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클리프 아펠 협업 오토마통 제작자 프랑수아 주노 인터뷰
타임포럼은 지난 워치스앤원더스 기간 하이 주얼리 & 워치 메종 반클리프 아펠(Van Cleef & Arpels)의 수많은 엑스트라오디네리 오브제(Extraordinary Object) 클락을 제작한 오토마통 장인 프랑수아 주노(François Junod)를 만나 단독 인터뷰를 가졌습니다. 40년 넘게 오토마통 외길을 걸어온 이 분야의 최고 권위자의 육성을 통해 반클리프 아펠과의 지속적인 파트너십이 갖는 의미와 여전히 청년처럼 뜨거운 오토마통을 향한 그의 열정을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프랑수아 주노 약력:
1959년 스위스 생-크루아에서 태어난 프랑수아 주노는 생-크루아의 에꼴 테크닉(Ecole Technique Sainte-Croix)에서 마이크로 기계학(Micro-mechanics)을 전공한 후, 전설적인 오토마통/뮤직박스 장인이자 국제예술역학박물관(CIMA) 창립자인 미셸 베르트랑(Michel Bertrand)의 가르침을 받아 오토마통 복원 기술 견습생으로 일했다. 그 와중에 학업 또한 게을리하지 않아 로잔 에꼴 데 보자르(Ecole des Beaux-Arts de Lausanne)에서 회화 및 조각 미술 학위를 취득했다.
1983년 고향 생-크루아로 돌아온 주노는 자신의 워크샵을 열고 오토마통 메이커로서 본격적으로 커리어를 시작했다. 그는 18세기 전통 방식 그대로 안드로이드 오토마통(Android automatons)을 제작하는 이 분야의 몇 안 되는 장인으로, '천사(the Angel)' '걷는 남성(The Walking Man)' '가수의 흉상(Singer’s Bust)' '앉은 새와 젊은 여인(Young Lady with the Perched Bird)' 등 그의 대표작들은 스위스 여러 도시의 박물관에 전시되고 있다. 비단 전통을 고수하는 것 뿐만 아니라 현대미술을 향한 남다른 애정을 바탕으로 다양한 시도를 함으로써 자칫 잊혀질 뻔한 오토마통/오토마타의 유산을 계속 이어갈 수 있도록 분투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2010년대 중엽부터 반클리프 아펠의 지속적인 후원과 긴밀한 파트너십을 통해 수많은 예술적인 오브제 클락을 남기며 세상에 그의 이름을 확실하게 각인시켰다.
반클리프 아펠의 워치스앤원더스 2024 노벨티 중 부통 도르(Bouton d’Or) 오토마통을 보고 메종이 2022년 발표한 레브리 드 베릴린(Rêveries de Berylline) 오토마통과 2023년 발표한 플로레종 뒤 네뉘파(Floraison du Nénuphar) 오토마통을 떠올렸다. 부통 도르는 이전의 오토마통들과 비교했을 때 어떻게 다르게 구동하는지 메커니즘에 관한 설명을 부탁한다.
내가 작업하는 모든 오토마통은 각각의 피스들이 완전히 새로운 디자인이다. 물론 작품들 간의 유사점이 있긴 하지만 매년 더욱 복잡해지고 정교해지고 있다. 부통 도르의 경우 당신이 제대로 본 것처럼 이전의 오토마통과 비교해 더 많은 요소들이 들어가 있는 게 사실이다. 꽃 속에서 요정이 나오는 부분도 새롭다. 2017년 발표한 오토메이트 페 옹딘(Automate Fée Ondine)에서도 요정의 모습을 볼 수 있지만 그 오토마통은 부통 도르에 비해 훨씬 더 큰 작품이었고 모습이나 구동하는 방식도 많이 다르다.
- 2022년 발표한 레브리 드 베릴린 오토마통
부통 도르 오토마통은 물속에서 움직이는 해파리나 해초의 유연한 움직임에서 영감을 받아 이를 구현하고자 노력했다. 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다른 속도로 움직이는 두 개의 링이 존재한다. 안쪽에 있는 링이 더 빠른 속도로 움직이며, 오토마통의 움직임을 자연스럽게 보이게 해준다. 또한 오토마통 하단에 보이는 리본과도 같은 장식 디테일은 부케 형태의 무브먼트가 닫히는 순간 드러난다. 다이아몬드를 세팅한 해당 리본 장식은 부케가 열릴 때 확대되었다가 닫힐 때 다시 원상태로 돌아가는 것이다. 이러한 리본의 모습을 구현하는 것 자체도 기술적으로 어려운 부분이었다.
- 2024년 노벨티, 부통 도르 오토마통
부통 도르 오토마통에서 가장 어려운 작업은 무엇이었는가?
부통 도르의 꽃잎을 다루는 게 가장 어려웠다. 이 꽃잎들을 모두 일정한 리듬으로 움직이게 하는 것은 물론, 앞서 말한 것처럼 부케를 감싸는 리본과 같은 요소들이 서로 다른 속도로 움직이는 링에 의해 제어되는 상황에서 모두 같은 속도로 열리고 닫히게 하는 것이 무척 까다로웠다. 각각의 장식에 기울인 밀도 있는 작업 역시 이를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왜냐면 정교하게 제작된 각 장식은 서로 닿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다른 속도로 움직이는 링과 이 모든 것을 조화롭게 움직일 수 있게 구현하는 작업이 결과적으로 특히 어려웠다.
- 2024년 노벨티, 아파리시옹 데 베 오토마통
또 다른 오토마통 노벨티인 아파리시옹 데 베(Apparition des Baies) 오토마통은 이전 작품들과는 다른 로테이션 시스템이 적용된 것 같다. 특히 잎사귀가 펼쳐지는 부분에서 차이점이 느껴진다.
그건 마치 마술과도 같지 않은가!? (웃음) 오토마통 베이스 중앙에 2개의 회전 디스크와 함께 7개 조각의 잎사귀가 맞물려 일제히 움직인다. 다시 말해 디스크가 움직일 때마다 무브먼트가 열리고 잎사귀가 펼쳐지는 식이다. 이러한 유형의 무브먼트를 제작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이 작품에서는 더 환상적이고 서정적인 느낌을 선사하고자 노력했다. 무브먼트는 단지 잎사귀가 펼쳐지는 모션 뿐만 아니라 잎사귀가 다시 닫히면서 마치 공처럼 원래의 상태로 돌아가는 모습까지 구현한다. 마치 마법이라도 부린 듯 천천히 원래의 상태로 돌아가는 무브먼트를 구현하기란 매우 까다롭고 힘든 작업이었다.
- 아파리시옹 데 베 오토마통 제작 과정 일부 모습
오토마통 메커니즘에 관한 아이디어는 보통 어디에서 얻는가?
영감은 다양한 곳에서 얻는다. 의도적으로 찾지 않는 순간에도 불현듯 떠오르는 것이 영감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빈티지 장난감을 보며 이게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보고 오토마통으로 한번 재현해 보고 싶다고 생각하거나 아니면 자연에서 얻을 수도 있다. 심지어 벼룩시장 같은 곳에서 얻는 경우도 있다. 프랑스나 여기 스위스에서도 사람들이 옛날 가구나 예전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쓰던 물건들을 다락방 같은 곳에 보관해 두었다가 길거리 벼룩시장에 팔곤 하는데 거기에서 아주 흥미로운 메커니즘의 장난감을 발견하기도 한다.
- 2023년 발표한 에베일 뒤 시클라멘 오토마통
반클리프 아펠의 오토마통을 디자인 할 때 제네바에 위치한 반클리프 아펠 크리에이션 스튜디오와 긴밀하게 논의하면서 진행하는가? 하나의 오토마통이 완성되기까지의 전반적인 프로세스가 궁금하다.
물론 처음에는 2D 드로잉에서 출발한다. 하지만 반클리프 아펠의 오토마통을 제작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협의 과정을 거칠 수 밖에 없고, 작품 특성상 파리의 하이 주얼리 팀과도 많은 논의를 거친다. 본사 소속 하이 주얼리 팀은 제작 막바지 단계에 들어서면 더욱 자주 우리를 방문하러 생-크루아로 온다. 오토마통의 미적인 세부적인 요소들을 조율하기 위해 들르는 것이다. 각각의 오토마통 작품이 유니크하기 때문에 일련의 조율 과정은 개인적으로도 무척 흥미롭다. 그들과 대화를 나눌 때마다 의견이 달라지기도 하고 아무래도 직접 이야기를 나누게 되면 이전에 생각하지 못한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르기도 한다. 결과적으로 지속적인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최상의 결과물이 탄생하는 것이다.
- 2017년 발표한 오토메이트 페 옹딘
당신의 작업을 처음 접한 게 2017년 반클리프 아펠의 오토메이트 페 옹딘 엑스트라오디네리 오브제를 통해서였다. 이 작업이 반클리프 아펠과의 첫 프로젝트였는가? 어떠한 계기로 메종과 같이 일하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반클리프 아펠과의 첫 조우는 2009년 이전 CEO를 통해서였다. 그 분이 내게 특정 오토마통 작업을 요청했는데 모종의 이유로 결국 무산되었고, 그렇게 끊어진 관계가 몇 년 후인 2013년 현 CEO 겸 대표인 니콜라 보스(Nicolas Bos) 회장이 취임하면서 본격적으로 재점화되었다. 니콜라 보스 회장은 이전 CEO와 나눈 아이디어가 담긴 자료들을 우연히 발견하고 무산된 프로젝트가 아닌 완전히 새로운 프로젝트 아이디어를 위해 내게 직접 연락을 취한 것이다.
이후 파리에 위치한 반클리프 아펠 부티크를 초청을 받아 방문할 기회가 있었는데, 거기에서 워터 릴리(수련) 모티프의 한 주얼리 작품을 보게 되었다. 꽃과 페어리(요정)가 중심이 된 해당 작품에서 페 옹딘 오토마통의 아이디어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메종과의 첫 번째 콜라보 작품인 페 옹딘은 실제 작업에 들어가면서 많은 어려움에 봉착했다. 나를 포함한 관계자들 모두가 최상의 작업 방식을 모색했기 때문에 끊임없는 조율이 필수였다. 당연히 주얼리 오토마통을 작업하는 것과 일반적인 하이 주얼리 피스들을 작업하는 것은 프로세스 자체부터 매우 다르다. 일례로 나비와 같은 오토마통 요소를 만들면 반클리프 아펠 하이 주얼리 팀에서는 왜 나비를 굳이 이러한 방식으로 제작하는지를 처음엔 잘 이해하지 못했다. 왜냐면 기존의 주얼러들은 특정 피규어나 오브제를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제작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팀을 설득하고 이해시키는 과정들이 있었다. 오토마통은 반드시 움직여야 하는 작품이기에 주얼리와는 다르다는 것을 설명해야만 한 것이다. 그렇게 지난한 과정을 거쳐 성공적인 파트너십의 결실을 맺게 되었고, 이제는 본사 팀과 매우 순조롭게 커뮤니케이션하고 있다. 서로의 작업 방식에 대한 충분한 이해와 신뢰가 쌓인 것이다. 그래서 엑스트라오디네리 오브제가 만들어지는 속도도 더욱 빨라졌다.
- 2022년 발표한 퐁텐 오 즈아조 오토마통
2017년 오토메이트 페 옹딘 엑스트라오디네리 오브제와 2022년 퐁텐 오 즈아조 오토마통(Fontaine aux Oiseaux automaton)은 당신의 재능이 가장 특별하게 빛나는 마스터피스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대형 프로젝트를 반클리프 아펠과 협업할 때 특별히 가장 어려운 점은 무엇인가?
퐁텐 오 즈아조 오토마통을 예로 들면, 오브제가 커질수록 복잡성도 한층 심화된다. 골드 자체의 무게가 나가기 때문에 그만큼 무브먼트의 움직임에도 많은 영향을 준다. 퐁텐 오 즈아조의 두마리 새의 경우 높이는 약 20센티미터에 무게는 각각 250그램에 달한다. 처음에 구상할 때만해도 새들의 움직임은 전혀 고려하지 않았으나, 이후 움직이게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 단순히 움직이는 차원을 넘어 새의 발과 발가락까지 다 움직이도록 작업했다. 그런데 새의 무게 자체가 상당했기 때문에 이 움직임을 구현하기가 정말이지 매우 어려웠다.
- 퐁텐 오 즈아조 오토마통을 조립하는 프랑수아 주노
반대로 반클리프 아펠과의 협업을 통해 당신이 얻게 된 가장 큰 이득은 무엇인가? 반클리프 아펠과의 지속적인 파트너십을 유지하게 하는 원동력은 무엇일까?
다른 메종에서도 비슷한 오브제를 만들어 달라는 요청을 받았지만 다른 메종과는 일하고 싶지 않다. 주얼리 오토마통에 관해서는 더욱 그렇다. 왜냐면 반클리프 아펠을 통해 뜻밖의 기회를 얻었고 세상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20년 전만 하더라도 내가 이렇게 아름다운 주얼리 오토마통을 만들게 되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물론 이전까지 어떠한 메종도 내게 이러한 류의 작업을 요청한 적이 없지만 말이다. 그렇기에 반클리프 아펠의 CEO인 니콜라 보스 회장에게 진심으로 감사하게 생각한다.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지속적인 콜라보가 가능하도록 길을 터준 분이다. 메종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이렇듯 유니크한 오토마통을 만들고자 결정할 때 그만큼 리스크를 안고 시작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나의 작업을 끝까지 믿고 지원해준 메종의 결정에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 오토마통 메커니즘을 보여주는 내부 모습
갑자기 당신의 어린 시절 얘기를 듣고 싶다. 어떠한 계기로 오토마통 메이커의 길을 걷게 됐는가?
우리 가문 내력이랄까? 할아버지와 아버지 그리고 나까지 모두 생-크루아의 에꼴 테크닉에서 수학했다. 비록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기업에 들어가 중공업 분야에 종사하게 됐지만 나는 좀 더 예술적인 기질이 있어 그 과정을 밟고 싶진 않았다. 그렇게 14살때 프랑스 태생의 오토마통 장인인 미셸 베르트랑(Michel Bertrand)을 만나게 되었다. 이 분은 18세기 말의 오래된 오토마통을 수리 및 복원하는 작업을 했는데 이러한 직업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고 그분 밑에서 2년간 견습생으로 일하며 기본기를 다졌다. 4년간의 생-크루아 에꼴 테크닉, 3년간의 로잔 에꼴 데 보자르까지 마친 후 나는 1983년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나만의 아뜰리에를 설립해 생애 첫 오토마통 제작에 착수했다. 스승인 미셸 베르트랑의 '글 쓰는 피에로/광대' 오토마통에 바치는 헌사의 의미를 담아 높이만 30센티미터에서 15센티미터로 줄여 제작했고, 당시 블랑팡의 CEO였던 장-끌로드 비버(Jean-Claude Biver)가 이 오토마통을 30개 정도 주문하면서 그렇게 내 비즈니스는 시작되었다.
미래에 어떤 것들을 기획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오토마통 메이커들의 미래에 대한 기대가 커지고 있다. 이 직업에 종사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고, 반클리프 아펠에서도 적극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아 내 고향 생-크루아에 새로운 아뜰리에도 건립했다. 현재 5~6명의 견습생들이 트레이닝을 받고 있다. 젊은 아티산들이 오토마통 기술을 배워 미래의 반클리프 아펠 오토마통을 만들 수 있기를 바란다. 아무래도 제작자가 많아지면 매년 생산 개수도 늘어날 것이다. 현재는 1년에 많아야 2개 정도까지 밖에 제작이 어렵지만 향후에는 1년에 4개 정도 제작할 수 있게 될 것이고 앞으로 더 큰 오브제를 만들 수 있는 기회도 열리지 않을까 싶다. 이러한 과정에서 얻는 가장 큰 기쁨은 '엑스트라오디네리(Extraordinary, 비범한)' 사람들과 함께 일하며 '엑스트라오디네리 오브제(Extraordinary Objects)'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앞으로 이것만은 생애에 꼭 완성하고 싶다 하는 꿈의 오토마통 프로젝트가 있는가?
저글링 오토마통(Juggling Automaton)을 반클리프 아펠과의 협업을 통해 주얼리를 활용해 완성하고 싶다. 이를 구상한지 벌써 10년 정도가 되는데 기술적으로 충분히 가능하다 생각한다. 저글링 볼(공)을 다이아몬드로 하면 어떨지 그러한 고민들을 매우 구체적이고 다각적으로 하고 있다. 요즘은 전자 시뮬레이션 기기의 발달 덕분에 기술 구현을 위해 어떤 연구를 해야 하는지 구체적인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다. 이 오토마통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늘 그렇듯 조화롭고 하나의 패턴으로 작동하는 움직임을 구현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하나로 움직이지 않으면 다이아몬드로 만든 볼이 떨어질 수도 있으니 말이다. 그 볼이 오토마통에 붙어 있는 게 아니라 실제 저글링하는 것처럼 던지는 움직임을 재현해야 할 것이다. 볼은 최대 2~3개 정도가 적당하지 않을까 싶다. (웃음) 앞으로 계속 지켜봐 주길 바란다.
역시 장인의 손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