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를 잘 아는 사람이라면 크로노미터는 ‘정확한 시계’라고 간결하게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지금에 이르기까지 성립의 역사를 본다면 즉각 설명하기가 쉽지 않을 것 이다. 단어로서는 널리 알려져 있지만 그 윤곽선은 흐릿하다. 여기서는 3세기에 가까운 크로노미터 역사와 현황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크로노미터’라는 단어를 처음 사용한 것은 영국인 제레터 섹커(Jeremy Thacker)로 1714년의 일이라고 한다. 18세기에는 세계 각지에서 해운업이 활발하게 발달하였지만 경고와 위도를 측정하는 방법은 한정되어 있었다. 위도는 북극성의 위치에서 대략을 파악할 수 있었지만 항해에 필요한 경도의 측정은 어려웠다. 이론상으론 정확한 표준시를 알고 있다면 관측에 의해 산출이 가능하다고 알려져 있었으나, 표준시가 1초라도 잘못되면 적도상의 경도는 462미터나 오차가 나게 되어 버렸다. 정확한 항해를 위해서는 정확한 표준시를 알기 위한 장치가 필수적이었다. 이것이 시계의 정확함을 비약적으로 발전시킨 밑거름이 된 마린 크로노미터의 등장배경이다.
존 해리슨의 H1
17세기에는 이미 매우 정확한 시계(클록)이 완성되어 있었지만, 진자를 이용하는 그것은 선박에서 사용하기가 어려웠다. 존 해리슨은 진자가 필요 없는 기구를 개발하기 시작해 H1, H2, H3, H4(갑자기 험머가 생각나는군요. 죄송함다) 라는 우수한 선박용 시계를 만들어 처음으로 마린 크로노미터라는 이름을 가지게 된다.
하지만 해리슨의 시계들은 너무나 복잡했다. 한편, 프랑스인 피에르 르 로아는 데땅뜨 이스케이프먼트와 온도보정기능이 있는 밸런스 휠을 사용하여 매우 정확한 마린 크로노미터의 양산화를 실현한다. ‘크로노미터 인증’이라는 것이 처음 실시된 것이 1776년이다. 그 배경으론 르 로아에 의한 양산화를 들 수 있다.
시계업계를 대표하는 스위스의 경우, 크로노미터에 대한 배경은 복잡하다. 19세기 중반까지 스위스의 시계 업계는 에보슈의 공급 또 중급시계의 제조로 성공을 거두게 된다. 그러나 1860년 이후 스위스에 어둠이 드리기 시작한다. 미국이 매우 정확한 시계를 양산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고급품으로 명성이 있는 것도 아니고 양산품으로서도 완성도가 충분하지 못했던 스위스 시계는 고난이 시작된다. 그 때 스위스는 다양한 방향성을 모색하게 된다. 하나는 해외시작의 개척. 또 하나는 정확도의 향상이다. 정확도의 테스트인 크로노미터 인증은 뉴샤텔에서 시작되어 1870년대 중반 이후 점점 더 성황을 맞게 되었다. 스위스에서 특징적인 점은 정확도 향상의 시도가 지역 단위로 지워졌다는 것이다. 그 때문에 과거에 존재했던 것까지 합치면 스위스 국내 크로노미터 검정기관은 뉴샤텔 천문대(1860년), 제네바 천문대(1875년)의 두 곳에 비엔느(1877년), 라 쇼드 퐁(1877년), 쌍티미에(1888년), 제네바(1956년), 르 록클(1901년), 조르투른(1956년),의 공식검정소를 더해 총 9개 곳이나 존재하였다.
스우스의 시계산업을 위협한 미국에는 크로노미터 규격은 없었지만 그 대신 1892년에 만들어진 ‘철도시계규격’이 있었다. 마린 크로노미터가 생겨난 배경는 1707년의 해난사고 였지만 미국의 경우는 1891년의 열차사고 였다. 그 때문에 철도시계의 규격인 매우 엄격하여 1주일의 오차가 30초이내, 화씨 34~100도 사이 (섭씨 1도~38.7도)에서 조정되었다. 그 엄격함은 매우 정확한 시계의 양산에 성공한 미국다운 것이었다. 그러나 흥미롭게도 미국은 그 이상의 정확도를 추구하지 않았다.
한 편 스위스가 중심이 된 유럽에서는 정확한 시계가 증가함에 따라 정확도의 우열을 가리는 평가를 하려는 움직임이 생겨났다. 그것이 시계의 ‘F1 그랑프리’ 천문대 크로노미터 콩쿨이다. 이것은 시계를 45일간, 5포지션, 3온도에서 측정하여 정확도를 겨룬다. 영국의 큐 테디언트 천문대(1821~1868년), 스위스의 뉴샤텔 천문대(1866~1755년), 제네바 천문대(1873~1967년) 등에서 행해진 콩쿨이 유명했고 그다지 알려지지 않았지만 각국의 만국박람회(EXPO?)에서 실시된 정확도 콩굴도 천문대 규격에 준하는 콘테스트였다. 뉴 샤텔 천문대장이었던 에드몬드 귀요트는 이 콩쿨에 대한 반론에 ‘메이커 간의 경쟁이 기술 진보로 이어지며, 콩쿨의 결과를 광고에 이용할 수 있으며 그리고 우수한 시계사에게 일자리를 창출하기도 한다’라고 메리트를 들었다. 그것이 옳았다는 것은 후세의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스위스의 양 천문대에서 손목시계용 무브먼트의 콩쿨이 행해진 것은 1945~67년까지 이다. 파텍 필립, 오메가, 율리스 나르당, 론진, 제니스, 롤렉스 등의 메이커는 천문대 크로노미터를 위해 특별히 조정된 무브먼트를 투입했다. 손목시계의 조정기술이 비약적으로 진보하여 조정에 대한 뛰어난 저술이 차례로 생겨났다.
18세기 크로노미터라는 말이 태어난 당시의 그것은 데땅뜨 이스케이프먼트를 장비한 시계만을 지칭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레버 이스케이프먼트의 정확도가 향상된 결과, 그 기준은 1900년에 ‘천문대에서 검정된 시계’로 완화되었다. 그러나 그것이 완전한 기준이 되지 못한 것은 천문대 이외의 공식검정소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스위스의 시계업계는 더욱 기준완화를 요구, 39년에는 ‘몇 개의 포지션과 온도에서 조정해서 증명서가 발급된 시계’이면 크로노미터라고 부를 수 있었다. 즉 업계의 요구에 따라 규격이 완화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 규격은 너무나 애매했다. 최대의 고객인 롤렉스는 ‘기준이 명료하지 않고 기준이 메이커에게 너무나 유리하다’라고 불만을 가진 것 같았다. 롤렉스와 오메가는 그들의 정확도에 미치지 못하는 무브먼트가 크로노미터라고 불리는 것이 불만이었을지도 모른다. 그 때문에 1951년에 역시 애매하지만 ‘매우 정확한 시계’라는 정의가 더해져 독일과 스위스, 프랑스에 의한 국제 크로노미터 커미션에 의해 승인되어, 즉 업계 표준이 된다. B.O. 규격이라 불리는 그 검정기관은 73년에 C.O.S.C로 발전됨과 함께 해체되고 현재에 이르는 크로노미터 규격의 표준이 되고 있다. 프랑스의 세테올(Cetehor), 2006년에 부활한 글라슈트의 크로노미터 규격도 명칭은 각각 다르지만 표준은 C.O.S.C와 거의 비슷하다.
C.O.S.C에서의 검정항목은 15일간에 걸쳐 5포지션에서 포지션차, 3온도에서 온도차 그리고 일 오차를 측정한다. 1893년에는 3온도 2 포지션 밖에 측정하지 않았던 검사항목도 매년 엄격해져 1961년에는 지금과 거의 동등한 검사항목으로 되었다. 작년에는 복잡한 검정에 117만 4227개의 무브먼트가 합격하여 19세기에 크로노미터 검정을 시작한 스위스인들의 노력이 결실을 맺게 된 것이다.
C.O.S.C 크로노미터는 높은 정확도를 증명하는 것으로 일반에 널리 알려져 있다. 그 기준은 예전의 천문대 콩쿨에는 미치지 않지만 1973년에 성립한 현재의 규격은 1925년 처음 손목시계가 크로노미터 검정을 하게 된 당초보다 약 10배나 엄격해져 제네바와 뉴샤텔 천문대가 크로노미터 콩쿨을 위해 만든 규정에 거의 근접하고 있다. 따라서 크로노미터를 다이얼에서 확인 할 수 있다면 정확함을 기대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C.O.S.C= 매우 정확함이라고는 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천문대 콩쿨을 통과한 시계도 그렇다. 어디까지나 C.O.S.C는 책상 위의 테스트이기 때문에 착용시 어떠한 정확도를 보일지는 알 수 없다. 특히 오토매틱의 경우는 풀 와인딩 상태에서 24시간이 지난 시점까지의 오차가 적더라도 36시간 후에는 오차의 폭이 커지는 경우가 있다. 24시간마다 태엽을 완전히 감아주는 C.O.S.C 테스트에서는 이러한 것이 드러나지 않게 된다.
또 이 규격은 적어도 독일 시계에게는 문이 열려있지 않는 것 같다. 작센인의 말을 그대로 빌리면 스위스에서 조립된 것은 예외로 치더라도, 독일에서 조립된 무브먼트가 C.O.S.C 인증을 위해 테스트를 받는 경우는 없다. 일본이 B.O. 시대를 포함해 C.O.S.C에서 배제된 적이 없는 것을 생각해보면 독일 시계가 C.O.S.C 신청을 할 수 없는 이유에는 어떤 자의성(恣意性)을 느낄 수 밖에 없다.
또 현재에는 스위스 국내에 C.O.S.C이외에도 다양한 정확도 인증 제도가 있어 꼭 C.O.S.C가 절대적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제네바 실’은 제네바시가 인정하는 고급시계의 증표이다. 파텍 필립은 제조된 모든 시계에 무조건적으로 실을 획득하는 것이 가능하다. 이 실을 가진 시계에는 많은 메리트가 있어 제네바 실만 있으면 무조건 크로노미터 라고 부를 수 있게 된다. 1957년 이전에는 확실한 프리 패스였다. 제네바 실이 정한 기준은 전통적인 고급시계의 제조방법을 명문화 하는 것이며, 호의적으로 해석하면 엄격한 기준으로 만들어진 고급시계는 크로노미터 급의 정확도를 가져야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 자체가 정확도 검정을 패스하기 위한 요건은 될 수 없었다. 단 제네바의 명문은 스스로를 규제하는 것이 엄격했고, 실제로는 제네바 실과 C.O.S.C 크로노미터 쌍방의 이름을 가지는 무브먼트는 모두 C.O.S.C 테스트를 받고 케이싱 되어 있다.
파르미지아니 플리에르와 쇼파드의 주도로 시작된 고급 시계의 신 규격 ‘카리테 플리에르’는 C.O.S.C와는 다른 방향을 목표로 하고 있다. 카리테 플리에르의 테스트를 받기 위해서는 우선 C.O.S.C에 합격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 위에 충격과 온도 테스트를 한 뒤 일상생활에 속하는 착용 정확도를 측정한다. 이것은 옷을 입거나, 식사를 하거나 하는 모습을 시뮬레이션으로 재현하여 시계의 정확도를 테스트 하는 것이다. 즉 테스트에 의해 C.O.S.C 규정되지 않은 휴대시의 정확도를 측정하는 것이 가능하게 되었다.
이렇게 까지 엄밀하게 하지 않지만, 이와는 다르게 대답을 도출해 내는 메이커들이 있다. 모리스 라크로아, IWC, 예거 르쿠르트, 세이코의 GS규격, 랑게 & 죠네 등은 C.O.S.C와 마찬가지로 아니면 그 이상의 기준을 가지고 있다.
본질적인 부분으로 기계식시계에 정확도가 요구되지 않는 현재. 역설적으로 말하면 매우 정확함과 그것을 가리키는 칭호인 크로노미터는 이전에는 없었던 존재감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것은 매년 C.O.S.C 신청 개수가 늘고 있는 것으로 알 수 있다. 크로노미터가 앞으로 어떠한 형태로 귀결될지는 누구도 예상할 수 없다. 그러나 지금 이상의 존재감을 가지게 되리라 하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면 36년의 세월을 걸쳐 새롭게 태어난 독일 크로노미터 제도는 스위스 크로노미터 검정협회와는 어떻게 다른 것 인가. 작년 시작된 독일의 검정제도는 민간 출자의 행정기관에 의해 이뤄진다. 함브르크에 본점을 둔 독일 최대의 고급시계 체인인 벰페(Wempe)가 2004년 글라슈트 천문대의 소유주가 되어 건물과 설비를 정비할 인원확보를 하고 있으며, 조직 자체는 독일 북부 브란슈바이크의 국립물리표준 연구소(PTB, www.ptb.de)가 주축이 된다. 원자시계에 의해 독일 표준시의 관리도 하고 있는 PTB에는 공업제품의 표준규격인증을 위한 고문기관인 독일 규격화 위원회(DKD)가 있다. 글라슈트 천문대의 독일 크로노미터 검정소는 이 DKD가 튜리켄 주립 도량위 관리국(LMET) 및 작센 주립 도량위 관리국과 연계한 연구소이다. 조직은 매우 복잡하지만 스위스의 C.O.S.C가 시계 전문의 독립의 전문 공적 기관인 것에 반해 독일은 어디까지나 공업 규격 인증 고문 기관의 일부로 존재한다.
검사 방법은 스위스 규격 및 ISO 규격 3159 취득에 C.O.S.C를 고려한 방식으로 독일 연방 규격 DIN 8319를 취득 한 상태이다. 현재 국제 시험소 인증 협력 기구 (ILAC)에 인증 신청 중으로 조사기간이 종료되는 2008년에 인증이 내려지게 되면 독일의 크로노미터 검정 그것이 국제적으로 통용되게 된다.
국제적인 인증 보다도 검사 자체의 신뢰성이 높다는 것을 말할 것도 없다. 이 독일 크로노미터 검증에서는 시계의 완성 모델만 검사 대상이 된다. 참고로 C.O.S.C는 케이싱을 하기 이전 무브먼트에 검사 전용의 다이얼, 초침, 크라운을 붙힌 상태에서 검사가 이뤄진다. 현재 글라슈트 천문대에서는 정밀 전동 검사기를 이용한 컴퓨터 제어의 온도장치가 3대 있으며, 1번의 검사로 최대 50개까지 가능하다. 신청자가 부담하는 검사비용은 1개당 증명서 발행 비용을 포함해 110유로. 검사 결과 불합격이 되어도 77.5유로가 청구된다. 결코 싼 금액이 아니지만 막 시작해 설비투자 비용이 부담되는 것이 원인이 아니라 3개의 행정기관이 연계된 조직운용에 원인이 있을 것 이다.
독일의 크로노미터 검정에 대한 역사를 살펴보도록 하자. 독일의 크로노미터 검정은 스위스와 프랑스와 달리 천문대와 연관이 없다. 19세기 후반 군사적인 목적으로 마린 크로노미터의 수요가 증가하던 중, 더욱 정확한 시계를 추구한 것이 목적의 하나로 1875년 함부르크 해양기상대가 설립되어 크로노미터 콩쿨을 정기적으로 개최하게 된다. 이것이 독일의 크로노미터 검정제도의 시작이다. 최초의 10년 정도는 영국 에보슈를 사용한 마린 크로노미터가 주류였지만 독일과 영국간의 정치적 긴장이 높아지면서 크로노미터는 독일 국내 생산으로 전환되기에 이른다. 마린 크로노미터의 제조에 뒤늦게 뛰어들었지만 우수한 시계사들이 즐비했던 랑게 & 죠네가 콩쿨에서 종종 상위 입상을 했던 20세기 초는 독일 크로노미터가 가장 발전한 시대이다. 그러나 1925년 함부르크 해양기상대의 폐쇄와 더불어 크로노미터 검정은 함부르크 시내의 수리학연구소(DHI)가 맡게 된다. 1945 이후에는 동독 수립 이전 구 동독지역의 베를린, 마그데부르그에도 손목시계용 검사소가 개설되었고 이것들은 후에 동독 수립 후 국영 기업 GUB 인증에 종속되어 60년대 후반까지 가동되었다.
한편 구 서독지역에서는(서독 수립이전) 1955년 브란슈바이크 국립물리표준연구소가 함부르크 수리학역구소를 대신해 시험 기준 제정의 기초작업을 하고, 같은 해 슈투트가르트의 바덴 베르텐베르크 주립 사업관리국내에 시계시험장이 설치된다. 이 시험장은 1959년에 국제 크로노미터 위원회에서 승인되어 독일 크로노미터 검정은 국제적 인가를 받게 된다.
1960년대 후반에는 융한스 혼자서 년간 1만 2000개의 크로노미터 인증을 받게 된다. 그 외에도 라코, 비포라등이 크로노미터를 제조했다. 그러나 시대가 변하여 1970년에 독일 크로노미터가 종료. 이후 독일제 무브먼트는 36년간이나 때를 기다려야 했다.
이번에 잠에서 깨어난 글라슈트 천문대는 1910년에 사설 천문대로서 설립되었다. 설립한 것은 당시 글라슈트 도이치 시계학교 (DUS)의 학생과 시계관련 직업을 가지고 있던 OB들의 친목단체인 우라니아이다. 당시의 회장이며 랑게에서 레귤레이션의 스페샬리스트로 활약한 시계사 후고 뮬러가 주도하여 천문대의 건축비 대부분을 기금으로 모아 완성시켰다. 설립 당시 글라슈트 천문대는 브란슈바이크의 PTB와 케이블을 연결해 모스 부호를 통해 연결이 되었지만 기술적인 문제로 궤도에 오르지 못하고, 시계의 레귤레이션을 위한 연구소로 변경된다. 시계 연구 기관으로 견실하게 활동을 한 우라니아의 멤버들은 글라슈트의 시계제작기술에 대한 명성을 널리 알렸다. 그 후 교외에 정밀 시계의 공식검사인증소가 설립되어 이후 글라슈트에서 제작된 마린 크로노미터는 경비를 소요하며 멀리 함부르크의 해양기상대까지 보낼 필요가 없게 되었다.
그리고 1930년대 말, 세 명의 사업주에 의한 ‘글라슈트 천문대 공동사업체’가 설립. 랑게 사장의 오토 랑게, 벰페 크로노미터 제작소장 헤르베르트 벰페, 우파그와 우로파를 함께 경영했던 닥터 에른스트 크루츠는 천문대를 시계 조정기술 연구소로서 젊은 시계사의 육성을 위해 뜻을 모았다. 그러나 세계 정세가 급변하여 마린 크로노미터와 데크 워치의 수요가 증가함에 따라 군부에 의한 대량 생산을 강요 받고 정확도를 자랑하던 글라슈트의 마린 크로노미터는 대량 생산제품으로 변화되기에 이른다. 그리고 종전을 맞이하고 랑게를 비롯한 글라슈트의 명문 메이커는 국영기업으로 접수되어 버린다. 1956년 시계학교는 폐교되고 천문대는 폐쇄되지만 단체(우라니아)는 현재에까지 이르고 있다.
벰페는 글라슈트에 있어서 독일 크로노미터 검정 재개 프로젝트에 300만 유로를 투입했다. 이 프로젝트에 시동을 건 동기는 무엇이었을까? ‘C.O.S.C는 규정상, 독일제 무브먼트를 검사 대상으로 넣어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벰페의 현 사장 헬무트 벰페씨는 그렇게 답했다. 그리고 ‘크로노미터라는 것은 엄밀한 검사로 좋은 성적을 낸 시계에게 부여하는 것이 합당하며, 기사의 칭호와 비슷한 것 입니다’ 라고 했다.
현재의 시계 업예에서는 ‘크로노미터’라는 명칭이 필요이상으로 부가가치를 지니고 있다. 어디까지나 공업품의 한 규격으로 객관적인 훈장을 가진, 신뢰할 수 있는 ‘독일의 기사’는 머지않아 세계에 등장할 것이다.
<원문 출처 : Chronos 제 9호 '槪論 クロノメータ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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