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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t 게시글은 조회수1000 or 추천수10 or 댓글25 이상 게시물을 최근순으로 최대4개까지 출력됩니다. (타 게시판 동일)한국 사회에서 평등이 존중 받을 수 없는 이유 (스압)
부제 : 합리적 보수를 주장하는 관점에서
0. 서론
약 십 년전 대학 입학 기념으로 노트북을 선물받은 이후, 인터넷 잉여질을 참 많이도 한 것 같다. 웃대, 플포, 엠팍, 디씨 등등 여러 사이트를 전전했지만 결국 꾸준히 들리게 된 곳은 학교 커뮤니티랑 피지알 두 곳이다. 피지알은 06년에 가입했는데 그 좋아하던 게임도 끊었지만 피지알은 끊을수가 없다.
그런데 인터넷 상의 논쟁을 보다보면 항상 생기는 의문이 있었다. 인터넷 세상에는 우수한 진보측 전사들은 많은데 그에 필적하는 보수측 전사들은 드물었다. 논쟁이 붙어도 진보를 자처하는 측은 유려한 논리와 데이터로 상대하는 데 비해서 반대측은 대안의 부재 정도를 언급하며 빠져나가기 급급하거나, 비이성적인 논리로 어거지를 쓰는 게 많이 보였다.
수많은 키배를 관람하고(약한 멘탈 때문에 참전은 하지 않았지만) 많은 사건 사고들을 보고, 대학생활, 군대생활, 회사생활을 경험하면서 내린 결론은 이거다.
“인터넷에서는 인간이 평등하다고 말해야 한다. 그러나 사회는 만인이 평등한 곳이 절대 아니다.”
누구도 인터넷에서는 대놓고 인간의 평등을 부정할 수 없다.
대놓고 너는 가난하니까, 너는 이룬 게 없으니까, 너는 연줄이 없으니까, 못생겼으니까(외모 비하는 좀 다른 성격을 띈다) 나쁜 대우를 받아야 해 하고 말하는 경우는 없다. 그렇게 말했다가는 인터넷 공간에서는 매장되기 십상이다. 특권 의식, 권위 의식을 혐오하고 직업의 귀천을 부인하는 것은 인간의 평등이라는 공리가 존재하는 인터넷 공간에서는 당연한 목소리이다. 이러한 목소리 앞에서 반대측 의견을 가진 사람은 저 공리를 부인하지 못하는 한, 현실은... 현실은… 이런 얘기를 할 수 밖에 없는데, 이런 궁색해질 수 밖에 없는 논리로 싸움을 하느니 그냥 전장을 떠날 확률이 높다.
크게 두 가지로 인해 현실 세계에서 인간의 평등은 존중받지 못한다. 사람이 이룬 성취와 힘에 따라 평가하는 권위주의, 그리고 나와의 친밀도에 따라 평가하는 집단주의가 그것이다.
1. 권위주의
사람은 성인이 되면, 늦어도 대학졸업하고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는 그의 소속에 의해 평가 받게 된다. “사람 김OO” 가 아닌 “OO 기업에 다니는 김 대리” 이런 식으로 말이다. 짧은 시간 동안 같이 일하는 관계를 맺어야 하고 이윤이 오가는 사회생활에서 타인이 나에 비해 어느 정도 지위의 사람인지, 힘을 가진 사람인지에 따라 남을 인식하고 그에 맞춰 행동하는 건 너무도 당연시된다. 개인의 인성, 뻔뻔함의 정도에 따라 예의를 갖추고 아니고의 차이가 있을 뿐 본질은 똑같다. 수많은 갑을 관계, 조직의 위계 질서 모두 위와 같다. “사람은 됨됨이가 중요하다.” 라는 순수함만으로 타인을 바라볼 수 있는 건 학창시절, 그나마 비슷한 위치의 사람으로 구성된 대학 생활이 마지막일 것 이다. (그래서 직장 생활하면서 친구를 만드는 게 불가능하다고 믿는 사람도 많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높은 지위에 소속되기를 원한다. 힘든 수험 생활을 거치고 대학에 가서도 저학년부터 전문대학원을 준비하거나 취업에 목매고 스펙 경쟁에 열을 올린다. 과연 그런 노력을 통해 올라간 사람들의 권위를 인정해 주고 더 대우받아야 한다는 생각이 부당한 것일까.
내가 다닌 대학의 특성상 높은 벽에 도전하는 이들과 벽을 뚫고 목표를 이룬 사람, 그리고 좌절한 사람을 볼 기회가 많았다. 주변에 수많은 역경을 뚫고 시험을 통과해 나름 타인이 인정하는 직종의 사람들을 보면 크게 세 부류이다. 1. 순수한 사람(나는 학문이 재밌다, 나는 법관이 되어서 법치를 실현하는 꿈을 꾼다, 의사가 되어 인술을 실현하는 사람이 되겠다) 2. 두뇌가 진짜 출중한 사람(뭘해도 될 놈이다), 그리고 3. 독한 사람(이들이 대다수를 구성한다)
공부가 재밌고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대부분은 먼 미래의 자신의 행복을 위해 끊임없이 수양하고 자신을 채찍질한다. 이 중 독하게 힘든 공부를 뚫고 성공한 지위에 오른 사람은 필연적으로 보상심리가 생길 수 밖에 없다. 이는 인간의 기본 감정이다.
유교문화의 영향으로 줄세우기가 당연시 되는 사회에서는 성공하는 사람이 순수한 의도로 공부하기를 바라는 건 우리의 욕심이다. 그들도 놀고 싶었을 것이다. 세상 어디보다 과도한 경쟁을 부추기고 패자에 대한 불관용이 지배하는 이 한국사회에서 난 힘겹게 성취한 사람이 그런 의식을 갖는 걸 결코 비난할 수 없다. 직업의 귀천이 없고 자신이 하고픈 걸 직업으로 선택하는 게 사회 전반을 감싸는 기류가 아닌 이상 직업 선택에서의 순수성을 강요할 수 없는 노릇이다.
나 역시 청빈한 대법원장, 장관들의 모습에 존경과 찬사를 보내지만 권위주의에 가득찬 많은 꼰대들을 보면서 몇 년간 하루에 열시간씩 중도에 틀어박혀 머리에 책을 우겨 넣었을, 아니면 공장이나 사무실에서 매주 70시간 일했을 그들의 모습을 떠올리게 되는 것이다.
내 친구 중 한 명은 전기과생인데 설의전을 갔다. 이 녀석의 합격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한치의 시기도 없이 축하해 줄 수 있었다. 사랑니 발치가 잘못되어 음식을 못씹고 피가 철철나는데도 다음날 시험이라 밤새 도서관에서 공부를 한다. 나는 고등학교 수험 생활도 진절머리가 나도록 힘들었는데 그보다 혹독한 생활을 몇 년 더 하고 있다. 난 도저히 그렇게 독하게 할 자신이 없었다.
한창 바쁜 놈이라 가끔 보는데 이 놈 언행에서 수많은 보상심리가 보이지만(ex 내가 설의인데 전문직 여자를 만나고 싶다 라던가) 난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 생활을 몸소 지켜봤으니까. 만약 내가 독한 놈이라 그런 생활을 해서 올라갔다면 나 역시 그 보상심리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을 거라는걸 난 알고 있으니까. 학창시절 공부를 즐기지 못하고 반지하 단칸방에서 시험 점수에 벌벌 떨며 명문대에 입학한 나로서는 대학 시절을 게임으로 허송세월하고 평범한 회사원이 되어 버린 지금에도 보상심리를 완전히 놓아버리지 못했다. 당연히 국공립 네트워크를 비롯한 민주당의 교육 정책을 까고, 지방대 쿼터제를 까고, 공기업 고졸 채용을 까고 수능등급제와 입학사정관제를 비롯한 권위를 떨어뜨리는 입시제도에 비판입장을 취할 수 밖에 없다.
개인적으로 청소년들이 입시제도로부터 자유롭고 뛰노는 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나도(수험생활을 대물림 해주고 싶지 않으니까) 한국에서 애를 키우면 좋은 학교에 보내려고 안간힘을 쓰겠지. 마치 특목고 폐지를 주장하면서도 자식을 외고에 보낸 곽노현처럼 말이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이기적인 존재이다. 대부분의 취준생들이 “취업문이 좁다. 나도 능력있는 인재인데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다” 불평하지만 막상 자신이 그 문을 넘게 되면, 문을 넘지 못한 이들을 자신과 동일 잣대로 바라볼 수 있을까. 전혀.
내 주변의 회사 동기들(대기업 정규직)은 대부분 계약직의 정규직 전환에 대해 일고의 가치도 없다고 부정적 입장을 취한다. 오히려 이는 명문대를 나온 동기들(이들은 취업이 최후의 보루인 경우가 많다)보다 낮은 등급의 대학에서 힘들게 탑을 찍고 좁은 문을 비집고 들어온 애들이 더 욱 직장에 대해 자부심이 높고, 그 지위가 훼손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아무리 현재 동일한 업무를 하고, 같은 생산성을 내고 있어도 지위를 얻기 위한 자신의 노력이 부정 당하는 느낌을 원하지 않는 것이다.
소속 후 포부보다 소속 자체의 안정성을 보상으로 삼는 직업, 그리고 시험 과정이 탈락하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 All or Nothing 인 전형을 거치는 직업일수록 보상심리가 심할 수 밖에 없다. 공무원 사회가 권위주의적인 성격이 될 수 밖에 없는 것은 그 직업을 선택하는 사람의 성향뿐만 아니라 이런 이유도 있는 것이다.
높은 사회적 성취를 이룬 사람들 중에 애초부터 부유한 지위에 있던 사람보다 자수성가한 사람이 오히려 낮은 지위에 있는 사람을 이해하지 못하고 권위주의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도 비슷하게 해석할 수 있다. 그들은 당당하다. 원래 부유했으면 넌 그래서 성공했어라는 태클이라도 걸 수 있지만 그 노력이 힘들었고 그걸 이겨낸 사람은 자신에 대한 프라이드가 강할 수 밖에 없는 건 당연지사다. 안 해본 것이 없는 MB가 자신을 이해해주길 바라는 것보다, 차라리 아무것도 안해본 공주님이 선민의식을 가지고 자신을 보듬어주길 바라는 게 훨씬 가능성 있는 일일지도 모른다.
가장 탈권위주의적인 대통령과 함께했던 우리 국민들이 그 후임으로 정반대 성향의 대통령을 압도적인 지지율로 맞이하게 된 아이러니는 대통령의 권위에 대한 국민들의 입장 표명으로 볼 수도 있다.
여기서의 집단주의(사실 단어 선택은 맘에 안드는 데 딱히 대체할 말이 안떠오른다, 공동체 의식이라는 말이 더 어울리는 것 같기도)는 나와 친밀도에 따라 다른 잣대를 들이대는 것을 의미한다. 이건 단순히 사회 생활을 시작하면서 매겨지는 높낮이가 아니라 부모로부터 생명을 부여 받은 순간부터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게 되는 감정이다.
아무리 현실에서 모르던 사람이라도, 심지어 익명성이 보장되는 인터넷 공간이라도 같은 동네, 같은 부대, 같은 학교 사람 만나면 반가운 게 인지상정이다.새누리당 안티인 내가 강용석이 가장 친근하게 느껴졌을 때는 썰전에서 NLL건으로 정문헌, 서상기가 사퇴해야 한다고 말했을 때가 아니라, 녹두거리에서 슬리퍼 찍찍 끌고 만화방에서 라면 먹었던 이야기를 할 때였다.
세상에 완전히 집단주의적인 사람은 있어도 이것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없다. 타인을 완벽히 평등하게 볼 수 있는 인간은 존재하지 않는다.(머리 깎고 절에 들어가지 않는 한) 예를 들면 인터넷에서 흔히 보는 이런 질문을 생각해보자. “당신이 사랑하는 친구 한 명의 죽음과 아프리카 난민 만 명의 죽음 중 선택해야 한다면 무엇을 선택하겠는가.”
이것은 정답이라는 것이 없는 가치 판단의 문제이다. 유대를 중시하는 인간이라면 전자를, 합리성을 중시하는 인간이라면 후자를 택할 확률이 높다. 그러나 애초에 이 질문 자체도 친구의 목숨이 모르는 사람 목숨보다 귀중하다는 것은 베이스로 깔고 가는 데다가 아무도 이를 부인할 수 없다.
나와 관계를 맺는 집단의 이익과 원칙이 상충할 경우 원칙을 고수하는 건 어려운 일이다. 누구나 원칙을 준수해야 한다, 공과사를 구분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현실에서 실천하기는 힘들다. 그랬다가는 싸가지 없다, 몰인정하다는 소리 듣기 딱 좋다. 이러한 타인의 비판뿐만 아니라 내면에서도 미안한 감정이 싹튼다. 오히려 주변 이익에 충실한 사람일수록 사람 좋다는 소리를 듣는 건 비일비재하다.
정권이 출범할 때 마다 붉어지는 코드 인사라는 건 어떤가. 수장이 자기와 친밀하고 같은 믿음을 공유하는 사람을 쓴다는 게 이상한 것일까. 노무현이 안희정을 중용하듯 박근혜가 김기춘을 중책에 맡기는 것도 당연한 것이다. 차라리 내가 저 사람이 저런 수준이었구나 라는 것을 몰랐었구나 하고 사람 보는 눈에 실망을 하면 했지, 비슷한 사람을 쓰는 것에 실망을 해선 안 된다. 오바마도 자기사람 쓰고, 메르켈도 자기사람 쓴다.
사랑과 남녀관계 역시 마찬가지이다. 타인을 대하는 애인의 행동에 실수가 보일 때 그걸 대놓고지적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 것이며 그러고도 상대에게 상처를 주지 않을 수 있을까. 설령 자신이 틀렸다는 걸 완벽히 이해시킨다고 해도 사랑받는다는 느낌을 주지 못할 것이다. 사랑은 결국 한 사람에게 특별한 존재라는 것을 인식시키는 행위라는 점에서 집단주의를 배제하는 사람은 사랑이라는 행위를 하는 것도 거의 불가능하다.(그래서 내가 안생기는건가) 마치 쉘든이 에이미를 만날 확률과 비슷하다.
위와 같은 집단주의가 사회를 지배하는 건 당연하다. 사회를 이끌어가는 기업, 정당 모두 집단이다. 왜냐면 개인은 약하고 집단은 강하기 때문이다. 개인의 결집되지 않은 목소리에는 아무 구속력이 없고 일단 집단은 자본, 노동력, 그리고 결집력에서 압도적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자신들을 연대하게 만든 명분을 이유로 얼굴이 두꺼워질 수 있으며 목적을 철저히 추구할 동력을 얻을 수 있다.
가장 유명한 논객들인 진중권과 김어준을 보자. 집단주의의 광기를 혐오하고 이성을 신봉하는 진중권은 토론에서 유리한 포지션을 점하고 있다. 별 볼일 없는 재주를 가진 나라도 디워를 놓고서라면 반대측한테 논리로 질 것 같진 않다. 또한 만렙 키워인 그는 논리뿐만 아니라 말꼬리 잡기, 상대 논리로 상대 까기 등등 스킬까지 완벽하다. 전문 분야까지 이런 회피 스킬로 싸워보려고 나서대다 트위터에서 가끔 굴욕 당하긴 하지만 그가 이 시대 최고의 지성 중 하나임은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그는 대안을 제시해 주진 못한다. 까는 거 말고는 딱히 할 수 있는 게 없다. 사실 그가 그렇게 까댈 수 있는 것도 자신이 어딘가에 소속된 존재가 아니라 방관자적 입장이기 때문이다. 하나쯤 있으면 좋지만 많으면 짜증나는 타입이다. 그들로만 구성된 플젝은 악몽이다.
김어준의 경우는 현 세태에 비판주의적인 점은 진중권과 같지만 집단주의를 신봉한다. 그는 집단주의로 권위주의를 타파하려는 인물이다. 오류도 비논리도 많지만 그에겐 대중을 이끄는 힘이 있다. 그가 대안 언론을 차린 건 결국 대중을 선도하는 가장 큰 위력을 발휘할 수 있는 게 언론이기 때문이다. 작년 대선 정국에 회오리를 일으킨 건 지식인의 논리가 아니라 그의 카리스마였다.
정치인으론 유시민이 좋겠다. 인간의 행동을 변화시키고 표를 행사할 수 있는 게 논리라면 난 그가 유력한 대통령 후보가 되었을 거라 본다. 하지만 아쉽게 현실 정치는 결국 인기 투표였고 그는 계속 패배했다. 행정은 잘해냈다. 그러나 정치의 거물이 되기 위해선 가장 큰 능력이 부족했다. 남에게 호감을 주고 포용하는 능력. 집단주의를 이용하지 않고는, 연대하지 않고는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다. 합리와 원칙을 추구하는 그가 세상을 바꾸기 위해 마지막으로 택한 곳이 통진당이었고 부정 경선이라는 똥통에 빠져 정치 인생을 마무리한 것은 비극이지만 사회의 한 단면을 잘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한 가지 재밌는 점은 이러한 집단 설정의 범주를 어디로 놓느냐에 따라 그 행동에 대한 평가가 달라진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경우 타인이 가정, 부모, 자식에게 힘쓰고 챙겨주는 모습은 아름다운 모습으로 평가 받는다. 그리고 아예 범주를 국가 단계로 넓히면 세계에 자랑스런 한국인의 긍지를 세우고 똘똘 뭉쳐 성공하기를 응원하고 칭송한다. 그러나 규모의 중간 지점에 속한 기업, 이익 단체, 주민 집단이 단체 행동을 하는 경우 집단 이기주의로 해석되어 몰매를 맞기 일수다.
이는 집단의 크기에 따라 사람들의 평가가 결정되는 것임이 아님을 알 수 있게 한다. 요는 그러한 집단주의가 자신의 권익을 침해하느냐에 있다. 가정을 챙기는 행위가 미담으로 남을 수 있는 건 그것이 자신들의 권익에 영향을 미치기에는 영향력이 너무도 작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이 사회 지도층의 경우로 넘어가면 그 영향력이 충분히 커지고 지탄의 대상이 되기 충분하다.
애국심의 경우 한 사회를 구성하는 공동체의 단위는 국가인 경우가 많고 애국심이 이러한 국가구성원 모두를 충족시키는 공통분모이기에 비난 받지 않는다. 반면에 집단 행위는 공동체를 구성하는 타 집단의 권익을 침해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며, 비판의 대상이 된다. 마찬가지로 전세계가 왕래하는 커뮤니티의 영역에서는 애국심 역시 하나의 집단이기주의로 까이기 충분하다.
특히 한국에서 노조를 중심으로 한 진보 단체는 만인의 평등을 주장한다기 보단 그냥 자신이 속한 집단의 권익을 우선시하는 집단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대표적인 사례는 외국인 노동자를 대하는 시각이다. 인건비를 떨어뜨리고 오너의 이익만을 늘리는 방편이며 이는 평등을 저해하는 행위라 부르짖지만 이 역시 우리 노동자들의 이익에 막대한 타격을 준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이다.
대표적인 집단 이기주의의 예로 국민들의 반발을 사고 있는 현기차 노조 사태를 보자. 개인적으로 그들을 비난할 이유가 없다고 보는게, 그들이 일반 국민의 박탈감을 고려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차피 그들이 투쟁하지 않으면 손해보는 건 일반 노동자(이는 타 회사 노동자에도 적용된다, 왜냐면 그들이 기준이므로) 일뿐 이득은 고스란히 재벌일가에 돌아갈 뿐이다. 쟁점은 근무 태만한 노조로 인해 납기 느리고 품질이 안 좋은 데다, 그들 인건비를 챙겨주느라 안 좋은 부품에 가격경쟁력도 떨어지는 차를 살 수 밖에 없는, 국민들을 호갱으로 만드는 국내 자동차 시장에 있다.
그렇다고 이런 자동차 시장을 고치는 게 공감대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인가. 아까 말했듯 개인은 약하고 집단은 강하다. 수입차 무관세 전면 개방은 대다수의 국민들에겐 약간의(?) 효용을 늘려줄 뿐이지만 현차에 목매는 수십만 명에게는 밥줄이 달린 문제다.
기업의 집단주의를 기반으로 파이를 크게 키워온 우리나라는 대기업=우리 경제라는 인식이 충분히 박혀 있다. 실제로 이미 삼전, 현차는 국가의 존망과 밀접한 관련을 가질 정도로 커버린 게 사실이다. 왠만한 대기업(STX 정도만 해도)은 충분히 나라 경제를 휘청거리게 만들 수 있으며 대다수의 사람들이 대기업을 욕하지만 그들에 종속되어 있다. 그리고 그들에게 이런 집단주의와 소속감 체화는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이처럼 우리나라는 경제 역시 일종의 집단주의에 매몰되어 있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 경제 위기라고 국민들이 집에 있던 금반지를 팔아 외화를 마련하는가.
나의 예를 들어보자면 지방 공업 도시에서 첫 직장을 다니다 지금은 서울에 있는 회사에서 일한다. 오히려 회사 규모도 작고 일하는 시간대비 급여나 조건도 떨어져 사람들은 후회하지 않느냐고 많이 물어 본다. 사실 나의 이직 이유는 이런 집단주의를 견디지 못했던 측면이 크다. 실력 없고 열심히 일안해도 버티는 무능한 상사, 승진이 인맥과 정치로 결정되는 문화, 혈연주의 등등.
사실 지금 있는 회사도 이런 점이 없는 건 아니지만, 수도권에 위치해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 사람의 다양성이 커지고 이런 집단주의는 많이 희석된다. 지금 직장이 일이 치열하고 어찌 보면 냉정한 모습도 엿보이지만 나는 만족한다.
3. 종합
이 둘은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사람이 가지는 기본 감정이다. 강한 자에게 머리를 숙이고, 비슷한 집단과 연대감을 공유하는 것은 동물의 본능이다. 유구한 인간 역사 중에서 만인 평등의 개념이 처음으로 사회적 공감을 얻은 지 채 200년 남짓이며 아직도 그런 개념조차 채택되지 못한 국가가 널렸다. 결국 법이란 규율로 이와 같은 동물적 본능의 발현을 억제하는 사회적 합의에 불과하다. 이로부터 자유로운 나라라도 전쟁, 극심한 불황, 자연 재해 등 동물로서의 생존이 위협받는 시점이 되면 다시 고개를 들 것이다. 합리와 원칙이라는 이상으로 나아가기 위해선 성숙한 의식과 동물적 생존본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생활적 토대가 필요하다.
우리 나라에서 이 두가지 의식이 굳건한 건 어찌보면 당연한 것이다. 수세기에 걸쳐 뿌리깊게 자리잡은 유교 문화에서 강조하는 충성심, 의리, 보은의 감정 결국 집단주의와 맞닿아 있고 전쟁 경험은 그 기폭제가 되었으며 이는 입신양명의 권위주의와 함께 대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했다. 이는 실리에 눈떠야 했고 성장해야 했던 우리 민족에게 정신적 뼈대를 형성하여 대한민국이 전후 폐허로부터 한강의 기적을 이루는 토대가 되었다. 이러한 힘든 세월을 이겨내고 같은 민족과의 사상 대결을 사실상 승리로 장식한 기성 세대들의 자부심은 어마어마하다. 이번 대선은 젊은 세대들에게 너희는 아직 준비가 안됐음을 알리는 준엄한 목소리였다. 평등과 이상을 논하기에는 그들의 삶이 너무 척박했다. 진보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토양이 자라기에는 아직 여유가 필요하며, 오히려 각박해지는 요즘 세상 속에서 그것은 매우 요원해 보인다.
한국 사회에서 철든다는 것은 결국 위 두 가지에 순응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철드는 행위의 면면을 살펴보면 돈을 벌며 세상살기 힘들다는 걸 깨닫는 것, 입신양명을 위해 열공하는 것, 가족의 소중함을 깨닫고 효도하는 것 등등 인데 이러한 행위는 모두 금전, 개인의 성취라는 권위에의 순응과 내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라는 집단 의식에 대한 순응과 일맥상통한다. 한국 남자들은 군대 다녀오면 철든다고 하는 것은 군대라는 집단이 바로 위 두 가지의 결정체이기 때문이다. 계급에 굴복하고, 왜 하는 지도 모르는 작업과 일상을 아무 생각없이 받아 들이게 되고, 내무 생활을 하며 전우애(?)와 가족의 소중함을 동시에 깨닫는 곳, 군필 남자라면 그것이 지우고 싶은 기억이든, 잊지 못할 추억이든 머리에 각인처럼 새겨지게 된다. 대기업에서 군필을 선호하는 이유도 당연하다.대기업은 잡스가 필요치 않다. 그들은 어느 정도 똘똘하고 말잘 듣는 인재를 원한다. 대기업에서 말하는 조직 적합성은 결국 위 두 가지 의식에 순응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며 군필 취준생들은 이미 그 시험을 통과하고 다시 그러한 조직에 몸담기를 자청하는 사람이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자평하자면 나는 권위주의를 인정하지만 집단으로의 소속감보다 개인의 능력을 우선시하고 국가에 대한 소속감도 없어 맨유와 다저스를 응원해야 한다는 것, 심지어 (내가 보지 않는 종목에 한하여) 국대를 응원해야 한다는 것에도 동의하지 못하는 반집단주의적 성향의 사람이다. 나는 능력 있고 열심히 산 사람이 더 나은 대우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아는 사람끼리 끌어주고 밀어주는 행위를 혐오한다. 나는 이것이 합리적이라 믿지만 타인이 다르게 믿는다고 비난할 수 없다. 이것은 내가 살아온 환경과 가정사에(성취의 경험과 소속감이 없던 생활 등) 기인한 것이다. 제각기 다른 유전자를 가지고 다른 삶을 살아온 사람들이 같은 성향을 가지는 것을 강요할 수 없다. 이건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다. 서로를 이해할 수 없다고 비난하는 건 무의미하다. 다름을 받아들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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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글입니다. 저는 글을 잘 못써서
댓글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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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shim
2013.09.06 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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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실리오
2013.09.06 09:50
좋은 글입니다. 현 사회에 대해 확실한 시선으로 분석을 한 좋은 글이지만.... 글 전체적인 흐름이나 글쓴이의 타협하지(내가 아니면 다른 사람도 틀린거다.)
않으려하는 고집과 기성세대와 젊은세대를 나누어 판단을 하여 잘잘못(?)을 판단하는게 전 좋지 않다고 생각합니다.(참고로 제 나이는 35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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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yde
2013.09.06 09:51
동감합니다. 아주 좋은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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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허이어
2013.09.06 09:58
일단 스크랩 한 후 집에서 정독해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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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소리
2013.09.06 10:28
글 좋네요. 개인적으론 한 두어문장 턱 걸리는 부분이 있긴 해도 전반적으로는 동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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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꽃남자ㅎ
2013.09.06 10:35
맞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인간'이기에 자유, 평등, 박애와 같은
인류 보편적 가치를 지향해야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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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빛달의기사
2013.09.06 10:45
나중에 정독해봐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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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위
2013.09.06 12:25
대한민국 사회는 다른나라와는 직접비교가 힘든 특이한 구조를 지니고 있는것만은 사실인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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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강
2013.09.06 13:10
사람은 다 누구든 자기가 보고싶어하는 쪽만 보고 좋아하려 한다는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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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bgksduf
2013.09.06 13:30
3줄 요약이 필요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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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XIV
2013.09.06 14:47
대한민국에 국한된거가 아니라.....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모든 인간사회에 적용 될거 같은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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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rror
2013.09.06 15:45
어떤 평등을 염두에 두고 있는지 알 수가 없군요. 평등이란 개념을 실제로 다양하게 쓰이고, 그 쓰이는 영역에 따라서 서로 대립되기도 합니다.
정치적 평등, 경제적 평등, 사회적 평등. 모두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죠.
홉스 이래의 근대 민주주의에서는 정치적 평등을 근간으로 하고 있습니다. 모든 시민이 자유를 갖고 있다는 의미에서 서로 평등합니다.
우리의 헌법도, 우리의 민주주의도 이런 평등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곧 경제적 평등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또한 경제적 평등 조차도 다양한 조건과 의미를 가질 수 있습니다.
이런 다양한 의미와 역사적으로 사용된 의미 등을 전혀 고려하고 있지 않고 있기 때문에, 잘 된 글이라고 도저히 말할 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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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Ni
2013.09.06 16:28
이완용 후손 일가가 나라의 정치, 경제를 좌지우지하는 사회에서 책에서 얘기하는 윤리, 공익, 철학, 양심 같은게 허공에 떠 있는 느낌이죠.
단순 수치로 보는 경제규모야 13위라지만, 인구감소율 세계 1위가 모든 걸 상징한다고 보여집니다.
의식수준은 아직도 조선시대라는 말이 그리 틀리지 않는 듯한 느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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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남생
2013.09.06 20:03
좋은글이네요..... -
도곡동
2013.09.07 00:27
좋은글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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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매냐0827
2013.09.07 00:54
유교라는게 참... 우리나라 전통이라는게 대부분 유교적인 것들이죠..
집단주의란건 가치중립적인 것에 가치판단이 들어가서 그런 것이구요...
타인과 지인의 목숨을 예로 드셨는데, 대전제는 내 부모나 남의 부모나 목숨은 다 중요한 것이겠구요... 누굴 살리냐는 선택의 문제는 참..........
뭐든 상식선이란게 있는데 사회는 아니 우리나라는 점점 그 상식이란게 허물어진다는데 심각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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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리노
2013.09.07 0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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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rasate
2013.09.12 02:48
고단 정규재 선생님이군요~ ^^
좋은글인것 같은데.......다시 한번 더 읽어봐야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