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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F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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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I-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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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그호이어 모나코 V4

 

1999년 LVMH에게 인수된 이후 태그호이어는 크게 2번에 걸친 변화를 맞이했다고 생각합니다. 1기에 해당하는 1999년부터 2010년대 초반까지 태그호이어의 화두는 컴플리케이션과 무브먼트 개발이었습니다. 이는 당시 시계 업계의 상황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기계식 시계가 호황을 맞이하면서 제조사들은 자연스럽게 기술력을 과시하기 시작했습니다. 누가 더 복잡하고 기발한 시계를 만드는지가 화제였습니다. 무브먼트 개발도 뜨거운 감자였습니다. 에타블리사주 (établissage)라는 아웃소싱에 특화된 스위스 워치메이킹의 근간은 어느 정도 유지됐지만 많은 제조사는 생산 및 관리를 효과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수직통합형 체제로 전환하거나 전환을 시도했습니다. 이 무렵 태그호이어는 모나코 V4를 비롯해 마이크로그래프(Mikrograph), 마이크로거더(Mikrogirder), 마이크로펜둘럼 투르비용(Mikropendulum Tourbillon) 같은 복잡 시계 개발에 매달렸습니다. 이와 동시에 칼리버 1887이라는 브랜드 최초의 인하우스 무브먼트를 선보이기도 했습니다. 

 

- 태그호이어 포뮬러1 X 마리오 카트 리미티드 에디션

 

2기는 장-클로드 비버가 태그호이어 CEO로 임명된 2014년부터 현재까지로 봅니다. 이때부터 태그호이어는 과거와 현재를 잇는 작업에 나섭니다. 오타비아를 부활시키는가 하면 까레라와 모나코 같은 아이코닉 워치를 가다듬습니다. 한발 더 나아가 아이코닉 워치에서 영감을 얻은 레트로 워치를 쏟아냅니다. 한편으로는 스마트 워치에 정면으로 대항하는 커넥티드 워치를 개발해냈습니다. 지금은 LVMH 시계 부문 CEO를 역임하고 있는 프레드릭 아르노의 주도 하에 닌텐도, 프래그먼트, 포르쉐, 키스 등 다방면의 여러 파트너와 함께 젊은 세대를 집중 공략하는 시계를 만들기도 합니다. 이처럼 두 번의 큰 변화를 거치며 태그호이어의 시계는 이전과는 다른 모습으로 진화를 거듭하고 있습니다. 

 

 

2기 동안 아쿠아레이서는 3번에 걸친 업그레이드를 단행합니다. 2015년에는 디자인은 그대로 둔 채 베젤 인서트의 소재를 세라믹으로 교체하며 상품성을 높였습니다. 그로부터 6년 뒤인 2021년에는 기존의 디자인을 완전히 뒤엎는 새로운 형태의 아쿠아레이서가 등장했습니다. 겉모습은 새로웠지만 속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구식인 칼리버 5를 그대로 둔 것은 다소 아쉬운 처사였습니다. 함께 출시한 아쿠아레이서 프로페셔널 1000 프로다이버에만 칼리버 TH30-00를 넣은 것은 충분한 물량이 확보되지 않았거나 다음을 기약한 것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로부터 3년 뒤인 2024년에는 마침내 아쿠아레이서 프로페셔널 300에도 범용 대신 매뉴팩처 무브먼트를 탑재합니다. 3번의 걸친 변화 끝에 마침내 아쿠아레이서는 완전한 모습으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겉만 봐서는 큰 변화를 눈치채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시계를 이루는 여러 디테일을 세세하게 다듬었기 때문입니다. 우선 케이스부터 살펴보겠습니다. 지름이 43mm에서 42mm로 1mm를 줄였습니다. 두께도 12.5mm에서 12mm로 미세하게 얇아졌습니다. 크고 육중한 시계가 대세였던 시절은 이미 지났습니다. 최근에는 드레스 워치든 스포츠 워치든 지름이 40mm로 수렴하는 듯 합니다. 태그호이어도 아쿠아레이서의 정체성을 유지하는 선에서 이와 같은 결정을 내린 듯 합니다. 두말하면 입 아프지만 시계의 크기가 줄어들수록 착용감은 대개 좋아집니다. 줄어든 크기와 인체공학적 설계가 어우러진 덕분인지 아쿠아레이서 프로페셔널 300은 크기에 비하면 매우 상쾌한 착용감을 제공합니다.

 

 

케이스 디자인은 크기를 줄이면서 미세하게 변했지만 무엇이 달라졌는지는 알아채기 어려울 만큼 전작과 유사합니다. 제한된 수준에서 곡선을 활용할 뿐 전반적인 형태는 직선이 지배합니다. 케이스는 브러시드 마감으로 가공하며 모서리는 날 서지 않게 처리했습니다. 스크루 다운 크라운에는 방패 문양을 새겼습니다. 15분까지 분 단위로 표시한 세라믹 베젤 인서트는 다이버 워치의 규범을 정확히 준수합니다. 세라믹 베젤 인서트의 색은 다이얼 색에 맞춰 변합니다. 케이스 디자인에 맞춘 12각 베젤을 돌릴 때 거슬리는 마찰음이 전해지지 않습니다. 다른 시계와 비교하면 조작감이 대단히 부드럽고 정숙합니다. 방수 성능은 여전히 300m로 우리가 일상에서 착용하는 다이버 워치 중에서는 최고 수준입니다. 

 

 

전작과의 차이를 알아차리기 힘든 케이스와 달리 다이얼은 제법 많은 변화를 감지할 수 있습니다. 우선 다이얼의 패턴이 바뀌었습니다. 가로로 홈을 새기는 정공법에서 벗어나 넘실거리는 파도를 연상시키는 형태로 바꾸자 아쿠아레이서 특유의 딱딱한 이미지가 어느 정도 누그러졌습니다. 다이얼은 파도 문양이 있는 몰드를 이용해 주조(cast)하는 방식으로 제작합니다. 원판이 완성되면 이후 래커를 고르게 도포해 마무리합니다. 해당 다이얼은 2021년에 출시한 아쿠아레이서 프로페셔널 300 여성용 모델에서 이미 선보인 바 있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아주 처음은 아니라는 겁니다. 

 

 

팔각형과 사다리꼴 인덱스는 그대롭니다. 대신 바늘은 조금 바뀌었습니다. 시침의 디자인은 방패 문양이 연상되는 형태로 변경했고, 시침은 분을 읽기 쉽도록 얇고 길어졌습니다. 초침은 디자인은 그대로 둔 채 색을 바꿨습니다. 주황색, 노란색, 파란색, 초록색까지 다채롭습니다. 시계의 분위기를 환기시키는 역할도 있겠습니다만 보다 중요한 이유는 기능성에서 기인했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색이 물 속에서 가장 선명하게 보이기 때문입니다. 디자인과 기능적인 면을 동시에 충족시키는 영리한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분과 초를 확인할 수 있는 플린지는 단순화해 깔끔한 인상을 줍니다. 6시 방향에는 인덱스를 없애고 날짜 창만 두었습니다. 시계를 만졌을 때 거슬리지 않도록 확대 렌즈는 사파이어 크리스털 글라스 안쪽에 부착했습니다. 모든 바늘과 인덱스에는 당연하게도 슈퍼루미노바를 도포했습니다. 베젤 12시 방향의 삼각형 마커와 분침 및 초침은 파란색으로, 시침과 나머지 인덱스는 초록색으로 발광합니다. 

 

 

셀프와인딩 칼리버 TH31-00은 셀리타 산하에서 고급 무브먼트 제작을 담당하는 AMT와 태그호이어가 공동 개발한 무브먼트입니다. 이전 세대인 아쿠아레이서 프로페셔널 200 데이트 골드 모델에 기용된 바로 그 엔진입니다. 크로노그래프 무브먼트는 일찌감치 마련했으나 스리 핸즈 심플 워치의 무브먼트는 확보하지 못했던 태그호이어는 외부 전문가와 손을 잡는 전략을 택했습니다. 아쿠아레이서의 볼륨이나 비용 및 캐파 등 여러 가지 측면을 고려했을 때 셀리타와의 협력은 타당해 보입니다. 케니시와 함께 했던 선례도 영향을 끼쳤을 것입니다. 무브먼트 교체는 허울뿐인 것만은 아닙니다. 칼리버 TH31-00은 크로노그래프 칼리버 TH30-00과 마찬가지로 COSC 인증을 받았습니다. 정확성의 보증수표인 COSC 인증을 통해 아쿠아레이서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렸습니다. 마감은 모난 곳 없이 수수한 편입니다. 커다란 브리지는 제네바 스트라이프로 장식했고, 방패 모양으로 가공한 오픈워크 로터는 브러시드로 결을 살렸습니다. 시간당 진동수는 28,800vph(4Hz), 파워리저브는 80시간으로 넉넉합니다. 사용한 보석 수는 30개로 기능에 비하면 조금 많습니다. 케이스백은 6각형 장식과 2004년부터 아쿠아레이서의 상징처럼 자리잡은 스캐판더 다이빙 수트로 장식했습니다. 

 

 

스테인리스 스틸 브레이슬릿도 바뀐 케이스에 따라 폭과 두께를 줄이는 등 디자인을 소폭 변경했습니다. 허나 육안으로 이전 브레이슬릿과의 차이를 간파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버클 쪽으로 갈수록 폭이 좁아지는 테이퍼드 형태의 3열 브레이슬릿은 단순하지만 견고한 인상을 줍니다. 태그호이어 로고가 박힌 폴딩 버클에는 4개의 버튼이 있습니다. 2개는 버클을 여는 용도이며, 나머지 2개는 미세 조정을 담당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오메가 씨마스터나 랑에 운트 죄네 오디세우스의 버클처럼 미세 조정 버튼을 숨기는 것이 가장 수준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버튼을 드러내면 조잡해 보일 수 있으며, 오작동이나 고장의 위험이 있습니다. 하지만 단점도 존재합니다. 버튼을 숨길 경우 손목에 착용한 상태에서는 조정을 할 수 없습니다. 태그호이어의 폴딩 버클은 산만하지 않고 견고하며 착용 중에도 얼마든지 조정이 가능합니다. 버튼을 숨기지 않되 착용 중에도 조절할 수 있는 절충안을 고안해 훌륭한 버클을 완성해낸 겁니다. 스테인리스 스틸 외에 러버 스트랩 옵션이 있습니다. 러버 스트랩에도 동일한 방식의 폴딩 버클이 달려 있습니다. 스테인리스 스틸보다 가볍고 부담 없이 착용하고 싶다면 러버 스트랩이 적합하겠지요. 물론 스테인리스 스틸 모델을 구매하고 러버 스트랩을 별도 구매하는 것이 금전적으로는 유리합니다. 다만, 퀵 체인지 시스템의 부재로 경험이 없거나 많지 않은 혹은 도구가 없는 사용자라면 스스로 교체하기 쉽지 않을 수 있습니다. 

 

 

시간과 날짜 기능만 있기 때문에 조작은 어렵지 않습니다. 스크루 다운 크라운을 풀고 돌리면 메인스프링이 감깁니다. 크라운을 한 칸 뽑은 상태에서는 날짜를, 끝까지 뽑으면 바늘을 돌려 시간을 맞출 수 있습니다. 조작감은 크라운 포지션과 상관없이 대체로 부드러운 편입니다. 베젤의 조작감까지 종합적으로 봤을 때 아쿠아레이서 프로페셔널 300은 부드러워진 생김새 만큼이나 유순한 촉각적 경험을 선사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2기 동안 진행된 3번의 변화는 아쿠아레이서의 내실을 차곡차곡 다지고 상품성을 강화하는 과정이었습니다. 그렇게 서서히 아쿠아레이서에게 최적화된 해법을 찾아냈습니다. 크기는 적당하게 줄었고, 디자인은 보다 명확해졌으며, 무브먼트는 성능을 끌어올렸습니다. 가격은 러버 스트랩 모델이 525만원, 브레이슬릿 모델이 555만원입니다. 2021년에 출시했던 아쿠아레이서 프로페셔널 300의 가격은 382만원이었습니다. 3년만에 약 140만원이 인상됐습니다만 무브먼트를 교체하며 아쿠아레이서의 상품성이 개선됐기 때문에 가격 인상에 대한 그럴싸한 명분이 생겼습니다. 무브먼트를 비난하던 여론도 잠재울 수 있겠지요. 태그호이어로서는 명분과 실리 모두를 챙긴 셈입니다. 구성이 비슷한 경쟁 제품의 가격도 같이 올랐기 때문에 많이 비싸다는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물론 태그호이어를 오래 보아온 분들은 이견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아쿠아레이서가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만은 확실해 보입니다. 아쿠아레이서 프로페셔널 300의 정리가 어느 정도 마무리됐으니 아쿠아레이서 프로페셔널 200의 변화나 새로운 스페셜 에디션의 출시를 기대해볼까 합니다. 

 

태그호이어 아쿠아레이서 프로페셔널 300

Ref. WBP5111.BA0013(블루)

Ref. WBP5116.BA0013(그린)

Ref. WBP5110.BA0013(블랙)

 

지름 : 42mm(러그 투 러그 48mm)

두께 : 12mm

소재 : 스테인리스 스틸

방수 : 300m

유리 : 사파이어 크리스탈

 

무브먼트 : TH31-00

기능 : 시, 분, 초, 날짜

파워리저브 : 80시간

와인딩 : 오토매틱

시간당 진동수 : 28,800vph(4Hz)

 

다이얼 : 블루, 그린, 블랙

 

스트랩 : 스테인리스 스틸 브레이슬릿, 러버 스트랩

버클 : 스테인리스 스틸 폴딩 버클

 

가격 : 555만원(브레이슬릿), 525만원(러버 스트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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