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쉐론 콘스탄틴, 그리고 시간과의 여행. <Travel with Time>展
장-마크 바쉐론, 바쉐론 콘스탄틴의 창립자죠. 그는 제네바 뚜르드릴의 시계 종탑에 아틀리에를 열고 시계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당시에는 정식 학교가 없어 도제 체제로 고용 계약을 맺고 제자를 받아 기술을 전수했는데, 바쉐론 콘스탄틴의 창립년도가 1755년인 이유가 바로 장-마크 바쉐론이 고용 계약을 통해 첫 제자를 받아들인 해였기 때문입니다. 당시 종탑 아래에서 근무한 워치메이커들을 일컬어 '캐비닛 안에서 일한다'고 하여 캐비노티에(Cabinotier)라고 불렀고, 바쉐론 콘스탄틴의 '커스텀 메이드' 서비스인 아틀리에 캐비노티에(Atelier Cabinotier)의 이름이 바로 '캐비노티에'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1895년 바쉐론 콘스탄틴은 종탑에 위치한 아틀리에에서 건너편 캐드릴로 아틀리에를 확장 이전합니다. 놀라운 것은 그 때의 아틀리에, 메종이 지금까지도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실은 이미 1755년부터 제네바 호숫가를 변함없이 지키고 있었죠. 'Founded in 1755, on an Island in Lake Geneva, and Still There'. 이 광고 문구가 나올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 덕분이었.습니다. 심지어 현재 제네바 주 소유인 종탑의 관리를 바쉐론 콘스탄틴이 지금까지 맡고 있다고 합니다. 종탑을 향한 강한 애정(!)이 드러나는 대목입니다.
현재 매뉴팩처는 제네바 출신 브랜드들의 매뉴팩처가 모여있는 플랑레와트 지역으로 이전했지만, 캐드릴에 위치한 메종은 부티크, 갤러리, 그리고 아카이브를 보유한 헤리티지 부서에 이르기까지 지금도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특히 갤러리는 주제를 바꿔가며 다양한 전시를 선보이고 있는 중이죠. 물론 관람을 원한다면 사전 예약은 필수입니다.
- 갤러리 곳곳에 과거에 사용한 워치메이킹 도구들도 다수 보관되어 있는데, 실제 히스토릭 피스 수리 등을 위해 사용한다고 합니다.
지난 SIHH 기간 동안 방문한 갤러리에서는 <Travel with Time>이라는 주제로 전시가 진행 중이었습니다. 바쉐론 콘스탄틴이 '여행가'들을 위해 제작한 시계들을 만날 수 있는 전시였죠. 처음 주제만 듣고는 월드타이머나 듀얼타임존 시계를 볼거라 짐작했는데, 시계 소재, 케이스, 그리고 기술력의 진화 등 그보다 좀 더 포괄적이고 폭넓은 테마로 진행되어 더욱 흥미로웠습니다(참고로 전시는 4월 29일까지 진행됩니다).
전시 초반에는 여행의 동반자가 되었던 시계들이 등장합니다. 제일 먼저 마주한 시계는 배 위에서 사용하던 크로노미터였습니다. 바다 위 거친 움직임 속에서도 정확하게 작동할 수 있도록 흔들림을 상쇄해주는 세 개의 축을 지니고 있고, 기온 변화에도 강한 바이-메탈릭 밸런스 휠을 탑재하고 있습니다. 크로노미터는 망망대해 위 선원들에게 정확한 위치를 알려주는 말 그대로 생명줄(!)과도 같은 역할을 했습니다. 그러한 이유 때문에 8일이라는 긴 파워 리저브를 지니고 있었고, 그것을 열 수 있는 키는 오로지 선장이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다음은 여행용 탁상시계로 단순한 외모에도 불구하고 나름(!) 그랜드 컴플리케이션의 위용을 자랑합니다. 그랑 소네리, 프티 소네리, 쿼터 리피터, 알람 기능 등까지 갖추고 있으며 여행시 휴대가 용이하도록 파우치까지 구비되어 있습니다.
- 여행용 탁상시계(1820년)
휴대용 알람시계는 탁상용으로 사용 가능한 동시에 지갑 속에도 넣을 수 있을 정도로 얇은 두께가 특징입니다. 지지대 모양의 회중시계나 셔터 모양이 독특한 시계, 라이터 형태 시계까지 다양한 퍼스(purse watch)도 눈에 띄었습니다. 따로 회중 시계 고리가 없어 지갑에 넣고 다니며 몰래(!) 시간을 확인할 수 있는 시계라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당시는 사람들 앞에서 대놓고 시간을 확인하는 것이 결례였던 시절이니까요).
- 휴대용 알람시계(1910년)
- 시간을 은밀하게 확인할 수 있는 다양한 형태의 시계들
이제 슬슬 시계의 디스플레이에 변화가 느껴지기 시작합니다.
아래 시계는 1920년대에 제작한 시계로 독특하게도 24시간 단위로 시간을 표시하는 회중 시계입니다.
코티에 메커니즘을 세계 최초로 상용화한 브랜드인 바쉐론 콘스탄틴답게 현존하는 최초의 월드타이머 시계도 만날 수 있었습니다.
- 24시간 단위로 표시하는 회중 시계(1921년)
- 코티에 메커니즘의 월드타이머(왼쪽이 1946년, 오른쪽이 1949년)
듀얼 타임 기능이 등장하기 전에는 이처럼 초소형 무브먼트 두 개를 넣어 두 곳의 시간을 표시했습니다(이런 식으로 두 개의 무브먼트로 두 곳의 시간을 표시하는 방식을 아직까지도 몇몇 브랜드, 특히 울트라씬에 일가견을 지닌 브랜드들에서 찾아볼 수 있기도 합니다).
- 듀얼 타임 시계들(왼쪽이 1975년, 오른쪽이 1982년)
다음은 케이싱의 진화를 비롯 해 방수 기능의 발전에 대해 살펴볼 수 있는 시계들입니다.
1900년 제작한 하프-헌터 케이스 회중시계는 일종의 '뚜껑'이 있어 시계를 보호해주는 것은 물론 케이스를 열지 않아도 시간을 확인할 수 있도록 인덱스를 케이스에 새겨놓은 센스(!)가 돋보입니다.
- 하프-헌터 케이스 회중 시계(1900년)
1907년에는 더욱 단단한 골드 소재를 사용한 크로노미터 로얄을 선보였는데, 크라운과 케이스 사이에 코르크를 넣어 먼지와 물로부터 보호하려는 시도를 했습니다.
- 1907년
또 본격적인 손목 시계의 시대가 도래하며 글라스를 보호하기 위한 다양한 시도들도 눈에 띄었습니다. 1929년에는 잘루시(Jalousie)라는 이름의 유명한 손목 시계가 출시되었고, 1930년에는 또 다른 형태의 셔터 시계를 소개했습니다. 1937년 선보인, 마치 오픈카 지붕이 열리는 듯한 '뚜껑'을 장착한 시계도 매우 독특합니다.
- 1929년 -1930년
- 뚜껑이 열리는 시계(1937년)
1935년에는 오른쪽으로 튀어나와있는 크라운을 보호하기 위해 위치를 12시 방향으로 옮긴 시계들을 볼 수 있습니다. 그 중 왼쪽 시계는 크라운 사이즈만큼을 케이스 자체에서 파내 디자인한 점이 눈에 띕니다.
- 크라운을 12시에 배치한 시계들(모두 1935년)
1960년대에 만들어진 방수 기능을 갖춘 시계들도 만날 수 있었습니다.
- 1960년대 만들어진 방수 기능의 시계들
매우 흥미로웠던 시계 중 하나로 실제 미국의 라이트 형제가 주문해 비행시 착용한 시계라고 합니다. 비행기 운행 중에도 시간을 편리하게 확인할 수 있도록 허벅지에 회중 시계를 착용할 수 있도록 디자인되어 있었습니다. 또 두꺼운 장갑을 착용하는 파일럿이 크라운을 쉽게 조작할 수 있도록 배려한 대형 사이즈의 크라운도 특징이고요.
- 라이트 형제가 주문한, 허벅지에 착용할 수 있는 회중 시계(1903년)
1900년대 초에는 미국의 자동차 업계가 성장한 것과 맞물려 '운전자'를 위한 'Driver's Watch'들이 등장했는데, 그 중에는 핸들을 잡은 상태에서도 시간을 쉽게 확인할 수 있도록 손목 옆 부분에 시계 다이얼 부분이 오도록 디자인한 시계들도 있었습니다.
- 모두 1939년
45도 각도로 기울여 디스플레이한 것이 특징인, 그 유명한 아메리칸 1921도 있었고요.
- 아메리칸 1921(1921년)
마지막 부분은 소재와 관련된 주제로 진행되었습니다. 플래티넘이나 골드 등 진귀한 소재를 주로 사용하던 바쉐론 콘스탄틴이 1800년대 후반부터 스틸 시계를 소량 주문 생산하기 시작합니다. 유럽에서 금과 백금으로 제작한 물건에 대해 높은 세금을 매긴 것 때문이라는 설명입니다. 아카이브에 의하면 바쉐론 콘스탄틴이 첫 스틸 시계를 생산한 것은 1884년의 일이라고 합니다. 그 후 광택이 오랫동안 유지되는 특허 소재인 'StaybriteⓇ'(이것이 이후 스테인리스스틸로 발전한 거죠)를 선보이며 스틸을 상용화합니다.
- 스테이브라이트 케이스 시계로 타키미터와 텔레미터 기능까지 갖춘 모노푸셔 수동 크로노그래프 시계(1935년)
- 스테이브라이트 소재 시계로 케이스와 무브먼트가 모두 휘어져 있는 것이 특징(1938년)
이후 스테인리스스틸 소재로 진화했는데, 아래 시계는 스테인리스스틸 소재에 야광 인덱스와 바늘을 갖추고 있습니다.
- 1944년
스테인리스스틸 시계는 1960년대 이후 좀 더 대중화되었고, 1975년에는 스틸 소재의 8각 형태 케이스의 크로노미터 로얄도 선보였습니다.
- 크로노미터 로얄(1975년)
브랜드 창립 222주년을 기념해 탄생한 '프로젝트 222'인데요. 오버시즈 컬렉션의 조상(!)격으로 볼 수 있는 시계입니다. 특히 이 시계는 현재 오버시즈 3세대의 울트라씬 버전에 탑재하는 것과 동일한 무브먼트를 사용했습니다.
- 오버시즈의 DNA를 엿볼 수 있는 222(1977년)
1989년에는 피디아스(Phidias)라는 이름의 스틸 소재 시계를 선보였고요. 1992년에는 피디아스 월드타임으로 여행 정신을 이어갑니다.
- 왼쪽이 피디아스(1989년), 오른쪽이 피디아스 월드타임(1992년)
그리고 1996년 이 '여행 정신'을 계승하는 새로운 디자인의 스틸 시계가 탄생했습니다. 바로 오버시즈의 탄생입니다.
- 오버시즈(1996년)
2004년에는 사이즈가 한층 커진 오버시즈 2세대가 런칭한 데 이어 드디어 올해 오버시즈 탄생 20주년을 맞이해 오버시즈 3세대가 등장했습니다. 올해 바쉐론 콘스탄틴의 주인공이기도 했죠.
- 오버시즈(2004년)
- 오버시즈(2016년)
전시 제품들을 모두 둘러본 후 이 유서 깊은 공간과는 사뭇 상반된 느낌의 최첨단 기기가 있는 공간으로 안내되었는데요. 이곳이 바로 아카이브 섹션입니다. 현재 바쉐론 콘스탄틴은 매우 흥미로운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데, 바로 2016년까지 차곡차곡 기록하고 쌓아온 300만 페이지에 달하는 아카이브를 디지털화하는 작업이 그것입니다. 단순히 디지털화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망원경, 혹은 헬멧 형태의 특수 장비를 착용하고 가상 공간에서 디지털화한 아카이브 데이터를 확인할 수 있도록 하는 야심찬 작업도 동시에 진행 중입니다(잠시 경험해봤는데 말로는 표현하기 힘든, 매우 신선한 경험이었습니다!).
- 디지털화한 아카이브를 감상할 수 있는 기기들
- 실제 아카이브 일부
전시 감상을 마치고 부티크에서 나오면서 바쉐론 콘스탄틴이 처음 시작되었던 종탑을 다시 한 번 올려다보았습니다. 바쉐론 콘스탄틴이 워치메이커로서 걸어온 오랜 세월의 무게에 조금은 숙연해지는 그런 기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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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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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공조
2016.02.12 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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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스단
2016.02.12 12:39
ㅎㅎ가서 직접 보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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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fj8544
2016.02.13 15:19
중간쯤 있는 시계는 마치 지포라이터를 연상시키는군요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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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인
2016.02.13 15:35
바쉐론 콘스탄틴의 역사를 보는듯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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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udy
2016.02.19 14:52
세심하고 상세한 리뷰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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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이MJH
2016.02.22 10:38
유서깊은 브렌드의 역사가 통째로 담겨있는곳이군요!
리뷰 잘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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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ergico
2016.02.26 22:14
글 잘 읽었습니다. 회사 이력이 시계역사이네요. 스위스 제네바에 가게된다면 가보고 싶네요. 그때 제 손목에 페트리모니가 있어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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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라이나어구나
2016.03.16 17:26
좋은정보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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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카엘
2016.03.26 14:21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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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라
2019.06.21 01:13
역사와 히스토리가 있는 정말 멋진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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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1999
2019.12.20 23:15
역사를 알아볼수 있어 좋은거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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