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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29일은 랑에 운트 죄네(A. Lange & Söhne)를 재건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 

발터 랑에(Walter Lange) 씨가 구순, 즉 90세 생일을 맞은 날이었다고 합니다. 

발터 랑에 씨는 여러분들도 잘 아시다시피, 

1845년 랑에 운트 죄네를 설립한 창립자 페르디난트 아돌프 랑에(Ferdinand A. Lange)의 직계 증손자입니다. 


전통적으로 광산업이 발달한 글라슈테 지방을 단숨에 독일 시계산업의 중심지로 바꾸어 버린 선구적인 페르디난트 아돌프 랑에와 그의 아들들은 

19세기 독일을 넘어 유럽 전역에까지 명성이 자자했습니다. 하지만 2차 세계대전 당시 공방은 파괴되고 동독 정부 하에서 수십 년간 명맥이 끊기는 비운을 겪지요. 


1948년 당시 공산주의 정권을 피해 서독으로 탈출한 발터 랑에 씨는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붕괴되고 이듬해(1990년) 독일이 통일이 되자마자, 다시 고향인 글라슈테로 돌아와 랑에 운트 죄네를 재건하는데 자신의 모든 것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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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랑에 운트 죄네의 현 글라슈테 본사 전경. 



발터 랑에 씨가 랑에 운트 죄네의 재건에 자신의 남은 인생을 다 바치기로 한 것은 아무래도 자신이 이 브랜드를 이끈 위대한 선구자들의 핏줄이기 때문이었을 겁니다. 

마치 우리네 종가의 후손처럼 모종의 사명감이 없었다면, 더는 아무 것도 남지 않은 브랜드를 다시 원점에서 일으켜 세울 결심을 하기란 결코 쉽지 않았을 테니까요... 


발터 랑에 씨의 업적은 또한, 오페라 극장의 대형 벽시계서 영감을 얻은 랑에 1을 비롯해, 자이트베르크, 1815, 작소니아 등 아이코닉한 손목시계 컬렉션을 개발해 

랑에 운트 죄네를 단순히 옛 유명 브랜드의 부활 수준이 아니라 독일을 넘어 세계에서 가장 프레스티지한 시계 브랜드 중 하나로 온전하게 키워냈다는데 있습니다. 


1990년대 재건 초기 작은 워크샵 형태에서 20여 년의 세월이 흐른 현재는, 1,300여 명이 근무하는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했으며, 

그간의 업적을 인정 받아 발터 랑에 씨는 1995년에는 글라슈테 자유 시민(우리식 표현으로는 명예 시민)상을 수상하고, 

2013년 말에는 스위스 고급 시계 재단(Fondation de la Haute Horlogerie, FHH)이 수여하는 평생 공로상(Hommage à la Passion)을 받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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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랑에 1 문페이즈 모델들. 

   자세한 사항은 공식 홈페이지 참조: http://www.alange-soehne.com/timepieces/lange-1/#lange-1-moon-phase


발터 랑에 씨의 90세 생일을 맞아 관련 공식 인터뷰 내용도 추가로 발표되었는데요. 

몇 가지 질문과 답변 내용을 발췌, 번역해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Q: 당신은 워치메이커 가문의 일원으로 태어났다. 당신이 처음으로 시계에 눈을 뜨기 시작한 건 언제인가? 

Walter Lange(이하 W.L): 요즘 아이들이야 리모트 컨트롤 자동차나 컴퓨터를 가지고 놀지만, 나는 어린 시절 나만의 워치 킷(watch kit)을 가지고 있었다. 

                                   정확히 몇 살인지는 지금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나는 어린 시절에 스스로 시계를 조립한 적이 있었고, 

                                   아주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를 따라 매뉴팩처에서 오랜 시간을 보냈다. 그런 경험들이 자연스레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 



Q: 이후 당신은 워치메이커로서 정식으로 훈련을 받았는가?  
W.L: 16살이 되던 해, 나 역시 가문의 전통을 따라 워치메이커의 길에 입문했다. 당시 글라슈테에는 하나의 마스터 코스만 있었기에,  

        나는 오스트리아의 칼스타인이라는 워치메이커 밑으로 들어가 1년 반 정도 기본기를 수학했다.

        그리고 다시 고향(글라슈테)에 돌아와 글라슈테 시계 학교의 마스터 워치메이커 알프레드 헬위그(Alfred Helwig) 씨 밑에서 공부했는데, 

        당시 전쟁이 터지는 통에 강제 징집에 뽑혀 아쉽게도 견습생 시절이 끝나고 말았다.   



Q: 전후 글라슈테 지방의 시계제조사들은 모두 나라(동독 정부)에 몰수당해졌다. 그 시절 당신의 경험담을 듣고 싶다. 

W.L: 당시 내 아버지 루돌프(Rudolf Lange)와 그의 두 형제 오토와 제라드는 매뉴팩처를 버리고 떠날 수 밖에 없었다. 

       물론 전후 직후 우리는 회사를 재건하기 위해 골몰했고, 일부 파괴된 작업 시설 복구를 위해 부던히 애를 썼다. 

       그 결과 손목시계용으로 개발된 소형 칼리버 28을 완성하기도 했지만, 1948년 4월 정부에 회사를 몰수당하면서 그 모든 노력들이 하루 아침에 수포로 돌아갔다.  

       나는 당시 아버지와 숙부들에게 유니언(Union, 즉 여러 브랜드를 강제 통합시킨 글라슈테 시계연합을 일컬음)에 가입하자고 설득하기도 했지만, 

       그들은 그런 길을 원치 않았다. 그리고 나 역시 돌연 우라늄 광산에 강제 징집돼 끌려갈 위기에 처했는데, 겨우 탈출에 성공해 그해 11월 서독으로 갔다. 



Q: 그리고 수십 년의 세월이 흐른 1990년 12월 7일 당신은 다시 글라슈테에서 새 비지니스의 시작을 알린다. 이 결정은 어려운 것이었는가? 

W.L: 물론 그것은 위험이 따르는 결정이었다. 하지만 당시 내게 주워진 유일한 숙명이기도 했다. 

        베를린 장벽이 붕괴됐을 즈음 나는 이미 전에 하던 일을 그만 두고 은퇴해 있었다. 하지만 나는 우리 조상들의 유산을 그냥 모른 체 지나칠 수가 없었다. 

        그렇게 1990년 12월 7일 랑에 운트 죄네의 새로운 시작을 선언한 그 날은 내 인생에서 가장 뜻 깊은 날이었다. 

        또한 나의 사업 파트너 귄터 블륌라인(Günter Blümlein)의 헌신적인 도움이 없었다면 결코 나는 뜻한 바를 이룰 수 없었을 것이다.  



Q: 브랜드의 재건을 도모하며 당신이 애초 목표했던 비전을 간단히 요약하면 무엇이었는가? 

W.L: 처음부터 우리는 매우 클래식하면서도 동시에 모던한 시계를 만들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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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워치스&원더스서 공개한 15개 한정 생산 모델인, 랑에 1 투르비용 퍼페추얼 캘린더 한트베르크쿤스트(Lange 1 Tourbillon Perpetual Calendar Handwerkskunst).

   보다 자세한 사항은 공식 홈페이지 참조: http://www.alange-soehne.com/timepieces/lange-1/#lange-1-tourbillon-perpetual-calendar-handwerkskunst 



Q: 처음 15명 정도의 직원들과 시계 사업을 재개하며 당신은 랑에 운트 죄네가 다시 세계적인 브랜드로 성장할 수 있으리라 확신했는가?

W.L: 물론이다. 아니 적어도 당시 내가 품던 목표였다. 

       나의 조상들은 포켓워치로 국제적인 성공을 거두신 분들이고, 지금도 그 시절의 시계를 수리하기 위해 세계 각지서 연락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사업 재개 초반 우리는 독일 및 일부 유럽권 안에서만이라도 시계가 팔릴 수 있기를 희망했다. 

       하지만 이내 바다 건너에서 여러 고객들이 주문을 해왔고 어느덧 이렇게 세계적인 브랜드로 다시 발돋움할 수 있게 되었다. 



Q: 당신의 경력에서 최고의 하이라이트는 무엇이었는가?

W.L: 꼽기가 쉽지 않은 질문이다. 하지만 1994년 10월 24일 우리 최초의 컬렉션이 나왔을 때를 우선적으로 언급해야겠다. 

       그리고 2013년 6개 한정 생산된 그랜드 컴플리케이션 모델을 제네바에서 전시했을 때도(작년 SIHH를 일컫는 듯) 뿌듯함을 느꼈다. 

       나는 그때 '랑에는 현재 모든 걸 제대로 잘 하고 있어'라고 확신했고, 우리가 가진 전통과 회사, 그리고 직원들 모두가 자랑스러웠다. 



Q: 회사의 미래를 위한 당신의 비전은 무엇인가?

W.L: 나는 이제 더이상 회사 경영에 관여하고 있지 않다(현 CEO는 빌헬름 슈미트 Wilhelm Schmid). 하지만 중요한 이벤트에는 필히 참여하고 있다. 

       우리의 워치메이커들이 지금처럼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시계를 제조하기 위해 꾸준히 노력하는 한 브랜드의 앞날은 계속 잘 풀릴 것이라 믿는다. 

       우리는 랑에 시계의 가치를 결코 낮게 잡거나 타협해선 안 된다. 랑에를 랑에 답게 만드는 퀄리티에 대한 오롯한 집중은 앞으로도 계속 그대로 유지될 것이다. 



Q: 당신은 이제 90세 생일을 맞았다. 우리에게 장수의 특별한 비결을 알려줄 수 있는가?

W.L: 평소 나는 주말마다 도심을 벗어나 교외로 나간다. 경치가 좋고 깨끗한 공기로 가득찬 자연 속에서 몸을 편안하게 하고 재충전하는 행위를 즐기는 것이다. 

       그리고 하루에 조금씩이라도 반드시 산책을 한다. 우리 주변의 뉴스들은 온통 부정적인 소식들로만 가득차 있다. 

       하지만 정신의 포커스를 밝고 긍정적인 쪽으로 향하게 하는 습관을 길들일 필요가 있다. 

       나 같은 사람은 세계 경제 대공황과 2차 세계대전 같은 끔찍한 현실도 겪어왔다. 그래서 긍정적인 사고가 삶을 얼마나 아름답게 만드는 지를 잘 알고 있다. 

       이 말의 요지는, 자신이 정말 원하는 일을 하고, 미래를 용기와 희망, 열정을 가지고 바라보고 실천하려 노력하는 것, 이것이 바로 내 장수의 비결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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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 초 SIHH서 공개한 리차드 랑에 퍼페추얼 캘린더 테라루나(Richard Lange Perpetual Calendar Terraluna) 핑크 골드 버전. 

   보다 자세한 사항은 공식 홈페이지 참조: http://www.alange-soehne.com/timepieces/richard-lange/#richard-lange-perpetual-calendar-terraluna-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뻔한 글라슈테의 명가 랑에 운트 죄네를 되살린 일등 공신이자 시계 업계서 가장 존경 받는 원로 중 한 명인 발터 랑에 씨. 

올해로 구순을 맞은 그가 앞으로도 모쪼록 더 장수하여 독일 시계의 자존심인 랑에 운트 죄네의 더 큰 성장을 지켜볼 수 있길 기원하는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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