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와 시계와 인생

저도 외제차를 타는 사람이지만 제차를 보고 부러워 하거나 돈 꽤나 있겠다라고 하시는 분은 별로 없습니다.

어떤분은 아반떼를 튜닝한 차인줄 아시는 분도 계시고 전혀 외제차 같은 위화감이 안느껴진다는 평이 대부분입니다.

게다가.. 사업난으로 국내 매장이 철수까지 했으니 어떻게 보면 포르쉐보다 판매대수도 작고 구경하기도 힘든 차가

되어 버렸죠. 이게 다 마이너 리그를 사랑하는 제 취향 덕분입니다. -_-;; 제차는 SAAB 93 Vector라고 합니다.

사고나서 3년이 다 되어 갑니다. 그동안 잔고장도 없이 잘 타고 다녔고.. 가격 대비해서는 정말 퍼포먼스가 좋은 차입니다.

잘 나가고 잘 서고 사고나면 안전하다는 평을 듣고 산 차였지요. 요즘에야 듣보잡인 신세지만 사브타는 사람들끼리는

마이너 특유의 끈끈한 동료애 같은 것이 있습니다. 길거리에서 사브만 봐도 반가운.. 그런데 3년만에 타이어를 갈려고

갔더니 고속 진동 발란스 보시던 사장님이 그러시더군요. '이거 휠이 다 틀어 졌는데요..-_-' '허걱~!!'

처음 살때는 멀쩡했던 이 휠이 그동안 푹파인 길이건 과속 방지턱이건 무조건 밟아댄 주인 덕분에 다 뒤틀렸다고 합니다.

어떻게 해야 되냐고 물으니  불편한 거 못느끼면 그냥 타라고 하시네요. 원래 휠이란게 다 틀어지게 마련이라고.. 대신에

140킬로 이상 고속에서는 진동이 느껴질거라고 합니다. 타이어 잘 갈고 와서 운전할때 신경 써보니 그 사장님 말이 맞더군요.

그전에는 노면을 좀 타나 싶었던 떨림이 휠문제였다는 걸 알겠습니다. 그렇다고 4짝 다 휠을 바꾸기에는 너무 돈이 많이 들고

어차피 좋은 휠로 바꿔도 또 틀어질거라고 생각하니.. 롤렉스 금통 폴리싱 하는 격입니다. 살살 타면 되겠지요.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차하고 시계는 참 비슷하다는..

후덜덜한 이런 시계를 차고 다니다 보면 주변 사람들의 부러움과 선망의 눈길을 한눈에 받을 수 있겠습니다만..

관리도 잘 해줘야 하고 늘 소중히 다뤄야 하고 행여나 잃어버릴까 뺏기지는 않을까 불안스럽고.. 때가 되면 왠만한 시계

하나 값을 치루고 오버홀도 해야 합니다. 보통 일주일이면 되는 여느 시계와는 달리.. 복잡시계는 오버홀도 몇개월씩

걸리기도 하지요. 한마디로 유지비가 엄청나게 들어 갑니다.

남들이 다 돌아볼만한 예쁜 여배우랑 결혼했다고 해도 마찬가지죠. 거기서 끝이 아닙니다. 유지비가 장난이

아닐겁니다. 보석에 드레스에 해외 여행에.. 이런 저런 돈이 무수히 많이 들겁니다. 괜히 재벌들이나 사업가들이랑

결혼하는 게 아닙니다. (사진은 얼마전 쩨쩨한 로맨스에 출연한 류현경씨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여자를 멀리하고... 응??? (뭔가 익숙한 짤방이 떠오릅니다만.. 생략..)

최근에 시계를 새로 하나 장만했습니다. ETA의 범용 무브를 사용한 100만원 언더의 시계인데.. 캐주얼에도 수트에도

잘 어울리고 보면 볼수록 매력이 있는 친굽니다.

기다란 초침도 매력적이지만 날짜와 요일 창까지 있으니 실용성도 있고 오버홀이나 유지비 걱정이 전혀 없는 녀석이죠.

타임포럼에 있는 수많은 포럼들을 돌아 보며 차고 싶은 시계들을 찬찬히 들여다 봅니다. 그중에는 당장 살 수 있는 것부터

한 다섯번쯤 다시 태어나야 찰 수 있는 것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의 시계들이 널려 있습니다. 하나 하나 모두 개성있고

아름다운 모습들입니다.

그래서 시계가 좋은 것 같습니다. 이렇게 수많은 다양성을 제공해 주니까요. 허세 부리지 않고 자기가 좋아하는 취향을 살려서

내가 차고 있는 시계가 곧 나를 대변한다는 마음으로 시계를 즐겨 가고 싶습니다. 제가 지금 차고 있는 이 시계가 지금의

저를 대변해주는 것 처럼요. 저는 TF M-2 같은 사람이구요. 론진의 마스터컬렉션 문페이즈 같은 사람입니다. 

때로는 지샥같은 사람이고 때로는 타이멕스 같은 사람이기도 하구요. 여러분은 지금 어떤 사람입니까??

모처럼 한가로운 토요일 오후에.. 차와 시계, 그리고 인생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