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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TCHES & WONDERS ::

[SIHH 2018] 리차드 밀 Report

Eno

조회 8643·댓글 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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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차드 밀 리포트는 제가 담당이었으나 현지 포토 슈팅 상황에 의해 알라롱님이 리포트를 진행합니다. 리차드 밀은 신제품의 프로토타입을 한 피스 밖에 제작하지 않기 때문에 실물을 볼 수 있는 시간은 매체당 1, 2분에 지나지 않는데다가, 상황에 따라 그보다 짧은 시간이 할당되기도 합니다. 이 점 양해 바라겠습니다. 


RM 53-01 투르비용 파블로 맥 도우너 (Tourbillon Pablo Mac Donough)


알라롱입니다. 위 영상은 리차드 밀에서 SIHH 2018의 프레젠테이션에 사용했던 영상으로 리차드 밀 홈 페이지에 있는 버전보다 긴 풀 버전에 해당합니다. 리차드 밀에서는 이것을 매우 특별하게 타임포럼에 제공해 주었습니다. (리포트를 읽지 않고 영상만 보셔도 충분합니다만, 제가 추가적으로 설명드리는 부분이 있으니 스크롤을 계속 내려주시면 좋겠습니다) 


리포트 도입부의 사진을 보면 함몰한 두개골 엑스레이. 금이간 유리 디스플레이에는 폴로 경기에 사용하는 공과 맬릿(Mallet)이 매달려 금방이라도 이것을 산산히 깨버릴듯 합니다. SIHH 2018 리차드 밀이 선보이는 RM 53-01 투르비용 파블로 맥 도우너는 2012년 선보인 RM 053의 후속 모델입니다. 아르헨티나의 폴로 선수인 파블로 맥 도우너(Pablo Mac Donough)를 위한 모델로 궁극의 폴로 워치를 목표로 설계되었습니다. 파블로를 위한 첫 모델인 RM 053은 중세기사의 갑옷을 연상시키는 디자인이었는데요. 투르비용 케이지와 시간을 표시하는 작은 창만 남기고 글라스 부분을 금속 소재로 덮는 방식이었습니다. 따라서 작은 창(다이얼)은 경사지게 배치해 가독성의 향상을 꾀했고, 이를 구현하기 위해 무브먼트는 수평도 수직도 아닌 계단형 구조라는 굉장히 독특한 형태를 지니게 됩니다.


우리나라에서 폴로 경기는 아직 생소합니다. 전세계적으로도 인도에서 유행해 영국, 아르헨티나와 같은 몇몇 국가에서 펼쳐치고 있는데요. 그래서인지 한 가지 의문이 생겨납니다. 얼마나 폴로가 격렬한 경기이기에 예거 르쿨트르가 글라스와 다이얼을 보호할 수 있도록 리베르소를 만들었고, 리차드 밀은 RM 053에 이어 RM 53-01을 만들었나 하는 것이죠. 위 영상의 1분 40초에서 3분 30초 구간을 보면 실제의 폴로 경기가 어떤지 알 수 있습니다. 말을 타고 맬릿으로 친 120g짜리 공의 위력, 힘껏 휘두른 맬릿의 파괴력, 빠르게 달리던 도중의 낙마. 말과 말, 말과 사람의 바디 컨택에 맬릿으로 맬릿을 막는 행위가 허용되기 때문에 생각보다 훨씬 위험한 스포츠인 셈이죠. 


이처럼 격렬한 폴로에서 견딜 수 있도록 RM 053은 글라스를 최소화했지만, 어딘가 리차드 밀 답지 않았습니다. 정면승부를 벌였다기 보다 여지를 남겨두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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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M 53-01은 RM 053의 둔중한 장갑을 걷어내고 보통의 글라스 구조를 택했습니다. 하지만 보통의 사파이어 크리스탈 글라스로는 폴로의 격렬함을 견디기 어렵기 때문에 사파이어 크리스탈 전문업체인 스테틀러(Stettler)를 통해 라미네이트 기법의 글라스를 사용하게 됩니다. 스테틀러는 RM 056 사파이어 시리즈, 즉 사파이어 크리스탈 케이스의 제작사이기도 합니다. 라미네이트 기법은 두 장의 사파이어 크리스탈 사이에 얇은 유기접착필름을 삽입하는 것입니다. 글라스가 충격을 받더라도 산산조각 나지 않고 금이 간 상태로 본래의 형태를 유지할 수 있게 됩니다. 마치 자동차 유리에 금이 간 상황과 유사하죠. 사파이어 크리스탈은 다이아몬드에 버금가는 표면 경도를 지니지만 상대적으로 강도는 약하기 때문에 충격을 받으면 깨집니다. 이 때 조각난 매우 날카로운 파편이 사방으로 튀기 때문에, 파블로 맥 도우너와 다른 폴로 선수들을 보호하기 위해 라미네이트 기법을 택한 것이죠. 영상의 6분 10초부터 보시면 토노 실루엣에 커브를 그리는 사파이어 크리스탈 글라스 두 장을 완벽하게 하나로 만드는 작업은 생각보다 간단하지 않았음을 테크니컬 디렉터의 억울한 눈빛을 통해 읽을 수 있습니다. 물론 시계 자체를 보호하기 위함이기도 합니다. 


케이스는 이제 거의 리차드 밀의 스탠다드 소재의 하나로 봐야 할 카본 TPT입니다. 카본 필라멘트를 마치 파이 반죽처럼 얇고 넓게 성형해 각도를 달리하며 무수한 레이어를 쌓아올리는 카본 TPT는 실리카 레이어를 삽입해 컬러를 얻어내는 쿼츠 TPT나 2017년 유일한 2차원 카본동소체인 그래핀의 주입 등. 리차드 밀에서는 다양한 형태로 응용하고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카본 TPT는 경량, 강인한 내구성, 유니크한 패턴 등의 특징을 지닙니다. 실제로 RM 53-01은 케이스 크기에 비해 굉장히 가볍습니다만, 카본 TPT에 익숙해지면 이 정도 무게는 당연하다는 듯 감흥이 사라지는 단점(?)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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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브먼트를 케이블로 고정하는 방식(Cable Suspension)은 RM 27-01로 선보인 적 있습니다. 나파엘 나달을 위한 모델로 실제 나달이 게임에 착용하는 것으로 투르비용이 충격에 의연하게 대처하는 광경을 연출해 주었습니다. 두께 0.35mm의 강철 케이블로 고정된 무브먼트는 충격을 흡수했을 뿐 아니라 고정 방식에 따른 여러가지 새로운 면모를 선사했는데요. 구조적으로 아름다웠을 뿐더러 리차드 밀 디자인의 지향점을 한 번 더 확인할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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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블 서스펜션은 사파이어 시리즈의 마지막인 RM 56-02로 이어집니다. 위 무브먼트가 그것으로 투르비용 케이지에서 배럴에 이르는 중앙 무브먼트와 주 뼈대 역할을 하는 주변부의 액자 모양 플레이트가 케이블로 연결되어 있음을 확인 할 수 있습니다. 사파이어 시리즈답게 중앙 무브먼트의 브릿지 일부는 사파이어 크리스탈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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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M 53-01의 무브먼트는 케이블 서스펜션 기법의 진화를 드러냅니다. 수평 연결을 했던 RM 27-01, RM 56-02와 달리 3차원적인 연결이 되어 있음을 위 이미지의 풀리(Pulley) 각도로 확인됩니다. 케이블은 지름 0.27mm로 가늘어졌고, 티타늄 소재의 중앙 플레이트와 주변 플레이트를 잇습니다. 배럴에서 투르비용 케이지에 이르는 직선형 기어트레인은 RM 56-02처럼 부유감을 강조했으면 더 극적이었겠지만 극한의 폴로 시계라는 목표 아래에서 대칭을 이루는 활 형태의 브릿지의 보조를 받게 됩니다. 무브먼트의 캐릭터를 만들어 내는데에도 제법 역할을 하고 있기도 하고요. 실제 RM 35-01은 시계 케이스 속에서 발견하기 어려운 수준의 입체감을 제공했고, 덕분에 케이스는 두께를 제법 짊어져야 했습니다. 


라미네이트 기법의 사파이어 크리스탈 + 카본 TPT 케이스 + 케이블 서스펜션 구조의 투르비용 무브먼트의 유기적인 결합이 RM 53-01로 스포츠 영역에서 기계식 시계의 한계를 깨버리겠다는 리차드 밀의 변함없는 의지가 느껴집니다. 



RM 6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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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엔트리 레벨의 RM 67-02입니다. 지난 컬럼에 소개했던 다른 엔트리 모델과 비교해서 기능은 자동 타임 온리로 가장 심플하지만 쿼츠 TPT 케이스의 사용으로 가장 컬러풀 합니다. 리차드 밀에서는 꽤 슬림한 편에 속하면서 자동 무브먼트라는 요소가 장점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데이트 기능까지 있었으면 낫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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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패턴의 주얼 세팅을 한 여성용 모델과 아일톤 세나의 팀 동료였던 알랭 프로스트의 RM 70-01도 볼 수 있었습니다. RM 70-01은 비대칭 케이스에 카운팅 기능을 갖춘 투르비용입니다. 자동 카운팅을 기대해 봄직하지만 그건 개발팀에게 너무 가혹할 듯 하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