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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달팽이 같아. 집을 지고 다니거든..." 
 - 가브리엘 샤넬  


세계 여성들의 선망을 받는 패션 명가 샤넬(Chanel)이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문화 샤넬(Culture Chanel) : 장소의 정신>이란 제목의 전시회를 개최합니다. 

8월 30일 개막해 오는 10월 5일까지 매일 진행되는 이번 <문화 샤넬전>은 샤넬의 창립자이자 20세기 최고의 패션 디자이너 중 한 명인 가브리엘 코코 샤넬의 
드라마틱한 일대기를 그녀가 머물렀던 도시(장소)를 중심으로 보여주는 컨셉의 전시회로서, 국내에서 열린 샤넬 관련 전시회 중 역대 최대 규모를 자랑합니다. 

이번 서울 DDP <문화 샤넬전>은 지난 2007년 모스크바의 푸쉬킨 미술관, 2011년 상하이 현대 미술관과 베이징 국립 예술 미술관,  
2013년 광저우 오페라하우스와 파리의 팔레 드 도쿄에 이어 큐레이터 장-루이 프로망(Jean-Louis Froment) 씨가 총괄 기획했습니다. 

<문화 샤넬전>은 DDP의 두 메인 전시관(M3와 A1)에서 총 10개의 테마로 구성된 각각의 부스에서 펼쳐지고 있습니다. 
각 부스는 '유년기의 인상' '오바진의 규율' '다름이 주는 자유' '성에서의 삶' '파리에서의 독립' '베니스의 보물' '러시안 패러독스' '블루 트레인' '새로운 세계' '샤넬 정신' 
이런 식으로 샤넬의 인생에서 큰 전환점이 된 장소와 그에 얽힌 스토리텔링을 각 시대별 주요 제품과 코코 샤넬이 좋아했던 오브제들과 함께 다채롭게 전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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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문화 샤넬전>이 열리고 있는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전경을 좀더 여러 각도에서 담아 봤습니다. 

DDP는 이라크 태생의 세계적인 여성 건축가 자하 하디드(Zaha Hadid)가 설계를 맡아 올해 3월 21에 개관했지요. 
2009년 착공 이래 약 5년 만에 빛을 본 DDP는 자하 하디드만의 전위적인 건축 스타일을 그대로 엿볼 수 있으며,  
보는 각도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비대칭형 외관이 마치 외계의 대형 우주선을 보는 것만 같아 실로 압권입니다. 
 
20세기 복식사의 흐름을 바꾼 혁명적인 패션 디자이너 가브리엘 샤넬의 일대기를 조명하는 전시회가 
역시나 건축계의 기린아로 통하는 여성 건축가가 설계한 공간에서 펼쳐진다는 사실이 어쩐지 우연의 일치가 아닌 것만 같이 여겨집니다.^^





본 전시회가 열리는 M3동 건물 내부로 통하는 통로입니다. 
미니멀한 건물 내부가 블랙 & 화이트를 강조하는 샤넬의 스타일 철학과도 상통하는 느낌입니다.  





전시회장 내부는 또 이렇습니다. 
기본적으로 사진 촬영은 가능하지만 플래시는 터트리면 안 됩니다. 

개막일인데도 주말이라서 그런지 많은 관람객들이 방문했습니다. 





'유년기의 인상'이란 제목과 테마로 구성된 첫번째 부스에서 가장 눈길을 끈 것은, 
가브리엘 샤넬의 출생증명서와 그녀가 태어난 소뮈르 구제원 전경 사진이었습니다. 

가브리엘 샤넬은 프랑스 중부의 장터를 떠돌던 행상인 아버지와 가난한 농부 어머니 사이에서 1883년 빈민들을 위한 시설인 소뮈르 구제원에서 태어났습니다. 
당시의 출생증명서를 보면 그녀의 이름조차 제대로 기재돼 있지 않았는데요. 위대한 인물의 초라하기 짝이 없는 시작을 보고 있자니 괜스레 짠함이 밀려옵니다. 





위 사진 속 그림은 우리에겐 <이삭 줍는 사람들> 그림으로 유명한 장-프랑수아 밀레의 1860년대 스케치입니다. 
가브리엘 샤넬과는 그다지 관계가 없어 보이는 것 같지만 샤넬의 생전 주요 작업들을 보고 있으면, 농사와 밀에 관한 모티프가 자주 등장한다고 합니다. 

어린 시절 어머니를 여읜 가브리엘 샤넬은 평생 어머니란 존재를 그리워했는데요. 
'어머니=땅'으로 대변되는 상징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농가의 딸이라는 사실이 샤넬에겐 일종의 긍지였던 셈입니다.  

이렇듯 이번 <문화 샤넬전>에선 단지 역대 샤넬의 옷이나 주얼리 등만 전시하고 마는 행사가 아닌, 
샤넬의 인생을 관통하는 주요 테마와 함께 그녀의 작품 세계와 철학을 이해할 수 있는 키워드를 
그 당시의 그림이나 책, 사진, 문서 등과 함께 포괄적으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한 개인의 일생 뿐만 아니라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중반으로 이어지는 문화와 복식사를 관통하는 흐름을 한 자리에서 엿볼 수 있다는 점도 교육적 효과가 있다 하겠습니다.  





위 사진 좌측의 아이보리색 드레스는 1960년 가브리엘 샤넬이 봄/여름 오뜨 꾸뛰르 컬렉션에서 선보인 드레스입니다. 
평생 땅(어머니)을 그리워했던 가브리엘 샤넬의 정신은 이처럼 밀 모티브를 금실로 수놓은 드레스에서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사진 우측의 드레스는 1996년 가을/겨울 오뜨 꾸뛰르 컬렉션에서 칼 라거펠트에 의해 제작 공개된 새틴 저지 소재의 보디수트입니다. 
금빛 밀이삭 자수가 들어간 블랙 오간자 드레스가 시선을 사로잡으며, 가브리엘 샤넬로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하우스의 헤리티지를 잘 계승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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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오바진의 규율'이라 이름 붙여진 다른 부스에 전시된 의상들입니다. 

오바진은 코레즈의 한 시골 마을로 이 숲속 깊은 곳에 위치한 수도원에 가브리엘 샤넬은 12살 때 친아버지에 의해 버려집니다. 
그녀의 어머니는 이미 결핵으로 세상을 떠난 직후였고, 떠돌이 행상인인 아버지는 그렇게 떠난 뒤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지요. 

불우한 어린 시절은 어린 샤넬에게 깊은 트라우마로 남겨질 수 있었지만, 가브리엘 샤넬은 오히려 오바진 수도원에서의 엄격한 생활을 창조의 원동력으로 삼습니다.  
수녀복의 블랙&화이트는 훗날 샤넬의 의상 스타일에도 고스란히 반영되었고, 혜성 모양은 어린 샤넬이 밤하늘을 보며 보다 나은 삶을 꿈꾸는 이상을 반영한 것이었지요.  

가브리엘 샤넬은 언젠가 자신의 친구이자 작가인 폴 모랑에게 이같은 말을 남겼다고 합니다. 

"이것이 바로 나의 어린 시절이다. 
 집도 없고, 사랑도 없고, 부모도 없이 고아원에 맡겨진 고아 소녀의 유년기. 
 끔찍한 시절이었지만 나는 아무것도 후회하지 않는다.(...)
 반항하는 아이는 아주 강하고 무장한 존재가 된다" 





프랑스의 거장 감독 로베르 브레송이 1932년 런칭한 샤넬의 하이 주얼리 컬렉션 '비쥬 드 디아망(Bijoux de Diamants)'의 보도자료를 위한 사진을 찍어주었군요.   

프랑스어로 '혜성'을 뜻하는 꼬메트(Comète) 모티프를 위 사진 속 목걸이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샤넬의 컬렉션에 자주 등장하는 해와 달, 별 모양은 또한 그녀가 유년기를 보낸 오바진 수도원의 포석이나 
성 유물함, 스테인드글라스 등에서도 항상 볼 수 있었기에 자연스레 샤넬의 감수성에 영향을 미칠 수 있었습니다. 





'다름이 주는 자유'라는 테마의 부스에서 본 1878년도의 한 포스터입니다. 
당시 샹젤리제 거리에 붙여진 카페-콩세르 데 앙바사되르의 공연 포스터인데, 포스터 중앙에 "혹시 코코를 보지 못하셨나요?"라는 문구가 눈길을 끕니다. 

가브리엘 샤넬은 18세가 되던 해인 1901년 물랭의 한 기숙학교에 들어가게 됩니다. 
또한 수녀들의 추천으로 한 여성복 전문 의상실에 취직해 얼마간의 돈을 모았지요. 

갑갑한 수도원 생활을 벗어나 도심으로 나오게 되니 샤넬은 난생 처음으로 활기로 가득 찬 생활에 젖어듭니다. 
항상 마음 속에 성공을 열망했던 그녀는 가수가 되는 꿈도 품고 있었는데요. 그래서 밤에는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카페(캬바레)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기도 했습니다. 
노래 실력보다는 그녀의 미모에 반한 군인들로부터 특히 많은 갈채를 받았으며, 그들이 부른 별명에서 유래해 그녀가 부른 노래 제목에도 쓰인 것이 바로 '코코'입니다. 


 


코코 샤넬을 뜻하는 더블 C 로고는 20세기가 낳은 가장 아이코닉한 브랜드 심볼 중 하나이지요. 
위 사진 속의 그것은 립스틱 케이스를 한데 모아 완성한 것입니다. 최면을 걸듯 샤넬 로고가 잔상에 맺힙니다. ㅋ 


  


위 사진 정면에 보이는 네이비 브레이드 장식이 달린 아이보리색 울 트위드 자켓은 
가브리엘 샤넬이 1960년 가을/겨울 오뜨 꾸뛰르 컬렉션에서 선보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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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부시게 화려한 이 외투는 1980년대 초반 샤넬의 크리에티브 디렉터로 발탁돼 샤넬을 세계적인 브랜드로 부흥시킨 칼 라거펠트(Karl Lagerfeld)가 
1996년 가을/겨울 레디-투-웨어 컬렉션에서 선보인 유색 스트라스로 장식한 라메 양단 자켓입니다. 금도금한 금속 및 유리 페이스트 소재의 벨트가 시선을 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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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나 칼 라거펠트가 디자인한 2013년 가을/겨울 오뜨 꾸뛰르 컬렉션의 실크 오간자 투피스. 
면 소재의 오리가미 장식과 가죽 소재의 꽃 모양을 장식하기 위해 프랑스 르마리에 공방에서 약 1,180시간 동안에 걸쳐 작업했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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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넬을 대표하는 2.55백도 전시장 곳곳에서 볼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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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건물을 옮겨서 M3 동이 아닌 바로 옆 A1 동 안으로 이동합니다. 
전시회 동선이 잘 짜여 있기 때문에 안내 표시판만 따라가면 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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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랭에서 샤넬은 부유한 마주(馬主)인 에티엔 발장을 만나 처음으로 사랑에 빠지게 됩니다. 그리고 파리 근교의 르와얄리유라는 성에서 살게 되지요. 

하지만 아버지를 닮아 방랑벽을 타고난 샤넬은 교외의 성에서 아무런 걱정없이 매일 파티나 하고 승마를 즐기는 생활에 금새 권태를 느끼게 됩니다. 


그럼에도 르와얄리유에서의 상류 사회 체험은 훗날 샤넬에게 큰 밑거름이 됩니다. 

영민했던 그녀는 금방 상류층 문화에 적응해 갔고 그들이 좋아하는 기호를 확실하게 꿰뚫어 보게 됩니다. 

그리고 남자 친구인 발장이 입던 승마복을 개조해 입기도 하는데, 이는 당시 여성들 사이에선 파격이었습니다. 


또한 상류층 친구들에게 직접 모자를 만들어주기 시작했는데 어느덧 입소문을 타면서 파리 전역에서 인기를 끌게 되지요. 

그 즈음부터 샤넬은 남자에게 의지해서 사는 삶이 아닌 여성으로서 홀로 자립해 돈을 버는 삶을 차근차근 준비하게 됩니다. 


발장과 헤어진 후 샤넬은 마침내 운명적인 사랑인 영국 출신의 신사 아서 카펠(보이 카펠로도 많이 불림)을 만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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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20년대 초반의 가브리엘 샤넬 사진. 

영화 '코코 샤넬'에서 그녀의 젊은 시절을 연기한 오드리 토투와 비교해도 꿀리지 않는 미모군요.



남자친구이자 든든한 후원가였던 보이 카펠의 도움으로 가브리엘 샤넬은 1910년 파리 깡봉 가 21번지에 첫 모자 가게를 오픈합니다. 


그녀는 자신이 디자인한 모자를 쓰고 직접 <코모에디아 일뤼스트레> 같은 잡지의 모델로 나설 만큼 당시 미모도 절정을 이룰 때였지요. 

또한 사교적인 성격 덕분에 각 분야에 친구가 많았던 그녀는 친구들의 도움으로도 사업을 시작하기가 무섭게 큰 성공을 거두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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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16년에 제작한 아이보리색 실크 저지 스트라이프 셔츠.



1913년에는 고급 휴양지인 도빌에 대형 부티크를 처음 개장하고 당시 휴양지를 찾은 상류층들을 겨냥한 편하게 입을 수 있는 비치 웨어를 만들어 대히트를 칩니다. 


남성의 작업복으로나 쓰이던 저지 소재를 가지고 처음 여성용 옷을 만든 것도 이때입니다. 시대가 바뀐 만큼 샤넬은 여성을 속박하는 코르셋이나 입기 번거로운 드레스서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을 본능적으로 품고 있었습니다. 또한 억압되고 불운한 어린시절을 보낸 터였기에 자유로운 영혼을 위해서는 옷차림도 편안해져야 한다고 여겼지요.  


몸을 구속하지 않는 헐렁한 실루엣, 무릎까지 오는 치마, 짧은 머리에 그을린 피부를 가진 샤넬의 자태는 당시 활동적인 현대 여성의 워너비가 되기에 충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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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얄궂은 운명은 샤넬을 행복에만 젖게 하지 않지요. 일생의 사랑인 보이 카펠이 1919년 말 자동차 사고로 갑작스레 세상을 떠나겐 된 것입니다.  

식음을 전폐할 만큼 삶의 의지를 잃은 가브리엘 샤넬은 보다 못한 친구 부부의 손에 이끌려 1920년 8월경 이탈리아의 베니스로 여행을 떠나게 됩니다. 


고풍스러우면서도 묘하게 퇴폐적인 매력을 발산하는 도시 베니스에서 샤넬은 지금까지 경험한 것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스타일에 눈을 뜨게 됩니다. 

이를 반영하듯, 1920년대 초중반부터 샤넬의 액세서리 및 의류 컬렉션에 볼드한 디자인과 화려한 디테일이 등장하게 된 것도 베니스의 영향이었지요. 

또한 베니스의 수호상인 황금 사자를 너무나 좋아하게 됩니다. 재미있게도 가브리엘 샤넬의 탄생 별자리 역시 사자자리(8월)였던 것입니다.^^



 


- 사진작가 윌리 리조가 작업한 1960년 작품. 가브리엘 샤넬과 함께 어김없이 등장하는 사자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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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20년대 초부터 여생 동안 특별한 애정을 품은 도시 베니스에서 영감을 얻어 제작한 일련의 액세사리 컬렉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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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러시아의 예술가 일리아즈드가 1927년 남긴 작업 노트 중에서... 샤넬 직물을 위한 연구와 데생이 담겨있습니다.  


샤넬의 옷은 1920년대 초반 러시아에서도 큰 인기를 얻었는데요. 
드미트리 파블로비치 대공과도 당시 연인 관계였던 샤넬은 러시아에서 잠시 머무는 동안 안무가인 세르게이 디아길레프를 비롯해 

음악가 이고르 스트라빈스키, 마침 비아리츠 해변으로 휴가를 온 화가 파블로 피카소 등과도 교류하며 일생 동안 우정을 유지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러시아에서 아주 중요한 인물 한명을 만나게 되는데, 바로 러시아 황실 조향사인 에르네스트 보(Ernest Beaux)가 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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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넬은 에르네스트 보에게 제작을 의뢰해 1921년 자신의 첫 번째 향수 NO.5를 완성하게 됩니다. 

알데히드라는 인공합성물을 사용한 덕분에 샤넬 넘버 5는 천연향이 아닌 최초의 추상적인 향수로 인정받게 되었고, 

절제된 사각 향수병에 실험실의 시약병 이름표를 연상시키는 파격적인 디자인의 라벨을 붙인 넘버 5는 이내 세계적으로 히트하며 어마어마한 부를 얻게 해주지요. 


영화배우 마를린 먼로는 샤넬 NO.5를 가리켜 ‘잠자리에 들 때 몸에 걸치는 유일한 옷’이라고 말해 더욱 유명세를 부추기지요. 




- 슬라브 스타일의 영향을 느낄 수 있는 1922년 제작된 키트미르 공방 자수가 들어간 블랙 실크 크레이프 코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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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31년 가브리엘 샤넬의 친필 서한 필사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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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리스티앙 베라르가 남긴 1930년 경의 가브리엘 샤넬의 초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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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소 가브리엘 샤넬을 선망했던 팝아티스트 앤디 워홀의 1985년 작품 중에서... 






샤넬 넘버 5의 병 뚜껑 디자인은 파리 방돔 광장을 위에서 내려다 봤을 때의 형태에서 착안한 것이라고 하는데요. 

1987년 런칭한 여성 시계 프리미에르의 케이스 형태 역시 방돔 광장에서 모티프를 얻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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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브리엘 샤넬은 어느 정도 나이가 든 시점부터 항상 길다란 진주 목걸이를 착용했는데요. 

이 진주 목걸이에도 숨겨진 사연이 있습니다. 바로 그녀가 유년기를 보낸 오바진 수도원의 수녀들이 착용하던 긴 묵주에서 그 영감을 얻은 것입니다. 

이후 샤넬 컬렉션에서 긴 진주 목걸이는 여성의 우아함과 절제미를 보여주는 주요한 장신구로 자리매김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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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이트 까멜리아 모티프의 코르사주. 


동백꽃을 칭하는 까멜리아 역시 샤넬이 사랑한 꽃으로 현재까지도 여러 컬렉션에 활용되고 있지요. 





- 2012년 발표한 마드모아젤 프리베 꼬로망델 시계. 

   그랑푸 에나멜 다이얼과 화이트 골드 바탕의 케이스에는총 2.4캐럿인 594개의 다이아몬드로 장식돼 있습니다.  



꼬로망델(Coromandel) 역시 샤넬이 평생을 걸쳐 사랑한 오브제입니다. 

일종의 접이식 병풍이라고 할 수 있는 중국풍 꼬로망델을 샤넬이 처음 접한 것은 그의 연인인 보이 카펠 덕분이었다고 합니다. 


중세의 테피스트리와 비슷한 역할을 하는 꼬로망델은 샤넬처럼 방랑벽이 있는 사람에게 적합한 가구였지요. 

샤넬은 여행을 갈 때도 몇 폭의 꼬로망델과 좋아하는 책 몇 권은 꼭 챙겨 가져갔을 정도로 애착이 대단했다고 하네요. 


샤넬이 책과 꼬로망델을 사랑한 이유는, 책은 어린시절 불우했던 그녀로 하여금 언제든 책장을 펼치는 순간 상상의 나래를 펼 수 있게 해준다는 점에서 였고, 

꼬로망델은 어느 공간에 있든 펼쳐서 주변을 감싸는 순간 그녀가 좋아하는 아름다운 배경 속에서 항상 친밀함과 안정감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 자크 엘뤼의 주도하에 2000년도에 런칭한 J12. 이내 하이테크 세라믹 시계의 아이콘이 되었지요.  

   위 사진 속 시계는 방수 성능과 실용성을 배가시킨 J12 마린 컬렉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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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작가 더글라스 커클랜드에 의해 1962년 파리 깡봉 가 31번지 매장 계단에서 촬영된 가브리엘 샤넬. 

   당시 그녀는 봄/여름 오뜨 꾸뛰르 컬렉션을 통해 선보인 베이지 색상의 울 트위드 자켓을 입고 있었습니다. 


가브리엘 샤넬은 1921년 파리 깡봉 가 31번지 건물을 구입해 현재까지 이어져 내려오는 샤넬만의 독특한 하우스를 완성했습니다. 

그리고 건물 내 아파트에 작업실을 마련하고 여든이 넘는 나이에도 매일 같이 일을 했다고 하지요(밤에는 인근 리츠 호텔에서 잠듬). 


이번 전시회를 기획한 큐레이터 장-루이 프로망 씨는 전시회 기념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소뮈르, 브리브, 오바진, 물랭, 르와얄리유, 파리, 도빌, 베니스, 비아리츠, 로크브륀, 이튼 홀, 할리우드, 뉴욕, 

 이런 곳들의 외양에서 샤넬이 간직하게 될 것은 오로지 그 윤곽과 기억뿐이다. 

 그렇게 해서 그녀는 자신만의 독특한 체험을 작품 속에 옮겨놓게 된다. 

 하지만 유일무이한 장소, 그녀의 일생이 매듭지어지는 곳, 다른 모든 것들을 품어 안는 장소가 있다. 

 바로 파리 깡봉가 31번지에 있는 그녀의 아파트이다. 

 그녀가 내적으로 공감하는 바가 장식처럼 펼쳐진 곳이 바로 이 곳이며, 장소의 정신이 구현된 곳이 바로 이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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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관람을 마치고 전시장을 나오니 끝자락에는 라이브러리 공간이 마련돼 있었습니다. 


가브리엘 샤넬은 장르를 가리지 않고 평생 다양한 책을 섭렵했는데요. 

위고, 모파상, 릴케, 아폴리네르, 장 콕토 등의 책 표지 상단에는 C라고 이니셜을 넣어 자신이 정말 좋아하는 책임을 표시하기도 했습니다. 

책을 사랑한 만큼 수많은 작가들과도 교류했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고요. 언젠가 그녀는 인터뷰에서 이런 말까지 남겼다고 합니다. 


"현실은 나를 꿈꾸게 해주지 않지만, 나는 꿈꾸기를 좋아한다..."


가난했던 소녀가 소유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것이 책이었고, 그 책을 통해 상상의 나래를 펴고 자신만의 세계를 개척하겠다고 다짐할 수 있었기에 

그녀가 좋아했던 북 컬렉션을 살펴보는 것 또한 그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라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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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인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았던 가브리엘 샤넬의 내면과 치열했던 삶의 발자취까지 더듬어 볼 수 있었던 <문화 샤넬: 장소의 정신> 전은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오는 10월 5일까지 꽤 넉넉한 기간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오전 10시에서부터 오후 6시까지 관람하실 수 있습니다. 


무료 관람임에도 전시회 입장을 위해서는 반드시 티켓이 있어야 하는데요. 현장에서는 지체될 수 있으니 인터넷을 통해 사전 예약을 권장합니다. 

<문화 샤넬전> 홈페이지에 접속해 원하는 날짜와 시간대를 정한 뒤 간단한 정보를 입력하고, 차후 컨펌된 해당 이미지를 핸드폰에 담거나 출력해서 가져가면 됩니다. 


- 기타 자세한 사항은 <문화 샤넬전> 공식 홈페이지를 참조하시길... http://culture.chanel.com/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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