능은 세컨드 타임입니다. 자체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블루투스로 핸드폰과 시계를 연동한 뒤 원하는 도시를 설정하면 시계가 자동으로 움직여 해당 지역의 시간을 가리킵니다. 출장과 여행이 잦은 현대인들에게 어필하기 좋은 기능입니다. 스마트 워치에서만 맛볼 수 있었던 편리함을 기계식 시계에서도 누릴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획기적입니다. 이-크라운을 구동하기 위한 별도의 동력은 다이얼 아래에 삽입한 광전지 셀로부터 제공받습니다. 빛을 받아 자동으로 구동하는 원리는 사용자의 움직임을 토대로 동력을 생성하는 오토매틱과 오버랩됩니다.
5등급 티타늄으로 제작한 케이스의 지름과 두께는 각각 45mm, 12mm입니다. 방수는 10m에 그칩니다. 볼록하게 솟은 5등급 티타늄 다이얼에는 다양한 정보가 표시됩니다. 모든 인덱스에는 슈퍼 루미노바가 칠해져 있어 어두운 곳에서 사용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시간을 알려주는 방식은 레귤레이터와 유사합니다. 리상스의 로고(손바닥)이 그려진 서브 다이얼이 시간을, 중앙의 긴 바늘이 분을, 바 인덱스가 새겨진 또 다른 다이얼이 초를 표시합니다. 마지막으로 남은 다이얼은 시계가 어떤 상태인지를 보여줍니다. 예를 들어, 바늘이 초록색을 가리키면 첫 번째 시간대, 노란색을 가리키면 두 번째 시간대, 파란색을 가리키면 애플리케이션과의 연동, 흰색은 이-크라운이 꺼져 있음을 의미합니다.
리상스 타입 2 나이트 블루의 가격은 38,750유로(한화 약 5200만원)입니다.
- 트릴로베(Trilobe)
Les Matinaux
레 마티노
2018년에 프랑스 파리에서 설립된 트릴로베(Trilobe)는 이제 막 걸음마를 뗀 독립 브랜드 답게 독창적인 디자인과 구성으로 승부를 보려 합니다. 트릴로베의 첫 번째 컬렉션인 레 마티노는 프랑스어로 아침이라는 뜻으로, 프랑스의 시인 르네 샤르(René Char)의 시집 <아침의 사람들>에서 영감을 얻었습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특징은 바늘이 없다는 것입니다. 대신 꽃잎처럼 생긴 브랜드의 상징으로 시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시간을 표시하는 다이얼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뉩니다. 다이얼 가장자리에 있는 디스크는 시, 5분 단위로 적힌 중앙부의 디스크는 분, 가장 작은 원형 디스크는 초를 표시합니다. 세 개의 바늘은 다이얼에 고정된 상태이며, 디스크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회전하며 바늘과 함께 시간을 알려줍니다.
마이크로 로터 방식의 셀프와인딩 무브먼트는 ETA 2892를 기반으로 합니다. 여기에 워치메이커 장 프랑수아 모종(Jean- François Mojon)이 이끄는 컴플리케이션 전문 제조 업체 크로노드(Chronode)가 설계한 모듈을 올렸습니다. 커다란 브리지와 플레이트로 기어트레인과 부품의 노출을 자제하며 시계의 이미지처럼 간결한 레이아웃을 추구했습니다. 시간당 진동수는 28,800vph(4Hz), 파워리저브는 48시간입니다.
스테인리스스틸 케이스는 38.5mm와 40.5mm로 출시되는 반면에 로즈골드 케이스는 40.5mm로만 나옵니다. 방수도 스테인리스스틸 케이스는 50m, 로즈골드 케이스는 30m로 차이가 납니다. 모든 제품은 가죽 스트랩과 핀 버클이 장착되어 제공됩니다.
다이얼이 위트 있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