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거 르쿨트르 : 마스터 그랑 트래디션 자이로투르비옹 웨스트민스터 퍼페추얼
독립시계 제작자 토마스 프리셔를 제외하고 브랜드로는 프랑크 뮬러와 더불어 2004년 마스터 자이로투르비옹 1로 다축 투르비용의 시대를 연 예거 르쿨트르입니다. 이번에 다섯 번째 시리즈인 마스터 그랑 트래디션 자이로투르비옹 웨스트민스터 퍼페추얼을 선보였습니다. 다축 투르비용을 기본으로 퍼페추얼 캘린더와 웨스트민스터 리피터를 더한 그랜드 컴플리케이션으로 크게 신통한 컴플리케이션이 없었던 SIHH 2019를 대표하는 모델이 아닐까 합니다.
예거 르쿨트르는 이번 마스터 그랑 트래디션 자이로투르비옹 웨스트민스터 퍼페추얼에서 투르비용 케이지의 체적을 축소한 점을 들고 있습니다. 소형화에 따른 정밀가공의 어려움을 극복했다고 하는데, 사실 다축 투르비용이 등장하게 된 배경을 돌아본다면 투르비용의 소형화는 그다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엄격한 기능 분류로 따진다면 투르비용은 밸런스에 범주에 해당하나, 제작 난이도를 고려해 전통 컴플리케이션으로 인정하는 편입니다. 즉 투르비용이 주는 시각적 효과로 인해 태초의 기능성(중력 상쇄에 따른 오차 축소)을 이미 상실했음에도 생존하고 있고, 다축 투르비용이 등장하면서 메커니즘의 태생의 고찰을 이유로 들었지만 실질적으로는 시각적 효과를 확대한 형태이므로 케이지 축소는 지양했으면 합니다. 몽블랑이 상단 케이지를 삭제하고 밸런스 지름을 최대로 키운 엑소투르비용을 내놓은 이유는 투르비용의 목적에 충실했기 때문입니다. 다만 퍼페추얼 캘린더와 웨스트민스터라는 커다란 짐을 어깨에 지고 있기 때문에 한정된 파워로 기능하기 위한 전체적인 밸런스 조정이라는 측면이라면 납득이 갑니다.
웨스트민스터 선배인 히브리스 메카니카 그랑 소너리의 칼리버 182
단일축 투르비용에 비해 아무래도 연비가 나쁜 다축 투르비용을 제대로 돌리기 위해 예거 르쿨트르는 콘스탄트 포스 메커니즘을 들고 나왔습니다. 이것은 랑에 운트 죄네가 자이트베르크를 포함 애용하다 못해 사랑하는 메커니즘으로 리모트와를 기반으로 합니다. 리모트와 스프링을 이용해 파워를 균일화하는 필터링을 거치며, 케이스 백에서 실물을 확인할 수 있도록 배치했습니다. 케이스 백을 보면 대칭을 이루기 위한 노력이 엿보입니다. 리피터의 거버너나 브릿지의 위치와 형태가 인상적이군요. 웨스트민스터를 울리기 위해서는 네 쌍의 해머와 공이 필요합니다. 다이얼에서 작동 시에 확인할 수 있지만 정지 시에는 해머가 한 쌍씩 겹쳐있어 보통의 리피터처럼 보입니다. 공은 ‘Timbré Bleu’로 명명한 푸른색이며 ‘Timbré‘는 풍부한, 낭랑하다는 뜻입니다. 퍼페추얼 캘린더는 선레이 패턴을 넣은 푸른색 스몰 다이얼 곳곳에 기능을 배치했습니다. 12시 방향에 년도, 좌우로 요일과 월, 포인터로 날짜를 알려주며 16일에서 17일로 넘어갈 때는 케이지를 훌쩍 넘어갑니다. 여기까지는 늘 보아오던 예거 르쿨트르의 퍼페추얼 캘린더지만, 드디어 날짜를 뒤로 돌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퍼페추얼 캘린더의 치명적인 약점이던 뒤로 돌리기는 율리스 나르당, 모저 앤 씨 같은 소수의 브랜드들만 가능했습니다. 이 모든 기능은 칼리버 184가 수행하며, 43mm 지름의 화이트 골드 케이스에 담아 냅니다. 두께는 14mm로 투르비용 케이지를 줄여낸 보람이 있어 보입니다.
아래는 Pre-SIHH 2019로 뉴스로 나갔던 마스터 울트라씬 문 에나멜 기사를 참조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기존 모델의 에나멜 다이얼 베리에이션들입니다.
에르메스 : 아쏘 레흐 드 라 룬(Arceau L’heure de la lune)
아쏘 레흐 드 라 룬 (어벤츄린 다이얼)
달의 위상을 표시하는 문 페이즈는 시계의 많은 기능 중 가장 실용성이 떨어집니다. 하지만 가장 아름다운 기능이기도 합니다. 날짜 정보로 가득한 퍼페추얼 캘린더는 극히 딱딱하지만 문 페이즈가 한 켠에 자리잡는 순간 다이얼은 달빛처럼 부드러움으로 가득 차게 되죠. 그 때문인지 수많은 시계 메이커들은 문 페이즈에 대한 고찰을 해왔고 에르메스도 이 대열에 들어섰습니다.
시계 메이커들은 문 페이즈를 몇 가지 관점으로 접근한 바 있습니다. 즉 대칭을 이루는 문 디스크를 59일에 한 번 회전시키고, 문 디스크의 위치에 따라 구름 모양의 가림 판에 가려지거나 벗어나며 실제 달 형태를 묘사하는 방식을 새롭게 해석하고자 했습니다. 그 하나가 달을 고정하고 가림 판을 이동시키는 것입니다. 문 디스크와 가림 판의 위, 아래 위치를 바꿔 고정된 달 위를 가림 판이 이동하면서 형태를 그려냅니다. 다른 하나는 달의 묘사로 달 표면을 리얼하게 그리는 것이죠. 주로 대형 문 페이즈를 택할 때 리얼 텍스처와 조합되곤 합니다. 마지막 하나는 문 페이즈의 주기를 정교하게 가져가는 것입니다. 랑에 운트 죄네, IWC 등의 브랜드들이 달의 실제 주기 29.530589일에서 편의상 0.5아래를 버리고 사용하는 데서 나타나는 오차를 고려해 정밀 오차를 지니는 문 페이즈를 만들어 냅니다.
아쏘 레흐 드 라 룬 (운석 다이얼)
에르메스의 아쏘 레흐 드 라 룬은 문 페이즈 표시 방식과 텍스처에 집중한 듯 합니다. 두 개의 문 페이즈는 IWC의 퍼페추얼 캘린더로 익숙해진 방식으로 남, 북반구의 달 위상을 동시에 표시합니다. 재미있는 점은 12시 방향이 남반구(Sud), 6시 방향이 북반구(Nord)로 간혹 남반구 버전을 출시하면서 이런 배열을 두곤 하는데, 기본적으로는 역배치인 셈입니다. 문 페이즈 표시 방식은 가림 막 이동식이지만 시간과 날짜를 각각 배치한 스몰 다이얼이 회전하면서 가림 막을 겸합니다. 이 메커니즘이 아쏘 레흐 드 라 룬의 핵심인 셈이죠. 다이얼을 보면 이 수수께끼를 풀 힌트가 드러납니다. 다이얼 중심 아래에 무엇인가가 있을 거라 알 수 있습니다.
위 이미지를 보면 수수께끼가 풀립니다. 중앙에서 공급된 동력은 계산된 기어트레인(새틀라이트)의 의해 분배되어 기능을 수행하고, 시간과 날짜 유닛이 59일에 한번 회전하도록 다이얼 가장자리에 톱니를 배치해 가이드하고 있습니다. 과거 위트 넘치지만 불안한 조작을 드러냈던 아쏘 타임 서스펜디드 같은 모델에 비하면 견고해진 모습입니다. (물론 온 디멘드 기능이 아니라서 그렇기도 합니다) 이 문 페이즈 기능을 중심으로 남반구 달에는 페가수스 형태를, 북반구 달은 리얼하게 그려냈습니다. 달이 빛나는 배경, 즉 다이얼은 두 종류로 어벤츄린과 운석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버전 별로 100개를 만들 예정이며 케이스 지름은 43mm입니다.
보메 메르시에 : 클립튼 보매틱 퍼페추얼 캘린더
이번을 끝으로 SIHH를 떠나는 오데마 피게는 축제 분위기였습니다. 보메 메르시에는 생기를 잃어버린 브랜드처럼 보였고, 오히려 보메 메르시에가 SIHH에 이별을 고하는 느낌이었습니다. 보메틱의 투입으로 얻은 활력이 오래가지 못하는 느낌입니다. 신제품은 보매틱 베리에이션과 보매틱을 베이스한 퍼페추얼 캘린더로 축약됩니다. 그 중 하이라이트는 클립튼 보매틱 퍼페추얼 캘린더입니다.
퍼페추얼 캘린더는 듀보아 데프라(Dubois-Dépraz)에서 공급받은 퍼페추얼 캘린더 모듈 55102을 이용해 기능을 구현해 냅니다. 6시 방향 문 페이즈를 포함해 동서남북에 기능을 배치하는 비교적 전형적인 배치이며 12시 방향에서는 월과 윤년을 하나의 축을 이용해 표시합니다. 정석적인 형태로 이들이 가깝게 붙어있는 이유는 월과 년도의 관계를 생각해 보시면 되겠습니다. 3시 방향은 날짜, 9시 방향은 요일입니다. 포쉐린 느낌의 피니시를 한 다이얼은 풍부한 정보를 돋보이게 하며, 레드 골드 케이스와 어우러져 따뜻한 느낌입니다. 보매틱의 5일 파워리저브는 멈추지 않는 편이 좋은 퍼페추얼 캘린더와 좋은 상성을 이루리라 생각합니다. 또 보매틱은 컴플리케이션을 무리 없이 구동할 수 있을지에 대한 시험무대가 되겠죠. 한가지 아쉬운 점은 케이스 백으로 보이는 보매틱의 피니싱으로 기본 형태에서 벗어나 있지 않는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케이스 소재나 기능에 비해 초라해 보이는 피니싱입니다. 케이스 지름은 42mm, 두께는 11mm이며 두께는 선방한 듯 합니다. 방수는 50m.
예거가 정말 멋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