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사무브먼트들이 범람하고, AP cal. 3120을 필두로 한 '얇지 않은 하이엔드 인하우스 무브먼트'들이 다수 개발되어 나오면서
'두께와 무브먼트의 급은 반비례한다'는 전통적인 관념은 더이상 현대의 기계식 시계 시장에선 통하지 않는 분위기인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같은 브랜드 내로 한정하더라도, 결국 '고급' 라인은 복잡한 기능(컴플리케이션)이 부가된 시계가 될 수밖에 없죠.
그리고 그 형태는, 완전히 뿌리부터 새로 설계하는 극소수의 컴플리케이션을 제외하고는, 결국 '베이스무브먼트 + 모듈'의 형태가 될 수 밖에 없기에..
복잡한(=고급의) 기능을 얹은 채로 보기에도 이쁘고, 착용하기에도 편리한 고급시계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결국에는 베이스무브먼트가 얇아야 한다는 결론에 이를 수 밖에 없게 됩니다.
그런데 이 당연한 결론을 도출해줄 수 있는 베이스무브먼트를 만들기는, 생각보다는 만만치 않은가 봅니다.
고급 컴플리케이션이라 하면 기본적으로 퍼페츄얼캘린더 이상 정도라고 할 것인데.. 이걸 수동으로 만드는건 상당히 좀 거시기하니.. ^^;
일단 오토매틱이어야 하겠고, 오토매틱이면서도 얇아야 하겠죠(아래에서 보시다시피 모두 2.5mm 이하입니다 ㄷㄷ).
그러면서도 복잡한 컴플리케이션 모듈을 돌려줄만한 충분한 토크와 리저브가 보장이 되어야 할겁니다.
이렇듯 만만치 않은 조건을 충족해야 하기 때문인지.. 소위 말하는 5대 하이엔드 브랜드에서도 단 3개의 무브먼트만이
이러한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바로, 아래에서 소개해드릴 하이엔드 울트라씬 오토매틱 무브먼트 트로이카 - FP 71, JLC 920, PP 240 입니다.
본론으로 들어가기에 앞서 랑에 팬 분들께는 한가지 양해(?)를 구할 것이..
랑에에는 솔직히 '하이엔드 울트라씬 오토매틱 무브먼트'라고 부를만한 무브가 없습니다.
세미 마이크로 로터의 saxomat (L921.2)이 그나마 랑에에서 얇다고 할만한 오토 무브먼트인데..
두께가 ETA 2892보다도 두꺼운 3.8mm 인데다가, 이 무브가 들어간 랑에의 가장 얇은 퍼페츄얼캘린더도 두께가 10mm를 초과하거든요;;
'오토이면서 두께 2.5mm이하, 퍼페츄얼캘린더 기준 8mm대 두께'라는 기준 자체가 잘못한 것이지, 랑에가 잘못한 것은 아니므로 ^^;
(아니면 지향점이 좀 다르다고 볼 수도 있겠네요.)
넓은 마음으로 이해해 주세요 ㅋ
프레드릭 피게의 명기 cal. 71을 베이스로 한, 두께 2.4mm의 브레게의 cal. 502.3입니다.
fp 71의 경우 스와치그룹 산하의 여기저기에 쓰인 전적이 있습니다만,
진동수를 18,000bph -> 21,600bph로 올리고 프리스프렁 밸런스와 실리콘을 도입하는 등 각종 업그레이드를 거친
브레게 cal. 502.3이 출시된 후에는 브레게에만 허락되고 있는 무브먼트로 알고 있습니다.
앞으로 소개할 3개의 무브먼트 중 유일하게 개인적으로 경험해본 무브먼트이기도 합니다.
보시다시피 풀로터는 아니지만 로터의 크기가 상당히 큰 편에 속하기 때문인지,
와인딩 효율은 상당히 뛰어나더군요.
실착 시에 풀와인딩 상태에서 리저브 게이지가 풀와인딩 아래로 떨어지는 순간은 거의 경험할 수 없는 수준입니다.
TPD 값도 650 이하로 훌륭한 수준.
내구성 면에서도 그냥 일상생활에서 큰 움직임 없이 착용하는 선에서는 4년간 한번도 문제를 일으킨 적이 없는 것으로 보아
만족할만한 수준인 것 같습니다. 다만 이녀석도 두께를 한계까지 줄이는 데에 치중한 무브이다보니,
다른 무브와 달리 생략된 부분들이 몇가지 눈에 띕니다. 예를들어 보통의 무브들은 용두를 넣은 상태에서 돌리면 와인딩,
1단이나 2단으로 뺀 상태에서 돌리면 (와인딩은 안되고) 시간 조정..이 됩니다만,
이녀석은 시간 조정을 위해 용두를 빼고 시간을 조정할 때에도 와인딩이 같이 됩니다 ㅋ 기어를 분리하는걸 생략한 결과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리고 보시다시피 배럴통의 덮개도 생략되어 있습니다 ㅋ
어쨌든, 개인적으로는 두께를 한계까지 줄이면서도 여러 면들을 부족하지 않게 잘 잡은 매우 훌륭한 무브먼트라고 생각합니다.
이쁘기도 하구요 ㅋ
무브 자체의 두께보다도 더 중요한건 결과물이겠죠.
브레게 cal. 502.3은 이제까지 출시된 브레게의 대부분의 퍼페츄얼캘린더 시계의 베이스무브먼트로서 역할을 하고 있구요.
이녀석을 사용하게 되면..
(브레게의 모듈 기술력도 한몫 했겠지만) 퍼페츄얼캘린더 + 에콰시옹 드 땅(균시차 기능)을 박아넣고도
시계 두께를 8.1mm로 끊어낼 수 있게 됩니다 ㄷㄷ
다음으로는 JLC cal. 920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두께 2.45mm의 AP cal. 2120과 VC cal. 1120 입니다.
로얄오크 점보에 들어간 무브먼트로도 유명하죠.
로터의 세공 덕도 있겠지만, 볼때마다 참 우아하게 생겼다는 생각이 먼저 드는 무브입니다.
이 무브먼트의 자랑거리라 하면, 고작 2.45mm밖에 안되는 두께를 풀로터로 구현해냈다는 점일 것입니다.
FP 71이나 pp 240 모두 풀로터는 아니니까요.
다만 그래서인지, 진동수도 다른 두 무브먼트에 비해 더 저진동이고
(요즘 저런 진동수는 사실 잘 찾아보기 힘들죠; 저정도 진동수이면 자세차 등 오차 잡기도 아마 쉽진 않을겁니다.)
리저브도 40시간 밖에 되질 않습니다.
그리고 점보 유저들로부터, 예전부터 내구성 이슈가 좀 있었던 것도 사실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래전부터 자타가 공인하는 명기 울트라씬 무브먼트로 널리 명성을 떨쳐온 무브먼트임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죠.
JLC 920을 '누구의' 무브먼트로 보아야 하는가에 관해서는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어찌되었든 아이러니하게도, 3대 하이엔드 중 2개 브랜드, AP와 VC의 퍼페츄얼캘린더 이상급 시계의 베이스무브먼트 자리는
퓨어 인하우스 무브먼트라고 부르기에는 살짝 애매한(일단 AP와 VC가 같이 쓰고 있다는 것부터가 ^^;) AP 2120, VC 1120이
전부다 독식하고 있습니다 ㅋ
이 무브먼트를 장착하게 되면..
퍼페츄얼 캘린더를 8.1mm의 두께로 만들어내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일이 아니겠구요 ㅋ
진짜 놀라운 일은 이번에 AP에서 한껀 저질렀는데..
무려 두께 6.3mm 라는 세계에서 가장 얇은 퍼페츄얼캘린더, 로얄오크 RD#2를 발표한 것... ㄷㄷㄷ
맨날 로얄오크만 만들어 팔더니 드디어 로얄오크 쪽으로는 신의 경지에 오른 것 같습니다 ㅋㅋㅋㅋ
마지막으로는 시계 매니아라면 누구나 한번쯤 눈길을 돌릴 수밖에 없는 PP의 콩알로터 명기, 두께 2.4mm(어떤 자료엔 2.53mm)의 cal. 240입니다.
일단 cal. 240이 나머지 두 울트라씬 무브먼트보다 확실하게 앞서는 점은, exclusivity 입니다.
처음부터 pp가 설계하고 pp가 만들었으며, pp외에는 그 어떤 시계에도 허락된 적이 없는 무브먼트거든요.
진동수, 리저브타임도 준수하고, 콩알로터임에도 불구하고 와인딩 효율도 불편하지 않을 정도는 충분히 된다고 하더군요.
얇다보니 자체차에 따른 오차가 약간 있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심한 수준이라 보기는 어려운 것 같구요.
아 그리고 이녀석도 브레게 cal. 502.3과 마찬가지로 시간 조정을 위해 용두를 빼고 시간을 조정할 때에도 와인딩이 같이 된다고 하더군요.
역시나 얇게 만들다보니 일어난 결과가 아닐까 싶습니다 ㅋ
pp는 오래전부터 이 무브를 퍼페츄얼캘린더 급 외에도 칼라트라바 타임온리라든지,
월드타이머, 노틸러스 5712 등등 초급 중급 고급 컴플리케이션을 가리지 않고 널리 사용해 왔는데요.
현행 중에 퍼페츄얼캘린더 이상급으로 가장 얇은 두께를 구현해낸 시계는 노틸러스 퍼페츄얼캘린더 5740 이더군요.
가볍게 8.42mm의 두께를 노틸러스 케이스로 구현해 냈습니다.
다만, 앞에서 워낙 무시무시한 시계들을 소개해서 그런지, 뭔가 평범해보이는 결과물이기도 하네요 ^^;
...
하이엔드 울트라씬 오토매틱 무브먼트 트로이카 - FP 71(브레게 cal. 502.3), JLC 920(AP cal. 2120, VC cal.1120), PP 240을
간단히 소개해 보았습니다.
얇고 고급진데다가 세월의 검증까지도 완벽하게 마친, 대체 불가능한 하이엔드 무브먼트.. 라는건 대부분의 시계 매니아들의 로망이지만,
시계(무브) 자체의 비용에다가 관리, 유지, 보수 면에서의 난이도 등 따라오는 반대급부도 만만치 않은게 사실이죠.
컬렉션의 시계 여러개를 전부다 울트라씬 무브먼트로 도배하기에는 여러 부담이 따르는게 사실이겠지만..
그래도 주력 모델 하나정도라면, 그 고매한 하이엔드 무브먼트들 중에서도 한 단계 더 위 포지션에 자리잡고 있는
하이엔드 울트라씬 오토매틱 무브먼트 중 하나를 소장해보시는 것도..
시계매니아로서의 감성 깊숙한 곳을 오랜 기간 충족해줄 수 있는 선택이 아닐까요?^^
댓글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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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램트
2018.09.09 2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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굉천
2018.09.09 22:54
감사합니다. 말씀해 주신대로, 저 무브먼트들은 단순히 얇다는 데에 그치지 않고, 세월의 검증까지 다 거쳐냈다는 점에서 진정 뛰어난 무브먼트들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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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doc
2018.09.09 22:17
추릅~정말 매력적인 울트라슬림 자동 3인방입니다. 굉천님이 돌아오시고 타포가 좀 활발해 지는 것 같네요...^^ 제가 피게 무브를 워낙 좋아해서...저중에서도 FP71...크~특히 저 뚜껑없는 배럴은 피게 가문의 특기죠. 언젠가 울트라 슬림을 구할 수 있다면 수동으로는 FP151, 자동으로는 FP71을 꼭 들이고 싶습니다. 아...그리고 FP71/Breguet502.3의 헤어스프링은 아마 플렛 타입일 겁니다. 브레게 오버코일은 그 자체로 두께가 1mm 남짓 늘어나게 되서 울트라 슬림에는 쓰이기가 힘든것으로...암튼 추천 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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굉천
2018.09.09 22:51
지적 감사합니다. 제가 참조한 자료에도 다시보니 '브레게 오버코일이 안쓰였다'고 적혀있네요 ^^;;
제가 본 자료에는 프리스프렁 밸런스와 실리콘이 들어갔다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초기의 502.3에도 다 해당되는 이야기인지는 정확히는 모르겠네요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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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다병
2018.09.09 22:28
좋은글 감사합니다 ^^
잘 모르던 내용이었는데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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굉천
2018.09.09 22:55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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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kris
2018.09.09 22:50
크 재미있는 이야기 읽고 갑니다.
실제로 사용해보니 240은 자세차가 조금 심하긴하고, 로터 효율도 풀로터보다는 약간 떨어집니다.
그래도 무브먼트가 아름다우니 .. 충분히 용서될 수 일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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굉천
2018.09.09 22:56
전에 아마 옆동네에서 cal. 240의 자세별 편차가 최고 8초정도 난다고 말씀해주셨던가요?
두께 2.4mm짜리 오토매틱 무브먼트가 그정도 수준이라면 저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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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kris
2018.09.09 23:05
네 맞습니다 ㅎㅎ 점검도 맡겨봤는데, 그 정도는 아무이상없다고 ..
얇으면 어느정도 안정성만 있으면 다 인정되죠 ~!!
다음엔 하이엔드 기본 무브에 대해 듣고싶습니다 ㅎㅎ
어제 오버시즈 보고왔더미 푹 빠져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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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osy
2018.09.10 03:01
알토란같은 정보 오늘도 감사히 받아갑니다ㅎ
근데 전 이런 내용의 포스팅을 볼때마다 예거가 점점 더 대단해보이네요.ㅎㅎ
막상 요즘 제일 이뻐하는건 AP와 브레게인데 말이죠ㅜ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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굉천
2018.09.10 12:13
무브먼트에 있어 예거와 프레드릭피게의 영향력과 내공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 같습니다ㅎㅎ 그치만 저도 AP와 브레게도 사랑합니다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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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헬커
2018.09.10 11:52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pp 240을 최고로 생각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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굉천
2018.09.10 12:14
저도 꼭 한번 경험해보고픈 무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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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XIV
2018.09.10 11:54
지식을 넓혀주는 글이네요. 감사합니다.
브랜드의 위상을 높혀 주는 무브에 대한 개발은 놀라운데.
대부분 저런 모델은 사정권이 넘사벽 넘어 버려셔..ㄷ ㄷ
이연복 쉐프가 유명한건 들었지만 현실은 집에서 불짬뽕..
그런 느낌적 느낌...ㄷ ㄷ. 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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굉천
2018.09.10 12:16
ppc까지 가면 그야말로 넘사벽이지만, 저런 무브들이 장착된 시계 중에 타임온리나 중급 이하 컴플리케이션의 경우 연식이 어느정도 된 것이라면 생각보다 접근성이 나쁘지 않은 시계들도 있는 것 같습니다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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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롱이형
2018.09.10 17:53
굉천님 글 잘 읽었습니다.
무브먼트는 초보 수준이라 처음 듣는 이야기도 많고, 재밌습니다. 요즘은 다른 분들의 좋은 글들을 하나씩 읽어나가는게 참 좋네요. 항상 좋은 글 포스팅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추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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굉천
2018.09.10 20:53
저도 아롱이형님 포스팅으로 항상 많이 배워가고 있습니다 ㅎㅎ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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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덕시덕열매
2018.09.10 20:02
감사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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굉천
2018.09.10 20:53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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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젯
2018.09.11 00:24
무브먼트의 계보에 대해 많이 배워가네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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굉천
2018.09.11 21:42
그다지 깊이 있지도 않은 글인데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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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르바
2018.09.11 13:39
잘 정리해주셨습니다. 좋은 참고가 되었네요 ^___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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굉천
2018.09.11 21:43
감사합니다 코르바님 ^-^
보통 글하나 읽는데 10초면 충분한데...^^;;;;;
읽을수록 똑똑해지는 포스팅이군요...ㅎㅎ
기술적으로 정점에 있는 시계들의 속을 뜯어보이는 글...너무 좋습니다. 살면서 언제 한번 접할지도 가늠안되는 시계들이지만...
상위 포지션에 가고싶은 기계식 브랜드가 있다면 어느것보다 얇고 작게 만들수 있어야하고 기능적인 부분의 신뢰도 동시에 가지고 와야만 한다는 생각이 드는군요...좋은 내용 잘 보고 갑니다...^^~